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박근혜 끝나지 않은 전쟁
스크롤 이동 상태바
MB-박근혜 끝나지 않은 전쟁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5.01.30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7년 경선부터 감정싸움 양상
MB 회고록 출간으로 ‘재점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간의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 친이(親李)와 친박(親朴)은 여전히 여권 내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정치권에 파장을 몰고온 ‘MB 회고록’도 박 대통령에겐 부담이 될 전망이다.

MB와 박 대통령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부각된 것은 2007년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다. 두 사람은 강한 수위의 네거티브 전투를 벌이며 열기 띈 선거전을 펼쳤다.

박근혜 후보 캠프의 최경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MB 최대의 스캔들인 ‘BBK 실소유주 의혹’을 터트린다. 이어 ‘이명박 불가론’을 내세우며 공세를 펼쳤다. 경선 막바지에는 도곡동 땅 차명 소유 논란도 불거지며 MB는 고전을 이어갔다. 친이계의 ‘2인자’ 이재오 의원 등은 그 해 8월 대검찰청에서 “검찰은 야당 경선에 개입하지 말라”며 방어전을 펴기도 했다.

MB 측도 가만있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의 동생 박근령 씨가 1990년대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최태민 목사로부터 언니를 구해달라’ 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다며 박근혜-최태민 관계 의혹을 거론, 비난했다.

그 외에도 양 진영은 UCC정치공작, 국정원 커넥션 의혹 등을 놓고 원색적인 비방전을 벌였다. 격화된 감정은 MB의 경선 승리, 그리고 대통령 당선 후에도 이어졌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의 ‘공천학살’이 일어났다. 다수의 친박 의원들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그 후 원내에 돌아오기 위해 한나라당을 탈당해 ‘친박연대(미래희망연대)’를 조직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맏형’ 서청원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됐고 친박계는 세의 위축을 막을 수 없었다.

2009년에 MB와 박 대통령은 이번엔 세종시를 두고 충돌했다.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려는 MB와 원안추진에 ‘+α’까지도 주장하는 박 대통령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이 해 12월엔 이완구 충남지사가 “MB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사퇴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박근혜 정부가 3년차를 맞은 올 해, 증세 논란 등으로 흔들리던 박 대통령은 또 다시 의외의 곳에서 견제구를 맞았다. 바로 MB 회고록 출간이다. MB는 회고록에서 지난 2009년 당시 자신이 추진했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배경은 당시 정가에 돌던 ‘정운찬 대세론’과 관련이 있다고 언급했다.

게다가 회의록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남북 접촉 비사 공개에 대해서도 MB측은 3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외교·안보 분야를) 박근혜 정부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북한과의 비공개 접촉이나 이런 것에 대해 실패한 비공개 접촉은 공개하지 말라는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에 청와대 측은 복수의 언론 등을 통해 “(세종시 원안고수 배경 내용 등은)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오해에서 한 것이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낸 상태다.

여권 정계의 한 소식통은 이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향세인 시점에서 MB의 회고록은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원내대표 선거, 친박-친이의 갈등 판도 등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