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39)>라종일, ˝남북 7천만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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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39)>라종일, ˝남북 7천만을 고발한다˝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4.10.01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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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큰 흐름에서 희생된 개인의 삶 조명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라종일 전 주일대사는 외교관인 동시에 행정가이며 정치학자다. 그는 청와대와 안기부의 요직을 거쳤고 우석대 총장을 지냈다. 격동의 시대, 한국을 이끌었던 중추에 서 있던 그다. 라 전 대사는 9월 30일 국민대학교 <북악포럼>을 찾아 '잊혀진 테러리스트'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려줬다.

▲ 라종일 전 주일대사 ⓒ시사오늘 박근홍 기자

라 전 대사는 성서 문구와 교황, 김수환 추기경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운을 뗐다.

“성서에 나오기를 인류 최초의 가해자는 카인, 피해자는 아벨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과연 가해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가? 아벨이 어디 갔냐는 신의 질문에 카인은 ‘모릅니다, 제가 동생을 돌보는 사람입니까?’라고 답한다. 우리는 이 대답을, 우리 자신이 하고 있지 않은지 돌이켜봐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미사에서 이런 말씀을 했다. ‘이 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 모두가 나는 모른다, 경찰이 죽였으니 내 책임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카인이 하느님에게 최초로 한 대답이다.’ 김 추기경의 말씀이 무엇을 시사 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결국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라 전 대사는 자신이 쓴 책인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을 들어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난 여러 권의 책을 썼지만 이 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이 책 제목처럼 강민철이라는 한 테러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을 <고발>이라고 하려 했다. ‘나는 모른다’고 말하는 우리 남북한 7천만을 고발한다는 의미에서다. ‘그 사람을 내가 왜 책임집니까. 우리 일이 아니다’라고 말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묻혀버리면 안 될 일을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사람을 영웅시 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라 전 대사는 아웅산 테러리스트 중 하나였던 강민철의 이야기를 통해 남북 분단의 비극이 만들어낸 개인의 희생과, 그에 대한 무관심을 차근차근 ‘고발’했다.

“강민철은 18세에 군대에 갔다. 그리고 25세에 미얀마에 보내졌다. 임무는 ‘전두환을 죽여라’였다. 그리고 실패 후 25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쓸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이 사람의 일생을 보면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의 문제들 중 하나를 축소해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라 전 대사는 당시의 남북 정세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비사(祕史)도 일부 공개했다.

“우선 당시 상황을 봐야 한다. 북한의 통일전략을 보면 골자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군사적인 제압을 통한 통일이고, 또 하나는 남한에 혁명적인 사태가 일어나는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거다. 남한 내부가 혼란에 빠질 때, 남한 동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개입하자는 거다. 그러던 중에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북한 전략의 교과서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은 개입하지 못한다. 통일전략을 처음 세우던 1950년과는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이 항공모함을 두 척이나 보내며 압박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테러 뿐 이었다. 실제로 전두환 대통령 암살시도를 세 차례나 했다. 캐나다, 필리핀, 가봉에서 시도가 있었다. 미얀마에서 아웅산 테러는 네 번째 시도다.”

“계속되는 암살 시도 속에서 전 대통령의 미얀마를 방문했다. 당시 미얀마는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였다. 서방 6개국 순방에 미얀마는 들어있지도 않았다. 당시 외교부가 청와대에서 미얀마로 간다는 지시를 받고 이범석 장관은 화를 내고 욕까지 했다. 안기부도 반대했다. 그 EO의 미얀마는 북한과 아주 친해서 북한 외교관이 부부동반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말도 있었을 정도다. 안기부가 당시 북한의 배가 미얀마로 간다는 것까지 파악하고, 가면 안된다는 보고서를 냈다. 현지 안기부도 오면 안된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 지경이니 틀림없이 노신영 안기부장도 보고받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말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외국 가는 건 외교부 소관이지 국방부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만 했다. 지금도 그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전 대통령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전두환 정권의 유일한 정당성은 7년 단임제에 있었다. 그런데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가. 전 대통령 본인보다도 그 측근들이 아쉬워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전 대통령에게 약속도 지키고 권력도 안 놓는 방법이 있다, 미얀마가 그 사례라고 알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록 등으로 확인된 건 아니지만 전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할 목적은 그 한가지 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라종일 전 주일대사 ⓒ시사오늘 박근홍 기자

라 교수는 강민철의 사진을 보여주며 강연을 계속했다.

“강민철의 일생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뤄졌다. 한쪽 팔이 없다. 체포 과정에서 미얀마 경찰에게 당한 것이 아니다. 자살용 수류탄이 터져서 팔이 날아간 거다. 보통은 죽었을 상처를 입었지만 5시간이 넘는 수술을 통해 살아났다. 북한에서 자살하라고 수류탄을 줬다.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습게도 북한의 전략은 허점투성이였다. 이들이 쓴 벨기에산 권총은 조금만 추적해도 북한산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아웅산 테러 때 쓴 폭탄은 크레모아 두 개와 소이탄 하나였는데 소이탄은 아예 터지지도 않았다. 여기도 북한에서 제조했다고 표시해놨다. 자살한다고 사라질 흔적이 아니라는 거다. 심지어 이들을 태우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배는 입항조차 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미얀마 정부에서 한국 대통령이 머무는데 북한 배의 입항을 허락할 리 없지 않나. 강민철과 그 동료들은 이미 버린 패였던 거다.”

“강민철은 한 팔이 없는 채로, 하루 두끼의 식사를 먹으며 25년간을 감옥에서 살았다. 당시 감옥에 같이 있었던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의 소원은 한번만 결혼을 해 보는 거라고 했다. 그러나 풀려날 수 없었다. 그를 제 3국이나, 한국 교민들의 종교단체 같은 곳으로 보내주고 싶었지만 그도 불가했다. 김자한 목사님이 내가 불러서 미얀마를 두 번이나 찾았다. 김 목사의 석방 요구에도 미얀마는 우리 정부의 요청이 없으면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다가 간암에 걸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는다. 너무 고통스럽게 감방을 데굴데굴 구르길래 엠뷸런스로 병원에 데려가는 도중 길 위에서 눈을 뜨고 죽었다고 들었다. 묘도 쓰지 못했다. 화장하고 재를 버렸는데 어딘지 기억도 나지 않는단다. 한 사람이 세상에서 그냥 완벽하게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 거다.”

라 전 대사는 강의를 마치며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당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웅산 테러후 2년만에 전두환과 김일성은 아주 친해진다. 비싼 선물도 주고받고, 서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운다. 그렇게 친해졌으나 감옥에서 썩고 있는 한 젊은이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다음 정부도 크게 다를 것 없다. 햇볕정책 기간 중에 정상회담을 열고, 원조를 주며 발휘하던 동족애를 왜 강민철에겐 발휘하지 못했나. ‘왜 돌봐야 하는가, 내 책임인가?’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한은 아직 통일을 말할 자격이 없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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