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 이학수법, 공론화해야 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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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 이학수법, 공론화해야 하는 까닭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03.19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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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회가 하루 빨리 이학수법 논의에 나서길 촉구합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 '이학수법' 대표발의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왼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뉴시스

'이학수법(특정재산범죄수익등의환수및피해구제에관한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갑니다. 여야 합쳐 무려 104명의 의원이 서명한 법안입니다만, 국회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합니다. 언론도 공론화를 꺼리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이학수법은 위법성이 많습니다. 우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가 삼남매를 직접 겨냥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에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개별 표적 입법'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 더불어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학수 전 부회장 등이 이미 유죄 선고를 받고 처벌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죠. '소급입법' 논란도 있을 겁니다. 이학수법 시행 전 행위를 이유로 형사 처벌해선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학수법을 대표발의한 박영선 의원 측은 형사적인 접근이 아닌 민사적 몰수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는 주장이나, '재벌저격수'라 불리는 김상조 교수는 영미법 형식의 민사적 몰수 방식 도입보다는 현행 형사적 몰수 방식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학수법 제정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학수법과 우리 법체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만든 찬반 갈림일 뿐, 다 수긍이 가는 지적이고 비판입니다. 하지만,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습니다. 수많은 쟁점과 문제점이 제기될 게 뻔하다고 이대로 '지지부진'해서는 안 됩니다. 이학수법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현실을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학수법은 삼성가 삼남매가 삼성SDS(삼성에스디에스) 상장으로 얻은 시세차익을 국고로 환수하는 법안입니다. 국고 환수를 주장하는 까닭은 이들 삼남매가 지난 1999년 삼성SDS BW(신인수권부사채)를 헐값에 넘겨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지난 2009년 이를 '배임'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BW란 미리 정해진 조건 하에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채권을 뜻하는데요, BW가 발행되면 회사 가치는 그대로인데 주식수가 늘어 주식가격이 하락합니다. 그럼 기존에 주식을 가지고 있던 자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고, 그 손해 분만큼 헐값에 BW를 받은 채권자는 이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배임'인 것이죠.

이학수법은 형법상 횡령·배임으로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이를 국고에 귀속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내가 직접 도둑질을 안 했더라도, 도둑질로 번 돈을 이용해 이익을 보면 그 이익 분을 국가가 가져간다'는 의미입니다.

이학수법이 만약 제정된다면, 과연 삼성만 법 적용범위에 들어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학계에 따르면 '헐값 BW', '특정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이학수법에 적용될 만한 꼼수 거래를 한 재벌 기업이 2012년 기준으로 130여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학수법을 대표발의한 박영선 의원이 19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횡령이나 배임죄로 선고 받은 건수는 연평균 6000~7000건에 달하지만 그 중 몰수 건수는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추징 건수는 연평균 300~400건에 불과해 횡령이나 배임죄로 선고받은 건수의 약 5%에 불과하고, 추징 금액도 300~400억 원으로 추징 건당 평균 1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삼성을 겨냥해 준비한 법이긴 하지만, 돈벌이와 사익 추구에 눈이 먼 재벌 기업들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는 법이 바로 이학수법인 것 입니다.

이학수법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면 사회 각계에서 많은 지적이 나올 겁니다. 위법성도 존재합니다. 때문에 통과 가능성이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빛을 보더라도 자칫 잘못했다간 '제2의 김영란법'이라는 비난을 등에 업을 지도 모릅니다. 국회 처리 과정에서 누더기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얘기죠.

이학수법은 분명 김영란법과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접대 문화와 비리를 방지하는 차원의 내용이라면, 이학수법은 경제계에 만연한 불법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위법성에 대한 부분도 닮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 중 어느 누구도 김영란법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원안보다 축소된 김영란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이학수법의 입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문제 될 여지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질질 끌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국회의 '직무유기'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이학수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어느 여론조사기관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무려 74.2%의 응답자들이 이학수법 제정에 찬성했습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될 일입니다.

문제점이 있다면 논의 과정에서 토론과 의견 수렴을 통해 수정하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원래 국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삼성 이재용이 포함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소급 입법이 문제라면 소급 조항을 삭제해도 좋습니다. 민사적 접근이 아니라 형사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게 옳다면 그렇게 바꿔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 국회가, 나아가 우리 사회가 재벌 기업의 불법 행위 근절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산업화', '민주화' 이후, 시대의 화두는 이제 '선진화'입니다. 이학수법은 김영란법과 더불어, 우리 사회를 내실 있는 방향으로 선진화 시킬 수 있는 법입니다.

국회가 하루 빨리 이학수법 논의에 나서길 촉구합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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