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 높여 대기업 영화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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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 높여 대기업 영화 판다"
  • 방글 기자
  • 승인 2015.02.05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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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산업 대진단①>"한국인에 문화 선택권은 없다…기업이 만든 수동적 문화생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방글 기자)

최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의 배급사 대표가 흥행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당시 엄 대표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공급의 양이 수요를 결정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형 배급사의 상영관 독식 문제를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영화업계 고질적 병폐라는 시각이 많다. 한국 영화계에 대한 문제점은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오히려 개훔방 엄 대표의 선언 이후, 영화인들의 곪아있던 불만이 하나 둘 터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사오늘>은 영화계 현실을 영화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고자 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대형 배급사들의 독식 문제와 함께 제작‧배급‧투자 분리의 필요성, 한국 문화의 획일화까지 다양한 한국 영화산업의 문제점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인터뷰는 지난 4일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가독성을 위해 말하는 사람은 구분하지 않고 정리한다.

“익명 작성만 약속해달라. 대형 배급사에 밉보였다가는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대형 배급사가 영화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나.

“대기업이 빵집을 장악한 것과 같은 위치다. 한국 영화산업은 대기업이 장악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영화관 보급에 힘써 국민들이 영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문화를 위한 일인가? 더 많은 영화관을 보급해서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것 아니었나. 대기업 들어오기 전에 영화가 없었던 게 아니다. 문화 산업이 돈이 될 것 같으니까 기업이 들어온 거지. 영화산업에 투자했다고? 그건 자기들이 하는 말이고. 결국 CJ가 투자한 영화는 CGV에서 틀어주고, 롯데가 투자한 영화는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하기 위한 것이다.”

-영화관에 상영관이 여러개 있다. 일부 상영관에서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를 상영한다고 쳐도 영화를 공급할 창구는 늘어난 것 아닌가.

“상영관이 늘어난 것은 사실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본다. 현재 한국의 상영관이 전국에 4000여 개 정도 있다고 치자. 이건 다시 말하면 4000여 개의 영화를 동시에 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3800개 관에서 같은 영화를 건다면, 상영관이 늘어난 데 어떤 의미가 있나. 다양한 영화를 많이 볼 수 있게 한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영화를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 뿐이다.”

“과거 서편제 나왔을 때 CGV있었나. 쉬리 흥행 당시 롯데시네마 있었나. 기업이 영화계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도 흥행은 있었다. 오히려 더 여러 영화가 흥행했다. 지금은 한 영화에 천만 관객이 몰리지만, 그 땐 열 개의 영화에 백만 씩 들어가던 시절이다. 스크린을 점유할 때가 아니니까 여러 편의 영화가 동시에 흥행할 수 있었던 거다. 이런 문제가 요즘 시작된 게 아니다. 800만 영화로 불리는 친구를 보자. 영화 하나를 몇 달씩 걸어놓는다. 요즘은 며칠만에 천만 하는 것 쉽다. 스크린이 많다고 다른 영화를 걸어주는 게 아니다. 10개 스크린 중 8개 스크린이 같은 영화를 상영하면, 수요가 없을 수 있겠나. 만들어진 천만 관객은 의미가 없다.”

▲ 대형 배급사들의 스크린 점령에 영화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연말 공정거래위원회는 CJ CGV와 롯데시네마의 배급사 차별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CGV가 지난 2012년 CJ E&M이 배급한 ‘R2B리턴투베이스’와 ‘광해’에 대해 스크린 수를 과도하게 편성해 흥행을 유도했다”고 지적하고, 3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롯데에 대해서도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해 지난 2012년 5월 개봉한 ‘돈의 맛’을 롯데시네마 스크린에 과도하게 배정에 흥행을 유도했다”며 23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영화의 좌석점유율이 경쟁 영화보다 저조할 경우, 스크린 수를 줄이거나 종영해야 하지만 흥행을 위해 무리하게 연장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공정위 제재는 영화계 대기업을 향한 첫 사례로 관심을 끌었지만, CJ CGV는 기준과 근거가 모호하다며 반발했다.

반면 영화업계는 오히려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고 반발해 눈길을 끌었다.

“상영 시간도 문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시간에 자기들이 배급한 영화를 건다. 다른 영화들을 보려면, 조조나 심야 등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시간대에 방문해야 한다. 관객은 선택권을 잃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 보여주는 영화를 봐야만 하는 시대가 온 거다.”

CJ CGV와 롯데시네마는 홈페이지를 통해 스크린 편성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이같은 배정 기준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좌석 점유율 대비 스크린 수를 지켰다 하더라도, 시간 편성 등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스크린 수가 영화 흥행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엄청나다. 스크린 수를 확보하면 관객들은 선택권을 잃어버린다.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 보여주는 영화를 보는 게 되는 거다. 대형 배급사의 물량 공세에 당할 수밖에 없다.”

담당업무 : 재계 및 정유화학·에너지·해운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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