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 “창은 지역민을 한풀이 도구로 이용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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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표, “창은 지역민을 한풀이 도구로 이용 말라”
  • 정세운 기자
  • 승인 2008.06.11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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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이란 패배감보다 배신감이 짙게 배어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일합을 겨뤘으나 역부족이었다. 총선 전 ‘정치적 사제지간’의 격돌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홍 의원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전이던 지난해 7월까지는 ‘이회창 대망론’을 주장할 만큼 이 총재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때문에 이번 총선을 앞두고 홍 의원이 당적을 자유선진당으로 바꿔 탈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홍 의원은 ‘한나라당’ 간판을 가지고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홍성 예산에 출마했다. ‘괘심 죄 때문일까.’ 이 총재는 홍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표를 던졌고, 홍 의원은 그렇게 무너졌다.

홍 의원은 이제 낙선이란 두 글자를 받아들여 또다시 ‘야인’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홍 의원에게 이보다 더 큰 자괴감은 정치적 배신감일 듯했다. 지난 수년간 모셨던 이 총재가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을 보고 ‘허망감’을 느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생각을 듣기위해 지난 13일 의원실로 찾아갔다. 홍 의원의 얼굴에는 낙선이라는 패배감보다는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홍문표 의원의 얼굴에는 낙선이라는 패배감보다 믿었던 사람(이회창)에 대한 배신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민주신문 김현수

“정치하는 동안 소신과 신의를 가장 소중히 여겨…”
 
-낙선하셨습니다. 지금 감정을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솔직히 낙선했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사형선고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지역민들의 결정이기에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지역발전은 도외시 된 채 소지역주의로 특정정당이 지역민들을 볼모로 정치적 야욕을 채우려는 것이 이번 선거의 쟁점이었던 만큼 지역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명함 한 장 파 놓고, 선거에 임박해서야 주소를 지역으로 이전해 놓고 지역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홍 의원은 직접적으로 ‘이회창’이라는 이름석자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치행태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듯했다.

-자유선진당으로부터 입당제의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당선을 위해 한나라당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에 남게 된 경유가 궁금합니다.
“지난 25년 동안 정치생활을 하면서 소신과 신의를 자존심 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한때 이회창 총재를 존경하고 그 분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였습니다. 만약 그분이 정권교체에 동참하고 개인적인 큰 뜻을 이루고 싶었다면 당당하게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시한 채 한나라당 당원들이 만들어 놓은 텃밭에 막판에 끼어들기 식으로 출마하는 것은 분명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을 따라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정권교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여당 정치인의 프리미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당적을 옮기지 않은 것 아니냐’로 물었더니 홍 의원은 “난 정치를 하면서 단 한번도 원칙을 저버린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홍 의원은 비록 초선이지만 정치구력은 만만치 않다. 지난 69년 유진오 박사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이래 40여년동안 야당 정치인으로 잔뼈가 굵어온 인물이다. 특히 그는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편안한 여당 정치인으로 커올 수 있었지만, 소신을 선택해 가시밭 같은 야당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통일민주당 조직부장으로 있을 때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합당이 이뤄지자, 홍 의원은 여당의 길을 포기하고 이기택이 이끄는 ‘꼬마민주당’에 몸을 실었다. 95년 지방선거 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통합야당이던 민주당을 둘로 쪼개 국민회의를 만들자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다음 당선을 위해 DJ를 따라갔다. 하지만 홍 의원은 끝까지 민주당을 지켰다.

-늘 ‘이회창 대망론’을 주장했습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이번 총선에서 일합을 놓고 ‘아버지와 자식’의 싸움으로 말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본다면 이번 선거는 솔직히 피하고 싶은 선거였습니다. 만약 이회창 총재가 먼저 출마의사를 내게 밝혀만 줬더라면 나는 다시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모시고 대통령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사람 중의 하나인 나를 생각한다면 출마하기 전에 언질이라도 줬어야 했다고 봅니다. 그런 것이 일체 없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출마선언을 하는 것을 보고 정치적인 허망함과 함께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이총재가 분명 이 나라를 위해 할일이 많은 분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총재께서 대통령을 직접 하시기보다는 두 번의 출마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2천만 표가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분으로서 당의 정권 창출에 이바지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홍 의원은 더 이상 자신의 욕심을 위해 지역주민을 볼모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전했다
“이회창 이라면 서울이나 대구에 출마하는 게 바람직”

