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숙, “한류 성공 콘텐츠가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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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숙, “한류 성공 콘텐츠가 열쇠”
  • 정세운·최신형 기자
  • 승인 2010.05.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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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숙 방송인
방송인에서 한류박사 변신...구성주의시대 '한류' 주인돼야

‘방송인 박정숙’으로 더 잘 알려진 박정숙(40)경희대 교수가 ‘한류의 유기적 파워’라는 새로운 담론을 들고 한류문화를 선도하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지난 1993년 본격적인 방송활동을 시작한 그는 인기정점에 올라있던 2004년 홀연히 유학 길에 올랐다. 그가 그동안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을 오가며 한 일은 ‘공부’다. 때문에 그는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세계에 전달하는 전문가로 변신해 있었다. 지나가는 봄을 뒤로하고 어느덧 제법 더워진 지난 5월 28일, 서울 남산의 한 카페에서 그의 ‘한류학’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 민간외교 전문가로 평가받는 박정숙 경희대 교수는 한류의 성공은 좋은 콘텐츠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 시사오늘 권희정

-박 교수께서는 일찍부터 방송 일을 하면서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어항 속에 놓인 물고기’ 같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어요. 세상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보면 구속받으면서 사는 편은 아닌 거 같아요.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면 어항 속에 놓인 물고기 같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나는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특별히 구속받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실제 지난 1993년 대전엑스포 홍보사절로 본격적인 방송활동을 시작한 박정숙 교수는 이후 ‘출발 모닝와이드’ ‘아주 특별한 아침’ ‘토크쇼 임성훈과 함께’ ‘장학퀴즈’ 등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MC로 활약하며 지적이고 발랄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2000년 MBC 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한 박정숙은 MBC ‘대장금’에서 중전 역으로 출연해 인기를 모았으며 CF에도 다수 출연하기도 했다.

-방송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사람들은 22살 때 처음으로 방송을 하게 된 줄 알고 있지만, 사실 20살 때부터 방송을 했어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작한 거죠. 교육방송이 생기기 전 당시 KBS 3TV에서 직업의 세계, 초등학교 자연 선생님 등 진행자로 데뷔했죠. 이후 22살 때인 1993년 대전 엑스포 홍보대사를 하게 됐어요. 20년 동안 방송 진행을 한 셈이죠.”
 
정체성 찾기 위해 미국행 선택
 
-지난 2004년 인기를 뒤로 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어떤 목표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나요.
“2004년 대장금이 끝난 이후 참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CF도 많이 찍으면서 돈도 벌고요.(웃음). 그런데 방송인 생활을 20년 정도 하다보니까 어느 순간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어요. 데일리 프로그램은 많은 매력이 있지만, 사실 피를 말리는 전쟁이잖아요. 그러면서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제가 중요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너무 빠르게만 살았지, 느리게 사는 의미를 몰랐던 거죠. 나의 정체성도 찾고 쉬면서 잠시 멈추고 싶었어요. 혹시 솔개이론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솔개는 조류 중에서 가장 장수하는 동물인데요. 솔개는 약40살 정도가 되면 발톱이 노화돼 자기 본능이 퇴화되죠. 퇴화된 솔개는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를 빠지게 만들어요. 그러면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잖아요. 결국 30년 이상을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건 우리 인간들에게도 적용되는 거 같아요.”

MBC TV ‘임성훈과 함께'’등을 진행하며 MC로 이름을 날리던 박정숙이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은 2004년 10월. 처음에는 연구원 자격으로 초청받았던 컬럼비아대에서 2006년 9월부터 ‘국제관계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을, 일본 게이오대 법학부 연구 프로젝트 ‘시민사회와 문화 연구’ 팀의 일원으로 연구하기도 했다.

-쉬고 싶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외국에서 공부하시느라 쉴 틈이 없었을 것 같은데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 배우는 것을 참 좋아 했던 거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왜 늦도록 공부하냐’고 많이 물어보시던데, 그때마다 제가 웃으면서 이런 얘기를 해요. ‘배우는 게 취미’라고. 엑스포 홍보사절, 방송 진행자를 하면서 ‘대한민국을 외국에 소개해야 된다’라는 의무감이 항상 있었어요. 그런 생각들이 저를 채찍질하는 것 같아요.”
 
