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 사건과 진보당 해산…진보세력 활동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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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 사건과 진보당 해산…진보세력 활동 '위축'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4.12.22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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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부터 이정희까지…대한민국 진보세력의 역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헌재의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이 19일 해산됐다. 통진당의 해산은 '헌재 결정'으론 최초지만, 우리나라 헌정사(史)로는 두번째다. 1958년 조봉암의 진보당이 해산된 바 있다. 조봉암의 진보당 해산은 오재경 공보실장(장관)의 등록 취소를 통해 행정처분으로 해산됐다.

조봉암의 돌풍, 두려운 이승만

1956년, 제3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신익희가 유세 도중 졸도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쟁자가 없어진 이승만은 무난한 3선을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신익희와 단일화를 이뤘던 조봉암이었다.

진보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던 조봉함은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30%의 득표율을 보였다.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11.4%를 얻은 것에 비하면 약 3배 가량 많은 득표율을 보인 것. 진보세력의 '돌풍'이었다.

이승만은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 위협을 느꼈다. 1958년 1월 13일 자유당 정권은 이른바 '진보당 사건'을 발표했다. 조봉암이 북한 간첩에게 정치자금(공작금)을 받고, 북한의 지령에 따라 간첩행위를 해 대한민국을 음해한다는 내용이다.

자유당 정권은 2월 25일 진보당의 정당 등록을 취소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당 해산이다. 그리고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을 기소했다.

1심 재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로 인정됐지만, 간첩 및 간첩방조죄의 증거들에 대해선 대부분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무죄로 인정받아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그러자 '대한반공청년회' 시위대가 법원 청사에 난입해 1심 판결을 비판하며 "조봉암 일당에 간첩죄를 적용하라", "친공판사 유병진을 타도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시위대의 법정 난입 이후 2심 재판부의 기류는 크게 달라졌다. 재판부는 다른 진보당 간부들은 무죄라고 결정했지만 조봉암에겐 간첩죄를 적용,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2심과 마찬가지 판단을 내렸다.

조봉암은 재심 청구가 기각된 이후 1959년 7월 31일 교수형을 당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 ⓒ 뉴시스

진보당 해산, 조봉암 사형…그 이후

2007년 9월 27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보당 사건이 조작된 것을 인정하고 조봉암 사형을 정치탄압이자 인권유린으로 결정했다. 국가의 유가족에 대한 사과와 독립유공자 인정, 판결에 대한 재심 등을 권고했다. 결국 2011년 1월 16일 대법원은 조봉암의 재심사건 선고 공판에서 대법관 13명의 전원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렇다면 '진보당'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1959년 조봉암이 사형된 후 진보당은 와해됐다. 조봉암 재판에서 대법원이 진보당의 정강 정책에 대해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지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진보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모습을 드러내면 '간첩' 딱지가 붙어질까 노심초사했다.

진보정당은 1986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다시 등장했다.

1988년에는 민중의당과 한겨레민주당이, 1990년에는 민중당이, 1992년에는 한국노동당이, 1997년에는 건설국민승리21이, 1998년에는 청년진보당 등이 등장하며 진보세력을 키웠다. 이 중 건설국민승리21은 현재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의 전신이다.

건설국민승리 21은 2000년 민주노동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했던 대한민국의 정당으로, 사회민주주의를 당의 이념으로 설정했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에선 권영길 후보가 출마해 3.9%(96만 표)를 얻었다. 15대 대선 당시 얻었던 30만 표(1.2%)보다 3배 이상 '수직상승'을 한 것. 

민주노동당은 이 기세를 몰아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정당득표율 8.13%를 기록하며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꺾고 제3당으로 뛰어올랐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선 민주노동당에서 10석이 당선되며 제3당의 입지를 굳혔다.

그러다 2011년 초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을 중심으로 '진보대통합' 논의가 시작됐다. 논의 도중 사회당과 진보신당이 이탈하고 국민참여당과 노회찬, 심상정 등이 속한 새진보통합연대가 진보대통합 대열에 남아 통합진보당의 한 축이 됐다.

이후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3명을 당선시키며 야권 '돌풍'을 일으켰다.

그해 8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사건이 일어난 후 통합진보당 내 '구 당권파'의 패권적 당 운영과 친북적 행태를 비판하며 강기갑, 권영길, 천영세,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 유시민 등이 대거 탈당했다. 이들은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2013년 7월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꿨다.

통진당 해산으로 진보 정당 활동, 위축될까

진보 세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통합진보당은 19일 헌재의 판결로 해산이 결정됐다. 통진당의 대체 정당의 창설이나 유사 명칭의 사용은 금지된다.

'조봉암 사건'이후 진보 세력의 활동이 위축됐듯, 통진당 정당 해산 심판 이후에도 진보 세력이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통진당이 사라지고 난 후 실질적으로 진보정당은 정의당만 남는다. 정의당은 통진당과 차별을 두지 않으면 종북 프레임이 쉽게 걸릴 수 있다. 새정치연합도 통진당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꺼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칫하면 '종북 프레임'에 걸려 여론이 등을 돌릴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보세력 뿐만 아닌 진보정당 전체가 위축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체제의 문제점들에 대해 엄정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통진당과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2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진보 세력은 현재 소수 정당으로 존재하며 주류 세력이 아니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의 지지율을 합친다 하더라도 10%가 나오지 않는다"라며 "정의당이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당분간 몇 년 동안은 진보세력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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