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산악회와 월계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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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산악회와 월계수회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0.06.15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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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압과 핍박속 결성된 땀의 결정체' VS '돈과 권력 앞세운 조직'
‘민주산악회’와 대비되는 조직이 ‘월계수회’다. 민주산악회는 'YS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조직이고, 월계수회는 노태우 대통령 정권 탄생의 연장선상 위에서 만들어진 결사체다.

두 조직은 공조직이 아니라 비선조직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당시 적대전선을 형성했다. 물론 민주산악회의 승리로 끝났다. 표면상으로 월계수회는 권력의 최정점이었다.

 87년 6월 30일 노태우의 ‘6·29 선언’ 다음날인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 로열빌딩에서 월계수회가 발족됐다. 주축은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특별보좌관, 그리고 강재섭 이재황 나창주 지대섭 등이 주축이 돼 조직을 꾸렸다.

이들은 ‘돈’과 ‘권력’을 앞세워 그해 12월 대선 때까지 180여 개 조직에 200만명의 경이적인 숫자로 회원을 확대했고, 집권 후에는 현역의원만 60여명을 거느린 그야말로 최대 조직이었다.

노태우 정권이후 청와대 안기부 검찰 등 최고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고, 권력핵심을 뒷받침하는 경제부처를 포함한 모든 행정부 요직에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YS가 대통령 되는 것은 막기 위해 탄생된 조직 같았다. 하지만 YS에게는 민주산악회가 있었다. 때문에 월계수회와 민주산악회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외면상으로는 월계수회의 파워가 막강해 민주산악회는 상대가 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산악회는 군사정권의 세월동안 핍박의 눈물 속에서 명맥을 확대한 조직. 그리고 국민의 민주화 요구위에 탄생한 조직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았다.

감시와 탄압, 수색과 투옥의 사건 속에서도 확대된 조직이기 때문에 월계수회의 탄압쯤은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결국 최종 승자는 민주산악회였고, 김영삼 정부 탄생과 함께 월계수회는 흔적조차 없어졌다. 민주산악회 역시 YS 정부 탄생 후 자발적으로 ‘해체’ 됐으나, 이후 ‘민주동지회’란 이름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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