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법 문제, 공자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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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법 문제, 공자에게 묻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4.08.21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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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쉬운 <논어(論語)>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근홍 기자)

▲ 팽목항에 설치된 하늘나라 우체통 ⓒ 뉴시스

마구간에 불이 난 적이 있었는데 공자께서 조정에서 물러나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상했느냐” 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더라. (논어. ‘향당’편)

지난 4월 16일 오전 9시경 대한민국 진도 앞바다에서 ‘비극(悲劇)’이 시작됐다. 총 304명의 ‘떠나간 자’를 낸 이 비극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픔과 그치지 않을 눈물을 떠안겼다. 발생한지 13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땅의 정치가들은 이를 이용해 권력다툼을 하느라 사건의 진상규명에 반드시 필요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시사오늘>은 이번호에서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지금의 정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위대한 지혜’를, 약 2500년 전에 ‘떠나간 자’, 공자(孔子, B.C.552~479)에게 묻고자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큰 수레에 예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이 없는 것과 같으니 어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겠는가?” (논어, ‘위정’편)

바퀴 없는 마차가 나아갈 수 없듯, 국민들의 신뢰가 없는 정치인은 아무 쓸모가 없다. 약속을 어긴 정치인들이 정국을 제대로 이끌어 갈 리 없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제1야당은 지키지도 못할 수많은 약속들을 국민들과 세월호 유가족 앞에 늘어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29일 안산에 마련된 분향소에 찾아가 “그동안 쌓여온 모든 적폐를 다 도려낼 것”이라고 유가족들에게 공언했다. 5월 19일에는 대국민담화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사과하고 정치권과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직접 제안하며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히 처벌할 것”이라고 국민들 앞에 약속했었다.

▲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중 눈물을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 ⓒ 뉴시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지난 5월 20일 열린 의원 총회에서 “여야가 함께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해서 유가족이 참여하는 진상규명위를 조속히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당대표는 7월 25일 재보궐 선거 지원 유세를 위해 태안을 방문한 자리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당과 정부에서 철저히 진상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는 7월 23일 대전에서 열린 한 기자간담회에서 “검경의 수사권만을 믿고 있다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어느 세월에 밝히나”라며 진상규명위에 수사권, 기소권을 줄 것처럼 발언했었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같은 달 24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 참석해 “우리는 세월호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 책임 규명을 위한 진상규명위 수사권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공언했었다.

이들은 7·30 재보궐 선거가 끝난 후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집단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대통령은 ‘소통하는 법’을 잊었고, 여당은 선거 승리의 기쁨에 ‘세월호’를 잊었고, 야당은 참혹한 결과에 ‘유가족’을 잊었다. 그들이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약속하고 공언한 모든 내용은 유가족과 국민들의 뜻을 배제한 그들만의 합의(8·7 여야 원내대표 합의)와 재합의(8·19 여야 원내대표 합의)로 인해 스러지고 부서졌다. 여야가 단결해 국민들로부터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선행과정 없이는 세월호특별법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정치라는 것은 바로잡는 것이니, 그대가 바르게 통솔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따르지 않으리오?” (논어, ‘안연’편)

공자는 정치를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치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완이나 언변, 카리스마 따위가 아니라 자세와 태도라고 주장한다. 바르게 통솔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바르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경색정국’을 놓고 유가족을 배제한 채 당쟁만 일삼고 있는 지금 여야의 모습은 공자가 말하는 정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유경근 대변인은 20일 MBC<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에 대해서 "(여야가)저희 쪽과 충분한 대화나 서로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없었다"며 "그런 게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희는 100% 신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여야 합의과정 속에서 유가족들이 배제됐다는 의미다.

유 대변인은 같은 날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가족대책위가 표결 끝에 재합의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오늘 총회는 재합의안 수용 여부가 아니라 수사권, 기소권을 가진 진상규명위를 구성하는 원안 고수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파국을 막는 길은 민생법안 우선 처리뿐”이고 “세월호 특별법은 재합의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들어볼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비롯해 소속의원들이 안산에 내려가 “저희가 잘못이 있으니 용서해 달라”며 유가족들에게 뒤늦은 사과와 함께 양해를 구했지만 재합의안을 ‘설득’하겠다는 자세로 일관해 진정성을 엿볼 수 없었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민의에 따르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정치와 합치면 ‘바르게 민의에 따르는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유가족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야합’, ‘재야합’을 함께한 여야는 ‘정치(政治)’를 ‘통치(統治)’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바르게 민의를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추지 않고는 ‘경색정국’을 타개하기 어렵다.

▲ 19일 국회에서 세월호특별법 재합의안에 반대하는 유가족들 ⓒ 뉴시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자신에게 허물이 있거든 고치기를 꺼리지 마라” (논어, ‘학이’편)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면 주저하지 말고 고쳐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유가족이 재합의안을 거부함으로써 모든 것이 원점으로 회귀했다. 여당은 재합의안을 놓고 유가족들의 의중을 헤아리려 하지는 않고 야당에 ‘통 큰 양보’를 했다고 한다. 이는 ‘앙꼬 없는 양보’에 불과하다. 야당은 유가족들에게 ‘용서해 달라’면서 재합의안을 ‘설득’한다고 한다. ‘용서’와 ‘설득’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관계다. 여야는 세월호특별법 문제에서 각자의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유가족을 중심으로 하나 된 뜻을 모아야한다. 그것이 ‘첫 단추’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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