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경영시대 ‘활짝’
스크롤 이동 상태바
자매 경영시대 ‘활짝’
  • 이상택 기자
  • 승인 2010.06.01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양그룹 필두 보령·대상도...여성 섬세함, 감성경영 강점
유교 사회이던 조선시대에는 여인네들을 옥죄는 별의별 관습이 많았다. 하물며 남편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합법적인 것도 있었다하니 바로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겠지만 당시에는 이혼 강제사유로도 악용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자식을 낳지 못하는 무자(無子)는 대(代) 잇기를 중시하던 당시 상황에선 있어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 때는 무자식 상팔자란 말이 없었는지…. 자식을 낳는다 해도 아들을 못 낳으면 그것도 무자만큼이나 시가(媤家)의 눈총을 샀다.
 
그러다보니 양자를 얻거나, 씨받이를 들여 아들을 낳게 하는 못된 풍습도 필요악처럼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아들을 못 낳는다고 시댁 식구들이 구박한다면 친정 식구들이 몰려가 한바탕 난장을 쳐도 아무 말 못하는 세상이 됐다.

‘아들을 낳으면 버스를 타고 딸을 낳으면 비행기를 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상이 많이 변하고 좋아졌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기업경영에서도 나타난다. 장자(長子)에게 무조건 기업을 물려주던 경영풍습이 큰아들은 아니지만 똑똑한 아들이 승계하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아들이 없는 기업은 딸이 자연스럽게 선대의 사업을 물려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심지어는 아들을 제치고 딸이 경영을 맡는 경우도 있어 세상이 확실히 능력위주로 변한 것 같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말이 요즘 부쩍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 동양레저 이해경 부회장과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 부부     © 뉴시스

얼마 전 스포츠신문을 중심으로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 임세령(31)씨에 대한 얘기가 화제가 됐다. 
 
배우 이정재와 함께 필리핀을 같이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둘의 관계가 스캔들처럼 비쳐졌지만 평소 음식에 관심이 많은 세령씨가 외식사업 구상차 외유를 했다는 소식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상황은 본의 아니게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상황이 정리되면서 스캔들 보도는 없어지고 대상그룹 후계구도가 어찌 될 지에 대한 관심으로 논조가 바뀐 것이다.
 
사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대상그룹 승계 1순위는 둘째 딸 상민(30)씨였다. 상민씨는 연년생인 언니 세령씨 보다 보유 주식이 많고 집안에서도 밀어주는 분위기였다.

상민씨는 이화여대 졸업후 미국 유학을 거쳐 계열사인 UTC인베스트먼트에서 작년 중순 그만둘 때까지 경영수업을 쌓았다.
 
지난 2006년에는 나드리화장품 인수를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곧 경영일선에 나설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다.

UTC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상민씨가 차장 직급으로 근무하다, 작년 중반경 퇴사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했는지는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언니 세령씨가 이재용(42) 삼성전자 부사장과 결혼, 삼성가의 여느 며느리처럼 내조에만 매달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민씨의 경영권 승계는 시간만 남겨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작년 3월 세령씨가 이 부사장과 합의 이혼하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돌싱녀가 된 세령씨가 장녀라 대상 후계구도에 변화가 올 것이란 또 다른 예측이 재계를 중심으로 조금씩 나돈 것도 이때다.

그러나 상민씨는 2009년 4월 아버지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어머니 박현주 여사의 대상홀딩스 주식 250만주를 사들이고, 이어 12월 대상홀딩스 주식 60만주를 매입해 주식수를 1389만2630주로 불렸다.
 
이는 세령씨의 대상홀딩스 총 주식 738만9242주보다 2배가량, 임 명예회장(107만1375주)과 박 여사(85만2502주)보다도 많은 것이다.
 
이로인해 대상家가 흠이 있는 장녀보다 차녀를 택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세령씨가 또 한번 사고(?)를 치면서 대상의 후계구도는 회사 측의 바램과 달리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됐다.
 
세령씨가 최근 그룹의 외식계열사 ‘와이즈 앤피’에서 론칭한 ‘터치 오브 스파이스’의 공동대표로 나섰기 때문이다.
 
'터치 오브 스파이스'는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향신료 음식문화가 발달한 아시아 각국의 요리를 전문으로 파는 레스토랑. 음식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세령씨가 맡기에 적격인 셈.
 
이를 바탕으로 세령씨가 영역을 넓혀갈 것이라는 게 재계의 전망이다.

더욱이 상민씨가 지난해 말 합격한 영국 런던의 비즈니스스쿨 입학을 위해 오는 7월경 영국으로 떠날 것으로 알려져 최소한 3~4년간은 세령씨 위주로 후계구도가 흐를 가능성이 높다.  
 
대상그룹측은 이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임 명예회장이 최소 십수년은 경영능력이 되는데 2세 경영 운운하는 것부터가 잘못됐다고 항변한다.     

그룹 관계자는 “후계 구도를 예측하긴 아직 이르다. 임 명예회장이 최소 15년간은 경영할 수 있을 정도로 건재하다. 더 이상 후계 구도에 대해 묻지 말라”며 잘라 말했다.
 
