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YS’ 김무성 VS ‘리틀 DJ’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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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YS’ 김무성 VS ‘리틀 DJ’ 박지원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0.05.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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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등 산적한 난제 가운데 묘수 찾기 골몰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적자’들이 나란히 원내사령탑에 올라 18대 국회 중반기 이후 여야의 선봉장으로 나서게 됐다.

그 주인공은 지난 4일 단독 추대로 원내대표 자리에 오른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7일 결선투표까지 가며 승리를 거머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안상수 원내대표에 이어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으로 사실상 합의 추대된 김무성 원내대표는  민주협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이후 15대 총선에서 여의도에 처음 입성, 부산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하며 집권여당 중진의원으로 발돋움했다.

특히 14대 대통령선거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 보좌역,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관, 내무부 차관을 지낸 대표적인 상도동계이자 YS의 정치적 수제자다.

또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 후보 대책본부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렸다.

당내 대통령 경선 후유증이 컸던 탔을까. 2008년 18대 총선 당시 ‘보복성 공천’의 희생양이 된 그는 한나라당을 떠나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박 전 대표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로 친박계 좌장 김무성을 지원했고, YS 역시 당시 무소속 김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방문, “전국적인 인물이 된 김 의원은 앞으로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결국 그는 무소속으로 네 번째 배지를 손에 쥠으로써 정치적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한나라당이 재보선에서 참패한 뒤 친이계 중심으로 제기됐던 ‘김무성 원내대표론’이 박 전 대표의 반대에 의해 무산됐고, 이후 김 원내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 사실상 박 전 대표와 결별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1970년대 30대 초반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가 개인 사업을 시작, 국무총리 표창까지 수상한 성공한 실업가였다.

당시 미국지역 한인회 총연합회장이었던 그는 미국 망명 중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취임, 국내 민주인사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해외 유력인사들에게 한국 내 민주화 운동의 실상을 알렸다.

드디어 박 원내대표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 민주당과 국민회의  ‘명대변인’을 거쳐 청와대 대변인으로 DJ를 보필했다. 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대통령 정책특보를 맡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2007년 말 복권된 뒤 2008년 4·9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정치일선에 복귀했다.

지난 2002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제기된 ‘3김 청산’의 프레임 속에 YS와 DJ의 영향력은 사실상 크게 축소, 그의 추종자들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리틀 YS와 DJ가 주목받고 있을까.

그것은 지난해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가 남긴, 동시에 3김이 남긴 유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

또한 MB정부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의식, 지나친 업적주의에서 비롯된 정책의 속도전, 경직된 남북관계,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보복성 수사 논란 등은 다시 우리 뇌리 속에 87년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있던 DJ와 YS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3김의 한계, 즉 특정정파의 특정지역 독식, 계파정치라는 낡은 정치 프레임은 여전히 우리정치의 한계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대다수가 구태정치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자의반 타의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시점에 ‘YS복심 김무성’과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 원내대표의 행보는 향후 18대 국회의 어떤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 지난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무성 원내대표(오른쪽)와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김무성·박지원, 표면적 ‘상생’ 강조

 
리틀 YS-DJ의 원내대표 체제에서 주목할 점은 그동안 무한 갈등을 벌이던 국회가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보여줄 수는 있는 여지를 남긴 점이다.

김무성 원내대표의 전임자 안상수 전 원내대표는 ‘좌파교육, 좌파 스님’ 발언에서 보듯 사안마다 야당에게 좌파딱지를 붙이며 색깔론 논쟁으로 일관, 생산적인 논의가 완전히 실종되는 결과를 발생시켰다.

이런 한나라당에 대한 편견을 의식해서였을까. 김무성 원내대표는 지난 4일 3기 원내대표로 합의추대 된 뒤 가진 소감발표에서 “한나라당이 젊어져야 하고 더 자유로운 발상, 파격적인 사고가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며 “소위 말하는 ‘꼴통’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MB정부는 친이와 친박 모두 함께 만든 정권이고 정권재창출은 국민과 역사가 부여한 책무”라며 “그 무엇도 정권 재창출이라는 명분에 앞설 수 없다. 우리 모두 계파의 벽과 여야의 벽을 허물자”며 이같이 말했다.