한국의 케이티 커릭을 꿈꾸는 박정숙 교수 
▲박 교수는 골프 승마 재즈댄스 등 만능스포츠맨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인 시절 롤 모델은 없었습니까. 
“아! 있었어요. 미국 3대 방송의 저녁 프라임타임 뉴스를 처음으로 단독 진행한 케이티 커릭이요. 그녀처럼 대중들의 아침을 깨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사실 아침은 가장 편하기도 하면서 잠이 덜 깨 피곤한 시간이잖아요. 그 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과 소통한다는 건 참 의미 있는 일 인거 같아요.”

 -예전에 인터뷰한 자료들을 찾다보니, ‘정치컨설턴트’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유학길에 오른 게 혹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요.
“(웃음)저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요. 예전에는 정치 이벤트, 정치 캠페인 등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가볍게 살고 싶어요.”

-정치권에서 제의 오신 적은 없었습니까.
“지금은 ‘한식세계화 추진위원회’, ‘음식문화개선 범국민운동본부 ’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정치권에 들어가야만 공익적인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요즘은 정치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은 거 같아요.”

-인터뷰 자료들을 섭렵하다보면 ‘바버라월터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한국 풍토에서 ‘바버라월터스’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까.
“그럼요. 지금은 가능하죠. 사실 대한민국이 글로벌화 됐잖아요.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높이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우리도 그런 풍토가 됐다고 봅니다.”

필자는 아직까지 시사토론 등을 주관하는 여성 진행자를 보진 못한 것 같다. 박 교수는 아마도 자신의 비람을 ‘글로벌화’란 단어를 통해 말하고 있는 듯 싶었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에 테니스, 골프, 승마, 재즈댄스 등 많은 운동을 했어요. 근데 요즘은 바빠서 별로 안 해요. 숨쉬기 운동은 매일 하고 있어요(웃음)."

-유명 연예인 말고 한류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영희 한복디자이너, 이상봉 패션디자이너 등이 대표적이죠.”

-문화적인 측면에서 한류연구를 하고 계신데요. 사실 한류열풍은 욘사마 열풍 등  대중문화에서 시작됐습니다. 차이가 있습니까.
“배용준씨는 연기를 통해 배용준을 보여줌으로써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거잖아요. 배용준씨 자체가 콘텐츠라고 할 수 있죠. 반면 저는 콘텐츠는 아니잖아요. 그냥 한류라는 것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정리하는, 또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죠. 하버드에서 강의할 때 거기 계시던 교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한류가 학문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간헐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요. 깊이 있게, 넓게 공부해야 된다는 말을 하셨어요. 그래서 학위를 따면서까지 한류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이유가 한류의 데이터베이스화, 시스템화 때문이죠.”

-요즘은 ‘방송인 박정숙’보다 ‘한류 연구가’, ‘민간외교전문가’로 널이 알려져 있는데, 왜 갑자기 진로를, 그것도 한류를 선택하셨습니까.
“미국 등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의 이미지는 대게 3가지에요. 북한, 독도, 동북공정이죠. 외국 사람들은 한국을 볼 때 한국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꼭 다른 나라와 연계해서 봤어요. 그러던 중 미국에서 심포지엄을 하게 됐어요. 한류를 문화적, 경제적으로 분석하는 거였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한국에서 방송진행자로, 문화전공자로 활동했는데, 한류를 문화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누가 저에게 한류에 대해서 물어볼까봐 무서워서 도망갔죠(웃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류를 문화적인 측면에서 국제관계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할 필요성을 느꼈던 거 같아요.”
 
구성주의, 한류의 새 패러다임
 
-한류를 문화적으로 국제관계학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한류의 다른 모습이 있었습니까.
“냉전 시대의 산물인 현실주의에서 탈냉전 시대의 자유주의로 세계가 변하고 있잖아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시대는 끝난 거죠. 이제는 구성주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구성주의란 개인이 이 세상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해요. 내가 옳다고 믿으면 집합체적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거죠. 구성주의 시대에는 ‘사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예컨대 어떤 정치인이 기업에 돈을 받았는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잖아요. 그냥 돈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뉘어 파워가 센 쪽으로 여론의 균형추가 쏠리는 거죠. 그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 혹은 사실인지, 아닌지는 소비자 자신이 결정하는 거죠.”