대상 장녀 외식계열사 대표로 경영 참여
 
자매 경영의 1세대는 동양그룹이다. 동양그룹 창업주는 지난 1989년 작고한 서남 이양구 회장. 이 회장은 1960년대초 박정희 전대통령과 독대하면서 “이 나라를 위해 일을 잘 해달라”고 부탁할 만큼 강직한 인물로 소문이 나 있다. 이런 이 회장을 빗대 박 대통령이 ‘철학자’란 별명을 지어줬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강직한 인물 뒤에 어찌 약졸이 있을 수 있겠나.
 
이 회장은 슬하에 아들은 없지만 아들보다 똑똑하고 영민한 두 딸이 있다. 이혜경(58)씨와 이화경(54)씨가 그들이다.
 
동양그룹이 금융과 중공업 위주의 동양그룹과 식품 위주의 오리온그룹으로 나뉘어지면서 이들 자매의 운명도 자연스럽게 갈렸다.

언니인 혜경씨는 한 동안 전업주부로 활동하다 경영에 뛰어든 케이스다. 이화여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한 그는 1990년 동양매직 디자인 담당 고문을 시작으로 그룹의 디자인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동양그룹이 디자인경영을 선언하면서는 CDO(Chief Design Office)를 맡으며 남편(현재현 회장)을 보필하고 있다.

지금 그의 공식 직책은 동양레저 부회장. 레저와 패션, 온라인 등 신규사업의 디자인은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서울 여의도의 동양종합금융증권 골드센터, 강원도 삼척 파인밸리, 경기도 안성시 웨스트파인 골프장 등이 그의 작품이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디자인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며 “매일 출근할 정도로 열정적이다”라고 말했다.
 
동생인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의 경력도 화려하다. 남편인 담철곤 회장과 경영일선에 서 있는 그는 동양그룹에서 분가 후 오리온의 외식사업과 엔터테인먼트사업을 주도했다.

2001년 오리온그룹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담당 CEO, 케이블TV를 관할하는 미디어플렉스 사장 등을 걸쳤고, 2002년에는 아예 베니건스 등 외식사업을 따로 묶은 외식법인 롸이즈온 대표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올 들어 회사 경영 방침이 ‘선택과 집중’으로 바뀌고, 외식브랜드 ‘마케도’를 제외한 외식법인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접고 해외사업에 올인하기로 하면서 지난 3월부터는 그룹의 마케팅과 기획부문을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기획과 마케팅부문을 전담하며 향후 식품전문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대상그룹 장녀 터치오브스파이스 임세령 대표, 대상그룹 둘째딸 임상민씨, 오리온 이회경 부회장, 보령제약 김은선 회장, 보령메디앙스 김은정 부회장(왼쪽부터)                                  © 시사오늘

자매경영 1세대 동양그룹의 두 딸

 
제약그룹 보령제약그룹도 딸들이 경영을 맡고 있다. 김승호 보령회장을 필두로 장녀와 4녀가 회사를 이끌고 있는 것.
 
큰 그림은 김승호 회장이 그리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두딸이 맡고 있는다게 그룹측 설명이다. 

장녀인 김은선(52)씨는 보령제약 회장, 4녀인 김은정씨는 유아용품 전문업체인 보령메디앙스 부회장이다. 둘째와 셋째 딸은 전업주부로 지분도 없고, 회사경영에도 전혀 관여치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선 회장은 제약업계에선 처음으로 여성이 회장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 2009년 1월의 일이다. 김 회장은 보령제약주 76만8232주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김 회장은 1986년 보령제약에 입사해 2000년 사장에 오르기까지 주로 기획과 마케팅 분야에서 일 해왔다. 용각산, 겔포스 등이 국민의약품이 되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회사 분위기를 이끌고 직원들과의 소통도 원활하다고 한다.
 
보령그룹 관계자는 “제약업체는 영업이 중심이라 거칠지만 회장님은 때론 남자와 같이 밀어붙이기도 하면서 이웃집 누나와 같은 포근함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북 돋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회장은 보령제약의 혁신을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다.
 
회장 취임후 ‘이노 비알(inno-BR)'을 주도하며 제약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바 있고, 올해도 생산성 향상과 마인드 혁신을 부르짖고 있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보령제약이 올해 창립 53년을 맞았는데 이러한 혁신활동을 통해 100년 기업을 만들자고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이런 리더십 덕분인지 보령제약의 매출도 큰 폭으로 뛰고 있다.
 
지난 2008년 보령제약의 매출은 2232억원에 영업이익은 90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회장 취임 후인 2009년 성적표는 매출 2678억원에 영업이익 102억원이다.

이같은 기세는 올 1분기에도 이어져 매출은 719억원으로 전년동기 639억원에 비해 10% 가량이 늘었고, 영업이익도 28억1400만원에서 35억7200만원으로 15% 가량이 증가했다.
 
보령메디앙스 김은정(41)부회장도 야무지기로 소문이 나 있다.
 
관련업계에는 김 부회장이 사업다각화로 메디앙스를 유아용품업계 선두업체로 이끌었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김 부회장의 메디앙스 보유주식은 총 209만2004주다.

김 부회장은 1994년 보령제약에 입사해 1997년 보령메디앙스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김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창립 31주년 기념식에서 새로운 사업계획도 발표했다. 글로벌 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생활문화기업이 되겠다는 것. 유아용품에 국한하지 않고 사업영역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엄마가 인정하는 최고의 기업을 만들겠다”는 김 부회장이 이번엔 어떤 작품을 만들지 주목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