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삶' 모르는 정치권, 연말정산 논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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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삶' 모르는 정치권, 연말정산 논란의 시작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01.20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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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서민 부담 43만 원, "얼마 안 늘어나"
버스비, 라면 값, 최저임금 알지 못하는 정치인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근홍 기자)

▲ 돈 지폐 ⓒ 뉴시스

'13월의 보너스'라 불리던 연말정산이 소득공제 주요 항목이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되레 '13월의 세금폭탄'을 맞게 된 국민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소득공제란 세율이 곱해지기 전 소득에서 일부 금액을 깎아주는 것(과표 공제)으로 동일한 금액이 공제되더라도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세금을 더 많이 감면받게 되는 역진적 성격을 띤다. 반면, 세액공제란 최종 산출된 세금 중 일부를 빼주는 것(세금 공제)으로, 중상위 계층 이상부터는 소득 세금을 누진적으로 더 내게 하는 이른바 '하후상박' 성격을 갖는다.

고소득층에게 유리했던 기존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한 것은 분명 조세형평성 측면에서 바람직하고 전향적인 조치지만, 5500만 원 이하 소득자는 변동이 없거나 세금을 덜 내게 될 것이라는 기획재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오히려 세금을 더 내야 되는 경우가 다량 발생하고 있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모양새다.

기획재정부가 뒤늦게 자녀수·노후대비 감안해 공제 혜택을 강화하는 세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2014년분 연말정산에는 적용이 안 돼 '늦장대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정부와 정치권은 정말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서민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서민의 삶'을 모를 뿐이었다.

▲ 제19대 321회 9차 조세소위원회 회의록中 ⓒ 시사오늘

서민 부담 43만 원, "얼마 안 늘어나"
버스비, 라면 값, 최저임금 알지 못하는 정치인들

<시사오늘>은 지난 2013년 12월에 열린 제19대 국회 321회 9차 조세소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봤다. 동 회의는 1년 뒤 연말정산 논란을 불러올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국회의원과 정부 측 관계자가 논의하는 자리였다. 회의록에 따르면 이들은 이미 중산층의 세금 부담이 커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생각하는 '부담'과 서민들이 느끼는 '부담'은 큰 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들에게 '43만 원'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 중산층 부담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다. 중산층들이 애들 대학 보내고 중고등학교 보내기 굉장히 힘들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한다면 조세형평성 측면의) 좋은 점이 있지만 중산층이 아주 정말 등골이 부러지는데 거기에 대해 이런 부담을 지우는 거다.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 아니, 중산층 부담 안 늘어나도록 다 조정했다.

○기획재정부 김낙희 세제실장- 중산층이라고 하는 부분이 지금 8600만 원 이하 소득자까지는 의료비, 교육비 안 늘어난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 아니,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표를 보면 8000만 원 이하 소득자까지 43만 원 늘어난다.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 그러니까 얼마 안 늘어난다.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 자, 이 정도 했으니까 일단 내가 정리를 하고 우리가 나중에 밖에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 예, 그렇게 합시다.

<제321회-기획재정소위제9차(2013년12월24일), 37~39p>

43만 원이 얼마 안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1년 뒤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 예측했을 리 만무하다. 정치권이 '서민의 삶'을 잘 모르기에 '13월의 세금폭탄'이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민초들의 현실을 알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2008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섰던 정몽준 전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된 전당대회 토론회에서 '버스 기본요금이 얼만지 아느냐'는 질문에 "요즘은 카드로 타는데 한 번 탈 때 70원 하나'"라고 대답해 국민들에게 '쓴 웃음'을 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한 언론사가 주최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올해 아르바이트 최저시급은 4580원과 5500원 중 무엇이냐'는 물음에 "최저임금이 5천 원 조금 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정답은 4580원(2012년 기준)이었고, 박 대통령은 "아르바이트 시급이 5000원이 안 되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은 2013년 '민생 난제의 생생한 현실을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듣겠습니다'라는 좌담회를 국회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라면 한 박스를 꺼내 뜯으며 '이거 얼마지 아느냐'고 묻자 안 의원은 "1000원"이라고 대답했다. 참석자가 꺼낸 라면 제품명은 농심 신라면, 당시 박스당 2만~2만 3000원 선에서 시중 판매됐다.

소득공제→세액공제 전환은 복지국가로서 바람직한 방향, 하지만…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한 것은 조세형평성과 소득 재분배 측면에서 효과가 크다. 공제를 줄여 세금을 더 걷고, 이를 통해 복지를 늘리는 것은 복지국가로서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가 충분한 논의를 통해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고, 국민들이 느낄 세금 부담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했다면 이번 연말정산 논란은 지금처럼 크게 불거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3만 원'의 소중함을 모르는, '서민의 삶'을 모르는 우리 정치권에게는 요원(遙遠)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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