-그럼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지 않나요.
“포퓰리즘은 선동가가 필요하잖아요. 지금은 선동을 해도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절대 따라가지 않아요. 요즘 사람들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확실한 자기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무비판적으로 그냥 좇아가게 되요.”

-구성주의라는 담론이 주류가 되는 게 옳은 방향인가요.
“구성주의에는 옳고 그름이 없죠. 세상이 변했잖아요. 내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만 존재하는 거죠. 우리가 보통 대학 다닐 때 유명한 교수님들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 수강신청 전쟁을 했잖아요, 근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유명한 교수님들 수업을 많은 사람들이 안 듣는 거예요. 그 만큼 세상이 자기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시대로 변화고 있어요. 냉전시대에는 Top-down 방식으로 누군가에 의해 의존적인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의존성에서 탈피해 자신이 주체가 되는 그런 시대가 된 거죠.”
 
한류 콘텐츠의 질적 향상 필요
 
-일부에서는 ‘한류에 문화가 없다’는 비판을 합니다. 이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면에 골몰됐음을 지적하는 의미인데, 한류 문화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위한 방안이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그간 한류는 3단계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했어요. 맨 처음에는 정부 주도로, 그 다음 드라마, 영화 등 경제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으로, 마지막은 바로 생활양식이죠. 제가 미국에서 한류를 공부하고 들어와서 맨 처음 KOICA(한국국제협력단) 홍보대사를 했어요. 당시 KOICA의 캐치프레이즈가 ‘한류는 사람이다’였어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새롭게 하나의 문화 담론으로 생성되는 거죠. 이런 생활양식들이 진정한 한류거든요. 우리나라의 IT, 기업들의 신속한 서비스 문화 등은 세계적으로 굉장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을 전세계에 알리는데 제가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박 교수가 말하는 구성주의 이론에 의하면 한국정치나 한국언론 등이 방향성을 가지고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듯싶다.

-이젠 국가가 인위적으로 한류를 선도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정책화시켜 국가이익을 목적으로 콘텐츠를 개발해 상품화시킨다면 한류의 매력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소비자는 자신이 찾은 콘텐츠에 집중하려하지 의도적인 주입식 콘텐츠엔 가차 없이 등을 돌리게 됩니다.”

-한류의 제3단계를 생활양식이라고 하셨는데요. 그게 성립이 되려면 우리나라에 대한 동경이 있어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반한류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요.
“원래 새로운 문화를 수입하는 나라는 자국 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자국 기업들의 이익을 침범하니까요. 지금의 중국이 반한 감정이 그렇거든요, 중국은 현재 다른 나라에 대한 콘텐츠 수입을 10% 이내로 규제하고 있어요.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필연적으로 불법 다운로드가 발생되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잖아요. 그건 중국 산업을 좀 먹는 일이예요. 구성주의 시대에는 자기가 좋아하면 봐야 되요. 그 다음 뭐가 있냐면, 혐한류가 있죠. 대표적으로 일본이 그런데, 그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특수성에 기인한 거죠. 그걸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면 문화 장벽만 심화될 뿐이죠.”

-구성주의라는 게 결국 시장원리에 입각해 수요와 공급이 만날 수 있도록 규제완화를 하자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건가요.
“네, 중국이 다른 나라의 콘텐츠 수입을 규제한다고 해서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사람들이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 흐름은 막을 수 없잖아요.”

-그럼 스크린 쿼터제 같은 문화적인 규제를 반대하시는 입장인가요.
“시대가 바르게 변화고 있어서 문화적인 규제는 효율성이 낮아요. 예전 IT 산업이 발전하기 전 스크린 쿼터제를 하면 영화를 보지 못했잖아요. 이제는 스크린 쿼터제를 한다 해도 불법다운로드를 통해서 다 볼 수 있죠. 생활양식이 이렇게 변화고 있는데 규제가 만능은 아니죠.”

