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재, ˝흩어진 쇄신파 모아 정치 개혁 이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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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재, ˝흩어진 쇄신파 모아 정치 개혁 이루겠다˝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5.05.17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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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재 국회의원
“공무원연금 개혁, 여야 합의 존중한다”
“김영춘·김부겸 등 양질 정치인 성공해야”
“경부·호남처럼 강원 철도 확충 필요하다”
“선상카지노, 정부 내부부터 의견 조율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2000년, 새 시대를 앞두고 정치권에선 ‘신선한 바람’이 화두로 떠올랐다. 김대중(DJ) 대통령은 2000년 4월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젊은 피 수혈론’을 앞세웠다. ‘여소야대’ 형국이었던 민주당은 386 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영입하며 16대 총선을 준비했다.
 
한나라당은 위기를 느꼈다. 이회창 총재도 ‘젊은 피 수혈’에 나섰다. 젊은 피들은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임이 한나라당의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다. 미래연대는 16대 총선에서 속속 원내에 진입했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새로운 ‘개혁의 바람’을 몰고 왔다.
 
16대 때 만들어진 한나라당 쇄신파 모임인 미래연대는 17대 국회에서 '수요모임'으로, 18대 국회에서 '민본21'로 발전했다. 쇄신파 모임이 민본21에서 사실상 마무리하면서 멤버들도 흩어졌다. 
 
이들이 지난달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현안에 목소리를 내면서 지속적인 회동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개혁의 바람’이 다시 찾아왔다.
 
흩어진 이들을 다시 한자리로 만든 주인공은 새누리당 이이재 의원(강원 동해시 동해시·삼척시)이다. 이 의원은 이들을 한자리로 모으는 ‘연락책’을 맡았다. 선배 정치인, 동기들과 연락을 자주하던 이 의원이 원조 소장파를 한자리로 모았다. 
 
초여름 날씨를 보였던 13일 오후 2시, <시사오늘>은 이 의원에게 원조 소장파 모임을 어떻게 다시 결성하게 됐는지 국회 의원회관 이이재 의원실 (540호)에서 상세하게 들었다.
 
▲ 새누리당 이이재 의원은 보수 혁신을 실천하기 위해 옛 미래연대 출신들이 다시 모인다고 설명했다 ⓒ 시사오늘 박근홍 기자
-원조 소장파 모임의 모태인 ‘미래연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16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독식하는 분위기였다. 민주당은 386 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영입해서 젊은 세대들의 지지를 받았다. 한나라당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윤여준 전 장관이 이회창 총재에게 젊고 참신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당시 이 총재는 15대 재보선으로 원내에 입성한 남경필 지사에게 모임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남 지사는 33세의 나이로 한나라당에서 가장 젊었다. 지구당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성식, 김부겸, 김영춘, 정태근, 고진화 등과 함께 모임을 만들기로 하면서 미래연대가 시작됐다.”
 
-당시 이 의원이 맡은 업무는 무엇인가.
 
“나는 각 분야의 전문가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지역조직을 구축해 확대하는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 9월 26일 미래연대가 창립준비위원회를 가진 후 ‘젊은 피’에 맞는 각계 전문가 300여 명을 모집해서 미래연대를 출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래연대는 어떻게 한나라당 권력의 한축으로 자리 잡게 됐나.
 
“변호사 출신으로 깨끗한 이미지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운동권 출신으로 학력고사와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원희룡 지사, 이회창 총리실에서 있었던 정두언 의원, 미스코리아 출신 경제학 박사 한승민 씨 등이 합류하면서 미래연대는 절정을 이뤘다. 2000년 1월 16일 공식 창립식을 가졌다. 미래연대 멤버 중 14명이 16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미래연대는 당선된 현역의원, 당협위원장, 외부 전문가그룹 등으로 나뉘었다. 당시 당 지도부도 무시할 수 없는 개혁·소장파로서 세력을 구축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2030위원회’도 꾸렸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맞붙었다. 노무현 대 이회창 구도에서 이 총재의 2030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미래연대가 주축이 된 2030위원회를 발족했다. 김영춘 전 의원이 본부장을, 원희룡 지사가 부위원장을, 권택기 전 의원은 기획실장을, 나는 조직단장을 맡았다. 나는 권 전 의원과 코피 쏟아가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정말 힘들었다.”
 
김영춘 전 의원은 이회창 선대위 회의만 다녀오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당 지도부가 2030위원회 기획안을 거절하거나 보류시키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기는 선거’에서 이것, 저것 하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당시 지도부의 태도는 어땠는가.
 
“지도부는 ‘이회창 대세론’에 푹 빠져 있었다. 여론조사가 노 전 대통령에 비해 뒤처져도 ‘보이지 않는 10%’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전국을 돌며 현장에 나가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니 한나라당이 위기인 것을 알았다. 한 표라도 더 모으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2030위원회 위원장인 김영춘 전 의원이 선대위 회의 때마다 기획안을 보고하면 당 지도부는 ‘쓸데없는 일 좀 벌이지 말라’라고 말했다. 지도부는 ‘어차피 이기는 선거에서 왜 자꾸 이것도 하자, 저것도 하자고 하느냐’면서 우리 기획안을 거부하거나 보류했다.”
 
