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에 그친 진보대통합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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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에 그친 진보대통합을 바라보며…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06.30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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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진보정당은 책상 앞을 떠나 현장으로 가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진보대통합이 무위에 그쳤습니다.

노동당은 지난 28일 열린 정기 당대회에서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의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선언' 추진 안건을 대의원 표결 끝에 부결시켰습니다. 이에 대해 정의당은 "노동당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고 짧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노동당 대의원들의 반대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기자 또한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판은 거대 양당이 독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흡사 미국의 양당제와 비슷할 정도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양당체제는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아닌, '보수 대 중도 보수'라는 교집합적 이념 스펙트럼 하에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진보정당들이 이 같은 스펙트럼에 무너졌고, '유의미한 세력화'에 실패했습니다.

기자가 이번 진보대통합이 수포로 돌아간 일이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거대 양당이 휘어잡고 있는 정치판을 새로운 진보정당이 조금이라도 흔들어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진보재편에 대한 논의는 올해 초부터 물밑에서 진행돼 왔습니다.

<시사오늘>은 통합진보당이 헌재 결정으로 해산된 직후, 이 같은 흐름을 파악하고 제3정당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기획 기사를 수차례 보도한 바 있습니다(관련기사: '통합진보당 해산, 굳어지는 양당체제…제3정당은?'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299.

기자는 무위로 그친 진보대통합을 바라보며, 진보재편 관련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한 노동당 청년 지역위원장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서울 신촌 버스터미널 앞 포장마차에서 꼬막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인 편한 자리였죠(관련기사: '진보재편, 기로에 선 정의당…노동당or국민모임?'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293).

당시 그는 "정의당과의 통합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대의원들이 반대하는 분위기다. 그들은 노선 추구가 제대로 안 되는 진보정당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주장하고 있다"며 진보대통합의 실패를 예고했습니다.

사실 진보정당의 당파 싸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당내 이권 문제는 물론, 각종 철학과 이념 논쟁이 밤새도록 이어집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겪고 있는 공천권을 둘러싼 계파갈등은 그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저는 그와 이 같은 진보정당의 문제점을 공유하며 "진보정당이 성공하려면 책상 앞을 떠나 현장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국민 하나만 보고 간다'는 거대 양당의 슬로건이야말로 진보정당이 내세워야 할 기치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는 기자의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이 같은 말을 건넸습니다.

"반공이라는 종북프레임을 이용한 이데올로기 공격을 견뎌내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 왔다. 그게 우리의 투쟁 방법이었다. 그 결과가 흔히들 말하는 NL(민족해방노선, Nation's Liberty)과 PD(민중민주노선, People's Democracy)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었다.

우리는 그 갈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투쟁 과정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학문적·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생각했고, 거대 양당에게 표를 던지는 국민들을 선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봐 왔다. 문제점은 다들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수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그의 말을 떠올려보니 차라리 진보대통합의 방향을 '합당'이나 '정당 건설'이 아닌 '정책'에 설정해 추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다 더 국민들이 쉽고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 '청년 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한 논의를 4자간에 활발히 이어가다보면, 차기 총선 즈음에서 자연스레 진보재편 얘기가 아마 나왔을 겁니다.

새누리당의 '새줌마 정책투어'와 새정치민주연합의 '민생경제 행보' 같은 프로그램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했을 때, 진보정당들은 아무 것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정책에 대한 진정성 문제를 떠나서, 이는 분명한 '정당 능력'의 차이입니다.

비록 이번 진보대통합 시도는 무위에 그쳤지만, 아직 기회는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진보진영은 국민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혁신은 거대 양당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진보정당에게도 강력히 요구됩니다.

이제 책상 앞을 떠나 현장으로 가야합니다. 그곳에 진보대통합의 길이 있습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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