-구성주의 관점에서 보면 언론의 경우도 확실히 자기 색깔을 가져야겠네요.
“아니죠. 보수나 진보, 이런 색깔보다는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론이 보수와 진보라는 색깔을 가지는 것도 파워를 갖고 싶어서요. 예전에는 언론의 힘이 막강했잖아요.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면 정보를 접할 수 없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은 UCC, 트위터 등 독자들이 뉴스를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 다원화되고 급격히 변화는 시대에 언론이 색깔만 강조한다고 독자들이 따라올까요. 다양한 콘텐츠를 양질로 제공해야 한다고 봐요.”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드라마 등 수출이 급감하는 상황이잖아요. 한류 침체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류의 시작은 생활양식이고 좋은 콘텐츠입니다. 한류를 지나치게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한류 침체가 될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국가가 아닌 전문가 등 민간 차원에서 다양하고 유기적인 콘텐츠를 바탕으로 심도 있는 연구를 하고 그 바탕에서 자연스러운 하나의 생활양식이 나타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류 콘텐츠를 계속 강조하시는데, 결국 상업적인 측면에 치우칠 수밖에 없지 않나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면 돈이 따라오는 거지, 인위적으로 상업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건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급 콘텐츠가 일부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는 있겠지만, 일시적인 현상이지 그것을 계속 강조하다보면 대한민국이 후진적인 국가로 인식될 수밖에 없죠.”
 
▲박 교수는 앞으로도 계속 한류 연구를 해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비자 중심의 유기적 파워가 중요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한류관련 세미나를 주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구성주의 시각에서 본 아시아 국제관계를 재구성한 한류의 역할’이었어요. 그러면서 한류는 소비자 중심의 유기적 파워(organic power)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 나라에 이질적인 문화가 유입되면 처음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때문에 수요가 생기게 되지만 그 나라 문화로 유입되는 순간 수요가 떨어지잖아요. 한류 역시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드라마, 영화 등 미디어의 영역을 넘어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발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유기적 파워(organic power)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콘텐츠가 다른 국가와 문화의 다양성에 따라 재구성 된다는 거예요. 예컨대 욘사마 배용준씨가 아시아 국가에서 많은 인기를 끌며 한류 열풍을 주도했지만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 별로 인기 요인이 다르잖아요. 일본 같은 나라는 욘사마가 가지고 있는 남성적인 이미지를 좋아하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우엔 한국에 있는 좋은 카페 등 문화적인 측면에서 어필을 한 거죠. 그런 식의 어떤 기대감 등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웹상에서 파워를 만들게 되는 거죠. 한마디로 소비자 지향적인 문화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기적 파워는 소비자가 스스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념입니까.
“네, 소프트 파워가 의도적으로 수용자에게 문화를 설득시키는 개념이라면, 유기적 파워는 수용자 스스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념입니다. 한류는 소비자 지향의 문화로 북한과 같은 고립사회에도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할 수 있어요. 결국 외교가 할 수 없는 민간 감정부분을 소통시키는 도구라고 할 수 있죠.”

-미국 공영방송 PBS의 13부작 한식 다큐멘터리 '스톱 앤드 밥(Stop and Bap)'의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하기까지 그 과정을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내년 1월 방송될 미국 공영방송 PBS의 13부작 한식 다큐멘터리 '스톱 앤드 밥(Stop and Bap)'의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국 각지의 한식당을 직접 방문,‘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국의 매혹적인 풍광과 함께 각 지역의 문화와 토속 요리를 소개하게 됩니다. 저는 비중 있게 참여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조언자 역할 정도입니다(웃음).”

1회 30분 분량인 PBS의 13부작 한식 다큐멘터리 ‘스톱 앤드 밥’은 뉴욕 소재의 프라페 프로덕션이 한국방문의해 위원회, 한식재단,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수산식품부의 지원과 한국 미국 각 기업의 후원을 받아 제작하고 있다. ‘스톱 앤드 밥’은 2011년 1월부터 2년간 미국의 공영 방송 PBS 채널을 통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방송할 예정이다. 또 이들은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답고 먹거리가 풍성한 2011년 9월에 다시 한국을 방문해 한국 발효 식품 안에 담긴 깊은 맛과 과학, 쌀을 이용해 만든 다양한 음식, 그리고 우수성을 인정받는 질 좋은 한우 고기 등을 방송에 담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앞으로도 계속 한류 연구를 통해서 한류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전세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공부도 계속하고, 민간외교부분에 충실해 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생활양식을 알려야죠.”

필자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결혼 계획은 없냐’고 물었더니 박 교수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답했다. 솔직히 박 교수처럼 예쁜 외모와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결혼상대자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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