-결국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했다.
 
“날짜도 안 잊는다. 2002년 12월 19일. 18일에 정몽준 전 의원이 단일화를 파기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집 앞까지 찾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당 지도부는 좋아했지만 난 느낌이 좋지 않았다. 
 
2030위원회는 19일 저녁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소주 마시면서 개표 방송을 같이 봤다. 결과는 패배였다. 당시 이회창 선대위와 당 지도부는 상황 판단을 잘 하지 못했다.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패배의 원인이다. 난 다음 날인 20일 선거가 끝나고 고향 동해로 내려갔다.”
 
▲ 새누리당 이이재 의원은 원조 소장파 모임의 연락책을 맡았다 ⓒ 시사오늘 박근홍 기자
-미래연대 출신 멤버들이 지난 4월 다시 모였다. 다시 모이자고 누가 먼저 제안했나.
 
“다선들로부터 다시 모이자는 제안이 나왔다. 남경필 지사와 원희룡 지사, 정병국 의원 등과 자리를 가졌는데 다시 미래연대 모임이 모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나왔고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언급이 나온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연락을 누가 할 것이냐고 해서 내가 맡게 됐다.”
 
-특별히 연락책을 담당한 이유가 있나.
 
“현재 미래연대, 수요모임, 민본21 그룹 멤버는 국회와 원외에 많이 흩어져 있다. 남 지사나 원 지사처럼 광역단체장을 맡는 사람도 있고, 국회의원인 사람도 있고, 또 보직을 맡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룹들을 두루 잘 아는 사람이 연락을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 내가 제일 많이 알고 연락도 자주 하니까 맡았다.”
 
-성완종 파문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현안에 대해 목소리도 냈다.
 
“세 그룹을 모아 보니까 한 50명 정도 됐다. 모두 바쁘니까 모인 날짜인 12일도 한 달 전에 잡았다. 그런데 3일 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했다. 정치권에 ‘성완종 파문’이 닥쳤다. 우리 모임이 오해를 살까봐 일정을 미룰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공지가 다 됐고, 일정을 다시 잡기도 애매해서 그냥 그날 모이기로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일에 대해 넘어갈 수 없어서 목소리도 냈다.”
 
-‘성완종 파문’은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가.
 
“성역 없는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국민이 궁금해 하는 모든 것을 밝혀서 정치권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
 
-조사 대상자가 대부분 친박계 의원들이다.
 
“수사 대상을 정하고 하는 건 아니다. 수사과정에서 누구든지 혐의가 있으면 조사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성완종 전 회장의 메모에 나와 있는 친박계 사람들일 뿐이지, 이 외에 더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쇄신파 모임은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두 달에 한 번씩 모이기로 했다. 오랜만에 모이니까 다들 좋다고 하더라.”
 
-다음 날짜는 언젠가. 
 
“5월 31일이다. 일요일에 모이기로 했다.”
 
-앞으로 새누리당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예정인가.
 
“이젠 ‘소장’자는 떼기로 했다. 이제 다 50대고, 모두 중진이다. 소장파 시절로부터 15년이나 지났다. 그날 멤버 50명 중 모인 인원은 30명 정도 됐는데, 장관 출신이 7명이고 광역자치단체장 출신이 5명이더라. 그만큼 우리도 15년 사이에 많은 발전을 이뤘다. 개혁을 요구하는 세대에서 실천하고 보여주는 세대가 됐다. 이젠 책임을 져야 하는 세대다.”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 방향을 가지고 있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새누리당이 대한민국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고 언급하면서 ‘보수 혁신 노선’을 제시했다. 앞으로 새누리당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것에 대해 공감했다. 그것을 지지한다. 실천하기 위해선 보수 혁신 노선이 실천 방안에 대해서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우리 모임은 ‘공부 모임’이다.”
 
-유 원내대표는 미래연대 출신이 아닌가?
 
“세 그룹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유 원내대표가 그 그룹 멤버가 아니기 때문에 소장파로 분류되지 않은 건가?
 
“그 그룹에 속하지 않았을 뿐이지 성향은 개혁 성향이다. KDI(한국개발연구원)에 있을 때부터 재벌 개혁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 정책을 만들 때도 많이 의견을 제시했다고 알려졌다. 상당한 전문가로 알고 있다.”
 
-개혁 성향인데 왜 그룹에 속하지 않았나.
 
“같이 활동은 안 했어도 대화도 충분히 하고 소통도 했다.”
 
-유 원내대표와 미래연대 출신들의 노선이 비슷하다고 보면 되나.
 
