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신타로 동경 도지사에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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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신타로 동경 도지사에 드리는 글
  • 김재한 대기자
  • 승인 2009.01.22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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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선생, 당신을 그동안 존경해왔습니다.
작가로서, 영화배우와 감독, 국회의원과 장관, 동경도지사로써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어디에서든지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부각시키는 선생의 열정과 삶의 자세를 그동안 동경해왔습니다.

선생이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을 수상한 「태양의 계절」은 권투선수인 학생 다쓰야와 그의 친구 에이코를 주인공으로 기성도덕에 얽매인 전후 젊은 세대의 드라이한 인간관계와 이성 관계를 묘사한 작품으로, 전후세대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의 변화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더욱이 선생이 쓴「NO 라고 할 수 있는 일본」(공저:모리타 아키오)은 당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향한 목소리이었다는 점에서 색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책들이 우리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25년간의 국회의원직을 떠나 무소속으로 과감히 동경도지사 선거에 뛰어들어 재선을 하는 등 선생의 열정과 동경도 개혁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그러한 열정 뒤에는 한편 걱정을 하고, 아쉬워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세상사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은 없고 남의 탓이고, 매사에 비판적인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선생은 기회 있을 때마다 숱한 발언으로, 우리를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망언이라고 합니다. 상식선에서 벗어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하는 발언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망언 이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말에 죽을 때가 다되면 헛소리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 정신이 아닐 때 바른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선생의 그 망언을 극우라는 말로 표현하고 미화하지만, 상식과 진리와 순리를 벗어난 그 말들은 분명 망언일 것입니다.

2005년 2월 22일에는 대한민국 영토 독도를 다케시마로 앞장서서 주장하고, 2007년에는 핵무장을 통해 일본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하고, 2008년에는 일본으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이 식민지에서 해방됐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관련해서도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등은 모두 조선이 원해서 이뤄진 일이라는 등의 망언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지난 12일에는 도쿄 외신기자 클럽에서 미국 주도의 6자회담이 북핵 해결이나 북한 개방에 별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며 "북한이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중국이 북한을 통합하는 것이 미국으로서도 가장 쉬운 해결책이며 중국은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과의 통일을 원하는 한국에선 '아마도' 반대에 부딪힐 수 있지만 한국도 북한이 중국의 일부로 통합되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분명 예나 지금이나 선생은 제정신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동안 숱한 발언으로 한국인의 마음을 애는 아픔을 주어도,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들은 그래도 참았습니다. 한 인간이 실성했구나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것은 선생이 좋아서도, 제가 긍정적으로 보는 열정적인 삶의 모습 때문만은 아닙니다. 선생의 그 못난 행동에 똑같이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는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반성은커녕 그 숱한 망언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 한국인들을 얕잡아 보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제는 선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누군가는 일침을 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선생의 막말에 상처 입을 한국인과 일본인들을 위해서입니다.

선생은 일본 사람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수많은 책들로 독자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그동안 「방황하는 사춘기」「일본인의 자녀교육」「지식인의 자녀교육」「아들은 남자답게 키워라」라는 책들이 대표적 입니다. 그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더 큰 문제를 나을 것입니다. 선생의 영향력이 이렇게 크다는 사실이 세상을 더 암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런데 선생이 마구 지껄여대는 그 말들이 일본의 주류의 음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데 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일본 전체를 오염시키는 망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생각들이 주류를 이룰 때 일본은 선생께서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세계적으로 고립될 것이며, 망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선생의 발언에는 언제나 발언 파동이나 망언 소동이 따라 붙는 것을 봅니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당시 '삼국인의 소요가 있을 우려가 있으니 자위대는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 '삼국인(식민지 지배를 전제로 한국인과 중국인을 경멸해 부르는 말) 파동'에 이어 중국을 '지나(차이나를 낮춰 부르는 말)'로 불러 외교적 마찰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일본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령화 사회의 일본에 대해 "생식능력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고 말해 강한 일본의 만드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노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이 그동안 한 말은 분명 해악입니다. 한·일간의 친선을 저해함은 물론 세계인들에게는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하나의 경종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촌평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 이시하라 동경지사의 시궁창 망언에 대해 논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사람이 무지하면 이렇게도 망가질 수 있다고 귀띔하는 데는 견본으로 삼을만하다.”

논평할 가치가 없으며 무지해서 망가진다고 합니다. 선생은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가이며, 지식인입니다. 그런데 행동은 아닙니다. 저는 선생을 어떠한 경우라도 견본으로 삼아서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꿈에 보일까봐 두려운 것이 선생입니다.

저는 한나라당의 촌평을 보고 걱정을 하게 됩니다. 미친 개는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몽둥이를 들 수 있어야 합니다. 미친 개를 무시한다고 그 미친 개가 좋은 개가 되거나 우리 주위를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몽둥이를 들고 잡아야 합니다. 죽여야 합니다. 그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아마 선생과 같은 괘변(卦變)으로 표현하면 간단할 수 있습니다. 1932년생인 선생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한·일간의 친선을 돈독하게 하고, 동북아의 질서를 바로잡는 길이라고 하는 이도 생길 수 있습니다. 분명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이 한국인에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최소한 선생이 살아서 좋은 일을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을 위하거나, 자신의 생각이 전부 다 옳다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왜 우리가 일본인을 가리켜 왜놈(倭놈)이라고 하는 지를 뒤돌아보길 바랍니다. 왜(倭)는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축소지향적인 사고에서 출발합니다. 이른바 경제적 동물, 이익에, 그것도 자신만의 이익에 집착하는 소국(小國) 근성을 가진 것을 비하해 하는 말일 겁니다.

남의 것에 관심이 많은 선생의 모국 사람들의 놀부 심보 때문일 것입니다. 남의 땅인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갖은 만행을 다 하더니, 이제는 동족상잔의 비극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한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방해하는 망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자유를 찾는 젊은이들을 대변한 유명 작가이자 스타의 형,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정치가! 온갖 찬사가 따라붙는 일본 국내의 평가와 소외된 자와 주변 국가로터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의 이시하라 선생! 이 두 가지 양면성을 지닌 선생의 모습은 아시아의 지도자로 부상하고자 하면서도 주변국가에 대해 과거 잘못을 반성하거나 협력하는 일이 없는 일본의 양면성과 교묘히 교차되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한국에서는 당신을 가리켜 일본의 극우 세력으로써 항상 망언과 망발에 앞서는 늙은 여우라고 합니다.
여우의 잔꾀보다 노인의 경륜과 지혜가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 지 선생을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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