또 “18대 국회가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먹서먹한 의원이 많다”며 “서먹서먹하고 불편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결과는 국가와 국민에 돌아간다”며 재차 화합을 강조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지난 7일 당선 소감에서 전임자 이강래 전 원내대표의 강경일변도 투쟁방식을 의식한 듯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 장소가 국회”라면서 “10년 집권의 경험을 가진 성숙한 민주당으로서 원내 투쟁의 방법도 많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며 대여투쟁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이어 “필요에 따라 장외투쟁이나 원내 투쟁을 하겠지만 그것도 지양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며 “이를 위해 청와대나 한나라당도 무조건 민주당에게 굴종을 요구하거나 따라오라는 식의 일방적 통행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박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빠른 시일 내 만나 모든 일을 국회 내에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김무성 원내대표가 의회주의자이고, ‘청와대 말만 듣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만큼 우리도 적극 협력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정가에서는 강경 일변도인 안상수-이강래 체제보다 그간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온 김무성-박지원 체제가 타협의 정치를 복원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실제 이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 지난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신임 원내대표에 선출된 박지원 원내대표(왼쪽)가 이강래 전 원내대표의 꽃다발을 받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결국 둘 다 정권획득이 목표

정치는 본래 권력투쟁의 산물이며, 권력투쟁에서 이긴 집단이 정권을 획득한다. 이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다수당은 일방통행을, 소수당은 비타협적 신념고수라는 감성적 정치를 통한 세 결집에 골몰되는 측면이 크다.

우선 양당 원내대표는 표면상 통합과 화합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또 다른 하나를 강조했다. 그것은 정권획득. 김 원내대표는 정권재창출을, 박 원내대표는 정권교체를 자신의 목표임을 숨기지 않았다.

김 원내대표는 “그 무엇도 정권 재창출이라는 명분에 앞설 수 없다”고 말했고, 박 원내대표 역시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6·2 지방선거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 성격이기에 결과에 따라 지도부 책임론이 거론될 경우 둘 중 한명은 당내 입지가 급속히 약화된다는 점에서 둘 모두 결사항전이 불가피하다.

또한 이미 야당은 ‘스폰서 검사’의혹 규명 등을 위한 특검법 처리, 천안함 진상조사특위 정상운영 등을 위한 5월 국회 소집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으나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용 정략이라며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아울러 18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 등을 놓고 당의 입장을 관철해야 하는 입장에서 양당 원내사령탑이 정치력이 뛰어난 협상파라도 한나라당의 강공 처리와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불가피할 전망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을 두고 퇴로 없는 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여당의 김무성 카드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세종시 수정안과 원안을 둘러싼 친이-친박계 간 의견 충돌이 급기야 여여(與與) 갈등으로 비화, 결국 주류 친이계가 한때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던 김 의원을 원내대표로 앉혀 양 계파 간 화합을 노린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원칙주의자 박 전 대표와 친박계가 세종시 원안을 고집할 경우 과연 김 원내대표가 친박계를 설득할 수 있는 절충안이 있을지 미지수다.

만일 한나라당이 세종시를 두고 분당사태까지 이를 경우 MB정부의 국정운영 추진력이 급속히 악화됨은 물론, 김 원내대표도 지도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박 원내대표 역시 민주당의 수적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세종시, 개헌, 천안함, 4대강, 검찰개혁 등 양보할 수 없는 난제들이 많아 타협의 정치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크다.

또 박 원내대표는 지방선거 공천 등을 둘러싸고 고조된 계파 간 갈등 봉합, 차기 대권경쟁의 전초전이 될 전당대회에서 세력 간 조정자 역할 등도 떠맡고 있어 경우에 따라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미 리틀 YS와 DJ의 수 싸움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 원내대표는 YS처럼 선 굵은 정치를, 박 원내대표는 DJ처럼 치밀한 전략을 펼칠 것이란 예상 속에 이들은 과연 YS와 DJ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자기정체성은 학습의 결과이자, 진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양김의 어떤 모습을 학습하고 어떤 면을 진화시켰을까. 그들이 펼칠 대결과 대화정치라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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