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의 이상한 이중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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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의 이상한 이중 잣대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0.05.1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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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령비현령식’ 해석에 “기준 뭐냐” 항의 빗발
오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정치적 편향성을 넘어 정부여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 판세를 유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거세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4월 26일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정부·정당·단체의 선거쟁점 관련 활동 안내 및 사례예시’를 통해 시민사회단체들의 4대강, 무상급식 등을 이용한 집회·가두서명·인쇄물 배부 게시·현수막 부착·광고 등을 불법이라고 규정한 것.

선관위는 그 근거로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한 공직선거법 90조와 93조를 내세웠다.

실제 중앙선관위는 3월28일 환경운동연합의 '4대강 지킴이’ 모집 라디오 광고, 4월15일 서울시선관위는 서울 25개 지구 친환경무상급식 서명운동을 선거법위반이라고 통보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정치적 중립기관이자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관권선거를 하고 있다”며 “4대강에 반대하면 불법이고, 국토부의 4대강 홍보 활동은 합법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선관위는 비난이 거세지자 지난달 25일 국토해양부에 옥외광고물, 텔레비전과 라디오 광고 같은 정부의 홍보행위도 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표면적으로 선관위는 시민사회단체와 정부당국 모두 정치적 중립에 위배되는 행위를 규제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개의 불편한 진실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는 법집행에 있어 정부정책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정부정책을 홍보하고 있는 기관을 차별하고 있는 것. 또 하나는 선관위의 모호한 유권해석이다.

먼저 전자의 경우 지난 12일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는 경기환경운동연합의 안명균 사무처장 등 환경단체 회원 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관위는 지난달 7일부터 28일까지 5차례에 걸쳐 회원들을 동원, 4대강 관련 사진을 게시하는 등 4대강 사업 중지와 무상급식 찬성서명을 한 혐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경기도 여주군 선관위는 지난 11일 4대강 사업을 홍보한 여주군 재난안전과 여주군 산하 읍면 이장협의회 4곳, 체육진흥회, 건설사 1곳 등에 대해서는 서면 경고에 그쳤다.

▲ 지난 4월 23일 참여연대 등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관권부정선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뉴시스
결국 4대강, 무상급식 반대 등 정부정책을 반대하는 쪽은 검찰고발,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기관은 법적 효력이 없는 서면 경고로 무마한 꼴이 됐다.

안명균 사무처장은 “지난 1년 전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이 통상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해온 활동을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고발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정부가 공무원들을 상대로 4대강을 홍보하는 것은 방관하면서 시민사회단체들만 고발하는 것은 무슨 경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영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도 “선관위는 시민사회단체의 일상적 활동을 사실상 전면 금지한 반면, 정부의 광범위한 홍보 활동에 대해서는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며 “정부의 4대강 반대여론 극복을 위한 자문단 구성 등에는 왜 가만 있는지 모르겠다”고 공박했다.

관권 개입 의혹은 선관위뿐이 아니다. 교육감 후보의 성향을 파악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라는 정황이 담긴 경찰 내부문건이 공개된 것.

이 문건은 지난달 16일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계가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 내려 보낸 것으로 진보, 보수 교육감 후보들의 선거 전략 등을 5일 안에 보고하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개혁성향 후보에는 ‘무상 급식 후보 단일화 외에 어떤 선거 전략을 갖고 있는지’, 보수 교육감 후보들에게는 ‘한나라당에서 반전교조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데,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것’을 주문했다.

선관위 측은 “선거정보 수집은 경찰의 고유 업무”라며 “경찰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없어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만 되풀이 했다.

선관위가 뒷짐만 지자 ‘2010유권자희망연대’는 지난달 26일 경찰의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 강희락 경찰청장과 경찰청 정보과 경감 2명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한 혐의로 서울시선관위에 고발했다.
 
선관위의 이상한 유권해석
 
선관위는 본래 선거의 공정한 관리, 정당 및 정치자금에 관한 사무 처리를 위해 설치된 독립된 합의제 헌법기관이다. 말 그대로 정부나 국회와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하지만 최근 선관위의 관건 선거 논란이 일자 선관위의 공직자선거법에 대한 유권해석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90조, 93조에 명시된 ‘선거에 영향을 끼칠 목적’을 근거로 시민단체의 정부정책 반대에 대해 법률 위반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선거에 영향을 끼칠 목적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류제성 변호사 등은 중앙선관위에 공개질의를 통해 “선관위가 4대강 사업의 계속여부, 무상급식 실시여부 등을 선거 쟁점으로 지정해 찬반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선거쟁점과 선거쟁점이 아닌 것을 어떤 근거로 구별 짓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는 “목적범은 높은 의도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선관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명확히 입증하지 못한 채, 직간접적으로 선거에 미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막는다면 180일 동안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선관위의 이상한 유권해석을 비꼬았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과 교수는 공직선거법의 문제점을 거론, “현행 공직선거법은 모호하고도 매우 광범위한 행위를 포괄하는 규정을 담고 있어 현수막 등 표현물의 게시, 트위터나 집회 등을 이용한 표현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선관위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제 6월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관위의 존재는 첫째도 선거의 공정한 관리고, 마지막도 선거의 공정한 관리다.

그간 우리의 선거는 관권 선거를 통해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적 소유물로 인식, 이는 결국 퇴행적 정치문화를 초래한 측면이 크다.

6월 지방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서 주권자인 우리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과의 단절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반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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