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Review 지방선거(95년)
②작은 희망, 하지만 꺼진 불씨
스크롤 이동 상태바
[6·2 지방선거]Review 지방선거(95년)
②작은 희망, 하지만 꺼진 불씨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0.05.24 1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②작은 희망, 하지만 꺼진 불씨
“지역주의와 싸우다 전사했다”서울 박찬종 부산 노무현 지역주의 맞서 선전
지역등권론 무장한 DJ 지원유세에 줄줄이 낙마
염홍철 김덕영 등도 JP ‘핫바지론’에 힘 잃

95년 6월 27일.
34년만에 부활된 지방자치단체선거가 치러진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잔치는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지역감정’이라는 그 반갑지 않은 손님은 여지없이 잔치판의 흥을 깨 버렸다.

정치인들은 이 손님을 ‘망국의 전염자’라 욕하면서도 급하면 가서 절이라도 해서 이 손님을 초청했다. 눈앞에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지역감정을 마구 뿌리게 된 것이다.

물론 지역주의에 맞서 싸운 후보들도 있었다. 이들은 철옹성 같은 적지에 뛰어들어 경합을 벌이다 거센 ‘지역바람’에 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들 중 누군가가 지역바람을 타고 넘었다면 단단한 지역구도 속에서 작은 희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편집자 주>
 
서울시장 선거일을 하루 앞둔 26일 밤 강변 역 부근.

‘빅3’로 분류되던 무소속 박찬종 후보는 지지를 역설했다.

“1천100만 서울시민이 3김씨의 포로가 돼서는 안된다. 8년동안 지역할거주의에 버텨온 나를 선택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결정할 시기가 됐다.”

같은 날 부산역 광장에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지역등권론과 내각책임제는 부산?경남을 고립화시키려는 또 다른 망국적 지역주의”라는 논리를 펴며 한표를 호소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박찬종 후보는 본격 선거전 개시전날까지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민자당 정원식 후보나 민주당 조순 후보를 압도했다.

부산에서 출마표를 던진 노무현 후보도 민자당 문정수 후보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밑천’을 가지고 선거전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지역감정이라는 엄연한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서울에서 박 후보는 선거초반 조순 후보를 월등히 앞서 나갔다.

당선이 곧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 95년 실시된 지방선거는 그야말로 지역주의의 한판장이었다     © 시사오늘

하지만 선거중반 김대중(DJ) 아태재단 이사장이 지원유세에 나서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선거 막판 JP가 민주당 조순 후보를 지지하면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박 후보는 당시의 패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당시 JP가 민주당 후보 지지선언을 한다고 하더라도 판세에 큰 영향을 못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자민련의 영향력과 충청도 연고의 유권자들에 대한 장악력이 대단치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를 놓고 볼 때 그것은 완전한 판단 착오였다. 내표 중 1%가 상대후보에게 가면 결과적으로 2%의 변동이 생긴다. 자민련의 민주당 지지선언은 최소 5~6%의 득표변동을 가져왔다. 특히 지역주의가 심화됐던 당시 선거 때 JP의 지지선언은 나에게 완전 치명상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노 후보도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의 정치적 아성이었던 부산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선전하자 민자당도 긴장할 정도였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선거에서 ‘노무현 돌풍’을 잠재운 사람은 YS가 아니라 DJ였다는 것이다.

DJ가 ‘지역등권론’을 앞세워 민주당 선거지원유세에 나서면서 부산은 ‘반DJ’정서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YS의 잇따른 부산방문을 통해 노 후보의 바람은 꺼져갔다.

노 후보도 이를 돌리기 위해 DJ의 완전퇴진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이미 사태를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뿐아니라 대전에서 염홍철, 충북에서 김덕영, 호남에선 강현욱 후보가 지역분할구도에 끼여 막판 침몰했다.

민자당 염홍철 후보는 선거운동 초반 자민련 홍선기 후보를 앞질렀다.

그러나 JP가 ‘핫바지론’을 들고 나오면서 자민련의 녹색바람은 그야말로 대전을 시퍼렇게 물들였고, 염 후보는 그렇게 침몰해 갔다.

민자당 김덕영 후보는 선거기간 중반까지도 우세했다. 투표일 하루 전날까지도 앞서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민련 주병덕 후보에게 무너졌다. 자민련의 녹색바람이 충남에서 대전을 거쳐, 충북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민자당 강현욱 후보도 선거 종반까지 우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DJ가 전주 등에서 지원유세를 하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민주당 유종근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박찬종 후보를 비롯한 이들은 초반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끝내 지역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한 박찬종 후보는 패자의 변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역주의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패자의 변]
 
박찬종 후보
“지역도 돈도 없었다”

▲ 박찬종     © 시사오늘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박찬종 후보는 끝내 지역주의를 넘지 못하고 패했다. 박 후보는 95년 6월 28일 자신의 여의도 선거사무실에서 패자의 변을 이렇게 늘어놨다.

“서울 시민의 선택에 승복한다. 조순 후보의 당선을 축하한다. 끝까지 선전하신 정원식 후보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끝까지 저를 지지, 성원해 주신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만 서울만은 지역할거주의를 타파하고 새 서울을 창출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도전은 실패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정치의 특수성을 실감했다. 그러나 선거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다.

열성을 다해 지지해 준 참모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황송할 따름이다.
 
노무현 후보
“DJ를 용서할 수 없다”

▲ 노무현     © 시사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부산시장 낙선 후 한 주간지에 자신의 입장을 기고했다. 당시 선거가 얼마나 ‘지역주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역대결 구도만이 판치는 정치현실 속에서 이번 선거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나는 당내 경선에 도전했고 계보정치의 벽을 뚫고 힘겹게 후보로 선출됐다.
 
지역감정이라는 정치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멋진 한판을 벌여보자는 것이 나의 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등권론’이 나왔다.
 
나는 김대중 이사장을 용납할 수 없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역사적 행위였다. 역사의 주인인 국민대중을 ‘졸’로 보고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등권론, 정치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지긋지긋한 지역대결구도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바로 지역등권론이다.

나의 선거와 관련해서는 지역등권론으로 인해 지역감정을 조작하는 흑색선전이 난무했고 부산지역에 지역바람이 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바람을 차단하고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비책으로 ‘탈당’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원칙을 지켰다. 당락에 연연해 비겁하게 지역대결구도와의 정면 승부를 회피할 수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