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의 아름다운 패배
스크롤 이동 상태바
원희룡의 아름다운 패배
  • 김재한 대기자
  • 승인 2010.05.14 18: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부족한 '정치 거목'
6.2 지방선거가 정식 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레이스에 들어갔다. 여·야가 사활을 걸고 격전을 치루고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선거 일정도 시작되기 전에 막후에 조용히 사라진 정치인이 있다. 그가 바로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후보에 나섰던 원희룡 의원이다.

원 의원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뽑기 위한 당내 경선에서 전체 유권자 여론조사에서는 앞서면서도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뒤져 결국 단일 후보를 나 의원에게 내줬다는 점에서 그로서는 한나라당 주류의 벽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계기가 됐을 수도 있다.

항간에서는 ‘아름다운 패배’라는 말로 서울시장 경선에 실패한 원희룡 의원을 위로한다.
 
원 의원은 지난 달 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역시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던 나경원 후보와 단일화를 하기로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나 의원에게 1% 포인트 차로 아깝게 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깨끗하게 승복하고 나 의원을 돕겠다고 나섰다.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에는 그가 그토록 서울시장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이처럼 원희룡 의원에게 남겨진 것은 그의 출마 보다는 깨끗한 승복과 조직인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이다.

원희룡 의원은 1964년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재원으로, 검사를 거쳐 국회에 들어와서는 16대 이후부터 내리 3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지난 18대 대선 후보와 이번 지방선거에는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출마한 능력 있는 재목이다.

그런데 그가 우리나라에서, 한나라당에서, 큰 정치적 실험의 기회 때마다 왜 좌절해야 하는 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최근에 있었던 서울시장 한나라당 경선을 중심으로 그의 정치 행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복기해 보았다.

정치문화 탓도 있다.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인 원희룡 의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나라당의 조직적인 집단 따돌림도 있다.

원 의원은 대한민국 건국사를 긍정과 성취의 역사로 보고, 북한체제를 인정하거나 애매하게 공존하는 방식의 연방제 통일론도 반대하며, 무엇보다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옹호론자라는 점에서 그는 명백히 보수주의자다.

자신들이 3번이나 공천해 국회의원이 되고, 당원들의 지지로 최고위원이 된 원희룡 의원을 두고, 게임도 해보기 전에 안 된다면서 제3후보론 운운하면서 찬물을 끼얹으니, 경선에 임할 맛이 나겠는가?

정치도 상식과 순리가 존재한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신들이 배출한 국회의원을 스스로 난도질하는 정치문화 속에 어떻게 큰 정치인이 나오겠는가?

원희룡 의원은 어떤 정치인인가? 그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그의 정치적 배경은 무엇이며, 그의 지지 배경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보면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국민들에게 각인될 것이 없다. 이것이 깨끗하고 능력 있는 정치인인 원희룡 의원에 대한 고민이다.

원희룡 의원은 왜 서울시장 경선에서 실패했을까?

일각에서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선거 분위기가 나오지 않아 어려웠다고 이야기한다.
 
천안함사건은 원 의원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후보에 같이 적용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유로 제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원희룡 의원의 개인적인 퍼스낼리티(personality)와 선거전략 실패가 주요 원인으로 생각된다.

원 의원은 너무 합리적이다. 그래서 그것이 오판의 기준이 된다. 선거라는 무대에서 싸우기에는 그의 심성이 너무 부드럽다.

그는 선거에서 2등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단일화했다고 말한다. 

원 의원은 지난 7일 서울시장 경선에서 나경원 의원과 단일화를 결정한 것과 관련, "기존의 경쟁으로 가서 제가 2등하고 나 후보가 3등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오세훈 후보를 뒤집어서 대결할 수 있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사실은 (나 의원을) 이기는 게 불가능할 정도까지 양보했다"면서 경선 당시의 심정을 밝힌 적이 있다.

선거에서 2등도 중요하다. 차점은 차기 선거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선거는 본선 무대에 나올 때 의미가 있지, 정치적 시도만으로 그칠 때 그 의미는 무의미하다.

또 하나는 선거전략 실패이다. 선거의 기본전략인 이슈 선점에도 실패했다. 무언가 내놓은 것이 없다. 반(反)오세훈만 내걸었다.
 
그의 선거전략은 원희룡 의원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것 보다, 오세훈 시장이 안 되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오세훈만은 서울시장이 안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내가 서울시장이 되고, 원희룡이 되어야 서울시가 달라지고, 원희룡만이 할 수 있는 비전과 철학을 제시하지 못했다.

선거 일정은 이미 정해져있다. 여기에 맞추어 이슈와 아젠다(agenda)를 선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원희룡 의원의 서울시장선거에 있어서의 아젠다와 이미지는 무엇인가? 뚜렷한 자신만의 이미지와 서울시장으로서의 철학과 비전 등 안정감을 제시하지 못했다.

세밀하게 들어가 결론적으로 보면 단일화 시기가 너무 늦었다. 이것은 원희룡 의원 개인만이 아니라 함께 경선에서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냈던 나경원 의원에게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후보 단일화는 상대의 지지층을 흡수하고, 부동층을 몰아오는 데 있다는 것이 상식임에도 그러한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실패한 흥행이다.

단일화는 후보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력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단일화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이기기 어렵다는 산술적인 계산에서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똑똑한 사람이 잘 못한다. 인간과 인간이 부대끼며, 무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다. 합리성과 완벽함은 그 자체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지만, 정치현장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은 하나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
 
허점과 인간미가 있을 때 사람이 몰리고,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아마 이것이 정치인 원희룡에 바라는 것이 아닐까.

‘빛나지 않은 조연’이 아닌 ‘정치 주연’으로 원희룡을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원희룡을 정치적 거목으로 키울 방법은 없을 가를 고민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