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박근혜…역대 대통령 레임덕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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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박근혜…역대 대통령 레임덕은 언제?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4.07.01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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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선거가 분수령…재보선 ´주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며 권력누수가 온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선 오는 7‧30 재보선 결과가 박 대통령의 레임덕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레임덕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정권들은 대개 ‘중간평가’성격의 선거 이후 급격한 권력누수 현상을 겪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1988년 13대 총선에서 패배하며 분위기가 나빠졌다. 13대 총선에서 여당이던 민정당은 125석을 확보했으나 평민당이 70석, (통일)민주당이 59석, 공화당이 35석을 확보하며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다. 대선 공약인 ‘임기 중 중간평가’를 파기했고 각종 비리가 드러난 것도 레임덕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지방선거가 레임덕의 방아쇠가 됐다. 여당인 민자당은 광역단체장 5곳을 얻는 데 그쳤다. 김대중과 김종필이 각각 ‘지역등권론’, ‘핫바지론’을 꺼내들며 광역단체장을 4곳씩 확보했다. 서해페리호 침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참사가 이어지며 정권의 신뢰도가 하락했고, 임기 말엔 한보사태와 소위 ‘IMF’가 터지며 레임덕이 극에 달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0년 16대 총선에서 패하며 본격 레임덕을 겪기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의 방송이 여론조사 및 출구조사에서 여당의 승리를 예상했으나 결과는 115석을 확보하는데 그치며 야당인 한나라당(133석)에게 패했다. 이후 말년에 소위 ‘3대 게이트’가 터졌으며, 2002년에는 차남(김홍업)과 3남(김홍걸)이 구속수사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1년차에 탄핵대상이 되며 유래 없는 조기 레임덕에 휘말렸다. ‘탄핵역풍’이 불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한나라당 121석)을 얻는 대승을 거두며 일시적 반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2006년 지방선거에선 광역단체장을 한곳 얻는데 그치는 참패를 당하며 급속한 레임덕이 시작됐다. 행정수도 이전 논란과 국회와의 마찰, 부동산 정책실패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010년 지방선거의 패배가 레임덕의 시초가 됐다. ‘MB심판론’이라는 명제 아래 단일화에 들어간 야권의 반격이 거셌다. 당시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야당에 투표한 사람의 경우 ‘민주당 등 야당이 잘해서’는 11%에 불과했지만 ‘한나라당과 MB가 못해서’는 79.2%나 기록했다. 취임 초부터 그리 높지 않았던 지지율은 몇 번의 재보선을 거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4대강 사업 논란과 기대이하의 경제정책 등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민심을 잃은 핵심 이유로 평가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레임덕은 대부분의 대통령 단임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선 무승부를 거뒀지만, 이번 7‧30 재보선 등 향후 치러지는 선거에서 패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도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반대 시위를 벌이는 시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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