“사석에선 자주 만난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우리가 그동안 공감을 해 왔던 내용들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해준 것 같아 후련하기도 하다. 새누리당의 개혁적 내용이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유 원내대표도 그렇게 말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앞으로 실천해야 하는 방안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차차기 대권주자로 남경필, 유승민, 원희룡 등 개혁적 성향 의원들이 거론된다. 
 
“그건 국민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정치권 안에 있는 우리들이 함부로 만들어선 안 된다.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우리는 그것을 겸허히 받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개인에 대한 지지보단 새누리당이 국민에게 보다 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차기니, 차차기니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당장 새누리당이 집권 세력으로 변함없는 국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그 이후를 생각하는 것은 사심이다.”
 
2003년 7월, 미래연대 멤버였던 김영춘, 김부겸, 안영근, 이부영, 이우재 전 의원은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언론은 이들을 일컬어 ‘독수리 5형제’라고 칭했다.
 
-김영춘·김부겸 전 의원은 당을 옮겼다. 부산시장, 대구시장에 출마하면서 정치를 지속하고 있다.
 
“당을 나갔으면 잘 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고생 좀 하는 것 같다. 그 고생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간 빛날 것이라 생각한다. 여든 야든 양질의 정치인들이 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사오늘 박근홍 기자
與 화두, 공무원연금 개혁·오픈프라이머리
 
-민주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하기 위해 김무성 대표가 차기 총선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한다.
 
“여야가 합의하면 해야 한다.”
 
-한쪽만 주장한다면.
 
“아주 위험하다. 그렇게 되면 동원력이 큰, 즉 구태 정치하는 사람들이 유리할 수 있다. 구태 정치하는 사람이 후보로 등록되면 당이 망하는 것이다. 오히려 부작용이 날 수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 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갈등을 빚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5월 2일 여야가 합의한 사안을 존중한다. 빨리 타협이 돼야 그동안 노력한 결실을 맺는 건데, 계속 공전하고 원점에서 재협상을 해야 하는 정도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여야가 국민 부담을 줄이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새누리당 의총에서 소득대체율 50%를 명시하고 있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소득대체율 50%는 국민적 합의가 불가능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난 2일 지도부가 합의한 문서를 보면 서로 ‘존중한다’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우리는 50%를 고스란히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양당 합의문엔 50%가 명시돼 있지 않다. 첨부방식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야당에선 여당이 파기했다고 주장한다.
 
“야당에서는 여당이 50%를 받아들였다고 알아들은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별도로 만들어서 국민적 합의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거기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양당 대표 간 합의한 내용을 그대로 가면 된다. 양당 합의문에 별도의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논의한다고 했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기 위해선 현행 국민연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빠듯한 사람들은 국민연금 가입하지 말라는 얘기냐. 만약 국민 뜻이 현재 소득에서 더 떼서 나중에 더 받는다고 하면 된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다. 우리는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한다. 이중 국민들은 어떤 것을 원하는지 맡겨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합의문에 명시돼 있다. 
 
국민적 동의를 받지 않았는데 무조건 50%를 만들자고 한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세금으로 메우자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 복지 수준으로 뒷받침 못한다.”
 
백두대간의 아들 이이재,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교통 불편’ 겪어선 안 돼”
 
이이재 의원은 강원 동해시 북삼동 출신이다. 현 지역구는 동해시삼척시다. 지역구 예산을 위해 밤낮없이 뛰는 이 의원에게 지역구 현안을 물었다.
 
-이 의원은 도로망 확충에 적극적인 듯 보인다. 제2영동 고속도로 개통을 위해 분주한데.
 
“강원은 고속철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교통은 평등해야 한다. 경부, 호남은 철도 만들어 두고 강원은 나몰라 한다. 강원도 도로망 확충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정부는 선상 카지노 내국인 출입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내부에서 조율하고 말했으면 좋겠다. 유기준 해수부장관은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바로 다음 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고려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견해가 안 맞는데 뭘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법을 만들든 간에 이해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폐광지역 주민들은 반대를 할 것이고, 또 이득을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주민들에게 ‘이렇게 했을 때 여러분들이 수용할 수 있겠느냐’고 사전 조율해서 합의가 되고 설득이 되면 발표하면 된다.
 
사전 조율없이 하면 실질적으로 피해 우려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일어나서 반대하는 것이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잘 수습을 해야 하니까 난감하기도 하다.”
 
“희망 주는 정치인 되고 싶다”
▲ 새누리당 이이재 의원은 희망을 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은 게 포부다 ⓒ 시사오늘
 
-질문을 하지 않아 못한 말이 있을 듯싶다.
 
“이이재는 한 번도 자리를 목표로 살아온 적 없다. 지역발전에 대해서 고민하고 발언하다 보니까 국회의원 하게 된 것이고,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선택을 받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 보수 진영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어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에게 따뜻한 보수 정치를 구현하고 싶다. 모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보수라는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이 나라의 정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새누리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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