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연금 활성화 vs 금융재벌 편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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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연금 활성화 vs 금융재벌 편들기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05.11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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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공적연금 강화 제동, 왜?
300조 원 규모 퇴직연금시장
S은행·S생명·H증권 나눠먹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공적연금 강화 문제에 대한 논란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여야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방안을 합의했지만, 청와대가 '세금폭탄론'을 운운하며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면에는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이 있다는 게 정재계의 중론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사적연금 활성화는 서로 대치되는 정책이다.

정치권 일각과 시민사회는 이를 두고 정부여당이 사적연금을 활성화해 특정 금융재벌을 편들기 위한 목적으로 공적연금 무력화 시도를 벌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제도적 한계가 있는 공적연금을 사적연금으로 대체해 국민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사실관계'에 이목이 쏠린다.

<시사오늘>은 그 '사실관계'에 대한 접근을 통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여야 합의안'에 제동을 건 박근혜 정부의 의중을 유추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공적연금이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국가가 기금을 운용·관리하고 지급하는 연금제도를 말한다.

사적연금이란, 국가가 아닌 기업 또는 개인이 운용하는 연금제도를 말하는데, 각 직장이나 특정 기업이 운용·관리하는 퇴직연금제도가 대표적이다.

퇴직연금이란, 쉽게 말해서 일시금으로 받는 퇴직금을 매년 또는 매월 연금 형태로 지급받는 것을 뜻한다.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논란. 국민연금공단 전경 ⓒ 뉴시스

박근혜 정부, 공적연금제도 개편 대신 사적연금시장 활성화

박근혜 정부는 사적연금시장 활성화를 위해 퇴직연금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지난해부터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지난해 8월 내놓은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노후소득 보장에 충분하지 않은 공적연금을 보완하기 위해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으로 전 사업장의 퇴직연금 의무화 및 가입 확대를 통해 사적연금을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핵심은 '퇴직연금 의무화'다. 정부는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의무화시켜 2022년까지 모든 기업이 퇴직금제도 대신 퇴직연금제도를 정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이번 대책에 담았다.  

정부는 왜 공적연금제도를 개편 또는 보완하는 선택 대신 사적연금시장 활성화를 택한 것일까.

<시사오늘>은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KDI(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한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용역보고서를 살펴봤다. 동 보고서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구체화하기 위해 정부가 전문기관에 자문을 구한 것이다.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에 대한 정부의 관점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정부는 공적연금과 사적연금 모두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사적연금의 손을 들어줬다. 공적연금에 대한 제도적 문제는 '한계'가 있다고 표현한 반면, 사적연금에 대한 제도적 문제는 '미비'하다고 표현했다.

"우리 (공적)연금제도의 근간을 이뤄온 국민연금이 제도의 미성숙과 구조적 재정불안정성으로 인한 뚜렷한 '한계'…(중략)…, 사적연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연금화를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해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미미한 상태…(중략)…, 공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기능 부족과 복지재정 수요 증대를 감안한 사적연금의 비중과 역할의 확대가 필요하다."

'공적연금 제도 개선이 우선이 아니냐'는 반론에 대해서는 "현행공적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해답이 없이는 부적절"하다는 답을 내놨다.

또 '사적연금 활성화에 따른 부작용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사적연금의 혜택이 고소득층에 편중돼 노후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노후보장을 위한 노후소득 연금 기능 제고를 희생해야할 만한 사회적 비용인지 의문"이라고 답변했다.

공적연금에 대해 해답을 찾아야 할 정부가 되레 해답을 요구했고, 사적연금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가 되레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가 공적연금제도 개편 대신 사적연금시장 활성화를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언제나 그렇듯 반대편에서 흘러나왔다. 정부가 사적연금시장을 활성화해서 재벌에게 새로운 먹거리를 챙겨주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의원은 지난해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은 서민보다는 재벌을 위한 정책임이 드러났다"며 "사적연금시장 활성화를 통해 재벌의 새로운 수익을 찾아주겠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진정 국민 노후를 걱정하고 있다면,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게 먼저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사적연금시장이 활성화되면 웃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의미다. <시사오늘>은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보고서를 한 신용평가사로부터 입수할 수 있었다.