 
-대부분 각 당의 대표성을 갖는 정치인들은 당락을 떠나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에 출마했습니다. 이 총재도 그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총재 정도라면 나는 솔직히 서울이나 대구지역에 출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충남 예산 홍성지역으로 내려와 출마하시는 것을 보고, 자신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마 이번 출마는 개인의 의지보다는 측근들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총재 정도의 명성과 무게감이라면 당연히 수도권에서 승부를 걸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홍 의원은 이 총재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한 때 자신이 모셨던 정치인에 대한 애증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지난 총선에서 각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당락을 떠나 수도권에 출마했다. 민주당에서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대선후보가 종로와 동작에 출사표를 던졌다. 한나라당도 정몽준 의원이 울산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로 옮겨 정동영 후보와 한판 승부를 벌였다.

이회창 총재도 지역정당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기 위해 수도권이나 대구에 출마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이 총재는 자신의 선영이 있는 충남 예산을 지역구로 선택해 나왔다.

-총선 끝나고 이 총재와 만난 적은 없습니까.
“가끔 지역 행사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적으로 만난 일은 아직 없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충청권은 지역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더 나아가 소지역주의(예산 홍성싸움)로 번졌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됩니다. 더 이상 자신의 욕심을 위해 지역주민을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위정자들이 더 이상 지역민들을 자신의 한풀이 도구로 이용하려는 정략적 접근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주의 극복 방안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에 팽배해 있는 피해의식 내지는 소외감을 없애야 합니다. 지난 정권 동안 일부 지역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반면, 충청과 호남지역은 도외시 되지 않았나. 정권 차원의 집중적인 지원과 개발을 통해 지역민들이 가지고 있던 개발소외론 등의 피해의식을 없애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과 국회, 그리고 정부 간에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역할 맡고 싶어”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을 지지했습니다. 지역구 출마보다는 비례대표 등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국회의원 한 번 더 할 생각이었다면 비례도 있었고, 다른 지역으로 출마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난 25년 동안 지역을 떠나 정치를 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국회의원 한번 더할 요량으로 소신과 신의를 저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국회의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감사의 마음이다. 비록 선택 받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홍 의원은 나름대로 한나라당 충청권의 외연확대를 위해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홍 의원은 충남 대전 지역에 정치아카데미 대학원을 개설해 4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뿐 아니라 홍 의원은 제도적으로 한나라당 충청권의 외연확대를 위해 힘썼다.
그는 당 내 혁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충청권 인사가 최고위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당헌 당규를 바꿔 놓았다. 때문에 최고위원을 선출하더라도 최고위원 한명은 지역안배 차원에서 충청인사가 차지하게 된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당 내 혁신 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홍준표 의원이 당시 혁신위원장을 맡았고 내가 혁신위원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늘 입만 열면 충청 호남을 배려해야 집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당직 인선에 들어가면 배려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홍 혁신위원장을 설득해 지역안배 차원에서 최고위원 자리를 미리 정해 놓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헌당규에 호남 충청몫을 따로 뒀습니다.”

-농수산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원내 진입을 못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농촌을 도울 생각입니까.
“그동안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농정 전문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과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역이 농촌지역이고 축산지역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농업과 축산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연구단체를 만들어 농정현안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더 열심히 뛰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더 큰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바로 무슨 일을 한다고 나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당과 국회, 그리고 정부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습니다.”
정가에서는 홍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직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들이 돌고 있다. 홍 의원이 당에 끝까지 남아 소신과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배려차원에서라도 그에게 줘야 한다는 것.

필자는 ‘사무총장직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했더니, 홍 의원은 “맡고 싶다고 맡을 수 있나”라며 즉답을 피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인터뷰를 주선했던 황선용 비서관은 “지금까지의 국회사무총장은 그저 국회 내의 업무를 총괄하는 직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국회의 위상이 강화되고 행정부 및 각 당과의 관계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에 국회문제에 있어서는 이제는 사무총장이 나서서 각 당과 정부와의 협조 내지는 조율을 통해 원만한 업무처리가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홍 의원이 사무총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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