<안철현의 사람과 법>검찰의 무조건 상소, 바람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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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현의 사람과 법>검찰의 무조건 상소, 바람직한가
  • 안철현 변호사
  • 승인 2014.03.29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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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안철현 변호사)

검찰에서 기소한 피고인이 1년 가까이 법원에서 검찰과 싸운 끝에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러자 검찰은 당연한 절차에 따라 항소했다.  이러면 피고인은 기쁨도 잠시 또다시 똑같은 재판을 받아야 한다.  피고인은 억울해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했고, 그래서 오랜 기간 노력 끝에 법원에서 결국 무죄선고를 받아냈는데, 또다시 똑같은 재판을 받아야 한다니 그 자체로 이미 지칠 지경이다. 

재판받는 동안 일도 제대로 못하고 이미 지쳐서 더는 재판받는 것이 악몽 같은데 죽을 지경이 아닐 수 없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제1심 판결에 불복이 있으면 항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형사소송법 규정이 어떻게 보면 몹시도 당연해 보이기도 하고 언뜻 보기에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 뭔가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이 남는 걸 감추기 어렵다.  피고인은 유죄선고가 났다고 해서 무조건 항소하지는 않는다.  이미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비록 억울하지만 더는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는 경우도 있을 테다. 

그런데 검찰은 전혀 다르다.  실무적으로 보면 무죄선고가 있으면 검찰은 억울해서 항소하기보다는 매뉴얼상 또는 관행적으로 아니면 무조건적으로 항소한다. 

물론 1심 재판부가 잘못 판결했다는 검찰의 판단이 깔려있기는 할 테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그리고 실제 법원의 무죄선고가 있으면 모든 나라의 검찰이 무조건 항소하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이런 검찰의 관행은 매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매우 옹졸한 것이라 보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에 협조하고 있는 위 형사소송법 규정은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생명, 자유, 명예, 재산까지 피해를 입게 하는 것으로, 이는 국가형벌권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당사자는 사회생활에 중대한 침해를 받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등 기본권을 침해받게 된다. 

검찰의 잘못된 기소로 무죄선고를 받은 당사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다.  이와 반대로 검찰은 애초부터 강제수사권을 가진 유리한 입장(?)이나 권위와 권력을 등에 업고 조사해서 기소한다.  그렇게 해서 검찰이 기소했음에도 무죄선고가 났다면 무조건적인 항소에는 최소한의 제한이라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애초부터 검찰과 피의자는 조사단계에서부터 평등하지 않았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100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 등 형사법의 대원칙은 교과서에 보기 좋게 적혀있을 뿐 현실에서 적용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런 현실 속에서 재판받아 무죄선고가 있었다면 검찰의 무조건적인 항소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거나 법률적으로 명백한 사정도 없이 관행적ㆍ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행 검찰의 항소는 국가주권이나 공권력을 개인의 기본권보다 우선시하는 잘못된 관행으로 보아야 한다. 

형사절차의 핵심은 인권보장에 있다.  인권침해 요소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나 재판을 중단시킬 줄 알아야 한다.  검찰이 철저히 조사해서 기소하고 1심 재판에서 충분히 다투었다면 형사사법권을 통해 정의구현은 충분하다고 보아야 한다.  형사절차는 주권국민에게 가혹한 권리침해를 초래하므로 진정으로 신중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무조건적인 검찰의 항소는 소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무죄선고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제한하는 것은 재판이 제기된 사건의 총수를 줄이는 것이고, 국가사회적인 재판 비용의 일부를 줄일 수 있게 된다. 

물론 검찰의 항소에 일정한 제한을 두기 위해서는 법원에서도 제1심 재판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고 공판중심주의를 더 철저히 하는 등의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듯이 법원과 검찰도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이들의 권위와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재판받을 권리는 피고인을 위해 헌법이 부여한 권리이지 이것을 검찰이 나서서 남용할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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