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성환 자유기고가)
1986. 10. 17 The New York Times 번역문
“체포동의안 통과로 더욱경색”
도쿄발 10. 16
오늘밤 한국정부는 한 야당 국회의원을 체포했는데 이로인해 헌법개정 이라는 결정적인 이슈에 대한 타협의 기회가 한걸음 주춤하게 되었다. 도쿄에 수신된 보도에 의하면 한국 국회는 정부가 보안법 위배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발언을 이유로 한야당의원의 체포 동의안을 오늘밤 늦게 통과시켰다. 오늘밤 투표는 국회에서 한동안의 난장판 뒤에 있었다.
약 1000명으로 추정되는 경찰이 의사당에 들어갔으며 여당의원들이 투표장 출입을 막고 있는 동안 투표는 행해졌다.
경찰은 국회의장의 요청에 의해 행동했는데 의장은 야당의원들이 물리적인 힘으로 의장의 본 회의장 진입을 막고 사회를 못하게 한 일이 있으 후 경찰을 불렀다.
분위기는 두 정당 사이의 더욱 더 뚜렷한 대립으로 나타났다. 즉 양당은 1988년 임기만료되는 전대통령의 다음 지도자 선출 방법을 놓고 날카로운 논쟁을 벌리는 난관에 봉착해왔다. 많은 한국인들은 합의개헌이 실패할 경우 폭동에 이어 정치적인 탄압으로 나타날까 두려워 하고 있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 때 유성환의원 사태는 긴장을 더해 주었다.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신문은 유의원이 회기중 이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인용했다. 그의 연설이 소란을 야기시켰고 여당으로부터 야유를 받았으며 국회 일정은 다음날로 연기되었다. 나중에 정부는 유의원을 최고 7년형을 받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유의원의 발언이 북괴의 선전문구를 그대로 인용하는 과격학생들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했다. 유의원은 수요일 그의 집에 감금되었으며 경찰은 체포영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의원은 현직의원이기 때문에 정부가 그를 체포하기 위해 면책특권을 무효화 시키기 위한 국회의 동의라는 사법적 절차가 필요했다.
그가 기소된 것은 유의원이 연설 원고를 기자들에게 배포했기 때문에 면책특권에 해당되지 않았다. 여당인 민정당은 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야당의원들을 몇시간 격리 시킨 후 오늘밤 늦게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여당 의원들은 마침내 다른 회의실로 옮겼고 그 곳에 경찰은 단순 다수에 의해 동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146명의 여당의원과 1명의 무소속 의원을 남겨두고 야당의원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국회는 총 276명의 선량들이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비록 경찰이 유의원을 체포하기 위해 철야작업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더라도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Time 번역문
“정적은 체포되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아세안 게임 동안 유지했던 비공식적인 휴전(주: 여·야)은 끝났다. 아세안 게임 때문에 16일간의 휴회를 가진 뒤에 국회가 그 달 초 소집되었을 때, 한국의 두 정당은 즉시 하나의 새로운 정치제도의 모형을 둘러싸고 맹렬히 싸우기 시작했다. 더욱이 불길하게도 전두환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지난주 전례 없이 한 야당 의원을 그가 행한 국회에서의 연설로 인해 체포했다.
현행법 아래서는 국회의원들은 그들의 국회 내에서 어떠한 발언에도, 기소될 수 없다. 그러나 ‘전’이 이끄는 여당인 민정당은 신한민주당 유성환(53)을 용공적인 발언을 했다 하여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월요일 국회에서 연설하기로 계획되었기 때문에 유 의원은 그날 약 30부의 원고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그러나 월요일의 회의가 곧 끝나버렸기 때문에 유 의원의 발언은 그 다음날까지 연기되었다. 그래서 그의 발언내용이, 그것들이 실제로 국회에서 연설되어지기 전에 신문지상에 발표되었다. 정부는 그 연설이 국가보안법에 위배되어 따라서 그 부분도 국회 면책특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경히 주장했다. 유 의원은 마침내 화요일에 연설을 했다. 그리고 민정당 의원들은 유 의원이 반공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비난하고 남북한 통일을 요청했다고 흥분해서 소리쳤다. 다음날 아침 유 의원은 자택에 감금되었다. 검찰은 북한 공산주의자와의 동조를 금하는 보안법을 위반한 유 의원을 체포하기 위한 국회의 동의를 요구했다. 보안법의 위반은 최고 7년 형을 선고 받는다.
두 정당은 올해 초 이래 계속, 새 헌법 문제로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었다. 여당인 민정당은 상징적인 대통령과 강력한 수상이 인도하는 위원내각제를 주장했다.
신민당은 현재의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방식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직선 대통령제를 주장했다. 두 정당은 다음 해 초,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칠 작정이었다.
그것은 1988년 ‘전’대통령의 임기만료 전에 선거실시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 의원의 체포와 함께 그 과정은 대단히 험난할 것이다.
1986년 10월 27일
미 국무성 초청 방미
나는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1994년 6월 15일부터 25일까지 미국을 방문하였다. 나의 처 남영자(南永慈)와 양순석 보좌관과 함께 갔다. 미국 체재중 미국방성(Pentagon)을 방문하여 한국담당관 Wallace Knowles와 DIA 한국 책임자 Guy Allegony와 한반도 긴장문제에 대한 토론을 가졌으며 미국 국제전략연구소 (CSIS)를 방문 Dr. William Taylor 회장 및 Dr. Gerrit Dorg와 면담 북한의 현실과 한반도 문제 등을 토의했다. 나는 한국관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코리아 소사어티(Korea Society)에서 한반도 문제로 주제발표를 했다.
5월 18일
알링턴 국립묘지의 John. F. Kennedy 묘소를 참배했다.
미 조지 워싱턴 대학, 수여, 인권상 수상
6월 20일
한승수 주미대사와 조찬을 마치고 James Lilly 전 주한대사와 만나 환담을 교환하였다. 12시 30분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초청 오찬 포럼에 참석 주제발표를 하였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인권 및 민주개혁에 대한 공로표창을 받는 것은 내 일생에서 참으로 행복한 상이었다.
6월 21일
국회 상원 공화당 원내 총무 방문
Robert Dole 상원 위원과 면담
1994년 10월 10일
대만 정부 초청으로 대만 방문
2002년 오마이뉴스(Ohmynews) 인터뷰
나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반대 했고, 개정은 찬성했다.
2005년
“비상국민회의”(반핵반김운동) 공동의장 (대표의장 이철승)
2009년 <시사오늘>과 인터뷰 “민주산악회 기원문제였다.”
2012년 1월 <시사오늘>과 인터뷰 “국민생각당의 이념문제”
2012년 3월 산행과 산책
좌우명 : 행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