300조 퇴직연금시장, S은행·S생명·H증권 나눠먹는다?

퇴직연금시장 나눠가질 가능성 큰 금융 3개사. 금융감독원 자료 ⓒ 시사오늘 그래픽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12월 적립금 기준으로 107조 원에 육박한다. 재계에는 오는 2020년까지 퇴직연금시장이 300조 원 규모로 확장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퇴직연금시장은 온전히 금융권의 몫이다. 은행들이 49.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생명보험사(25.9%), 증권사(17.1%), 손해보험사(7%)가 잇는다. 정부 방침에 따라 사적연금이 활성화된다면 이들 금융권의 가용 자금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H평가사는 지난 2월 한 보고서를 통해 향후 퇴직연금시장의 발전으로 은행과 증권사, 그리고 생명보험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에는 중소형 업체는 울고, 대형 업체는 웃는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정부의 퇴직연금 시장 활성화 방안에 힘입어 증권업이 약진을 할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자기자본 규모가 큰 대형증권사들과 자산관리에 특화된 증권사들, 그리고 좋은 실적을 내는 자산운용사와 연계되어 있는 증권사들이 그 대상이 될 것"

"은행의 경우 넓은 영업망과 거래 기업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보험업은 사업자간 차별화가 극명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생명보험업계의 대형 3사를 포함해 적립금 규모 1조원 이상의 중대형 사업자들의 경우에는 안정적인 퇴직연금 사업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형 보험사들의 경우에는 경쟁력을 점점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분석에 따르면, 결국 300조 원에 이르는 퇴직연금시장은 S은행과 S생명, 그리고 H증권이 나눠가질 공산이 크다. 이들 3사는 일찍이 퇴직연금시장을 선점한 상태다.

현재 전체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있는 S생명은 지난해 말 계열사 물량을 바탕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을 크게 늘렸다(계열사 비중 58.2%). 더불어 S화재도 계열사 비중을 34.7%까지 끌어올렸다.

H증권은 계열사 비중을 무려 87.9% 확보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모기업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만큼, 앞선 보고서에 따르면 H증권은 자기자본 규모가 커 약진할 가능성이 크다.

은행업계 중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S은행은 최근 3년간 퇴직연금 운용 및 관리로 벌어들인 평균 당기순이익이 전체 사업자 중 가장 높은 1조5587억 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국회 합의안'을 강경하게 반대하는 배경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적연금 활성화 정부 기조, 금융재벌 이해관계 있을 것"

참여연대 조세복지팀장 김남희 변호사는 지난 7일 국민라디오 <이강윤의 오늘>에 출연, 정부가 굉장히 일관성 있게 공적연금을 약화시키기고 사적연금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하나씩 내놓고 있다. 국민 노후를 공적연금이 아닌 사적연금을 통해 해결하려는 일관된 정부기조"라며 "그 뒤에는 금융재벌들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홍종학 의원은 지난 2일 자신의 SNS계정을 통해 "연금이 보수와 진보 이슈가 된 이면에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양 진영의 다른 시각, 그리고 이른바 보험 회사의 이해관계에 따른 차이가 있다"며 "진보는 공적 연금을 강화해 국가가 노후소득 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보수는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민간 시장참여자인 보험회사를 통한 노후소득 보장을 주장한다"고 밝혔다.

또 홍 의원은 지난 8일 '세대 간 도적질 및 소득대체율 50%의 진실' 기자 간담회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여야 합의안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게 된 건 정부여당이 공적연금을 무력화 시키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 재벌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은 지난 10일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합의대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향후 65년간 미래세대가 추가로 져야할 세금부담이 1천702조 원, 연평균 26조 원에 달한다.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보험료율을 상향조정해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하려면 2016년 한 해만 34조5000억 원,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209만 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내용의 여야 합의안에 대해 다시 한 번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 공무원연금 개혁 저지, 공적연금 강화를 주장하는 공무원단체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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