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박근혜의 곁을 떠나면 비극이 찾아온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치인들이 하나 둘 울상을 짓고 있다. 흔히 짤박(짤린 친박)이라 불리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이혜훈 전 최고위원, 진영 의원 등이 바로 그들이다.
'성완종 리스트'라는 강력한 불법정치자금 수수 스캔들에 휩싸인 친박(친박근혜) 인사 8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물쩍 넘어가는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오늘의 허세'가 된 '어제의 실세',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난 자들의 비극을 짚어봤다.
'5개월 천하' 유승민, 사퇴 기로
거취 문제를 놓고 위기를 겪고 있는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에 의해 정계에 입문한 정치인이다. 지난 2005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당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당시 여의도연구소 소장 직을 맡고 있던 유 원내대표를 대표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유 원내대표는 그해 치러진 10·26 재보궐선거에서 대구 동구을 지역에 당선되기까지 약 10개월간 박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박 대통령은 초선 의원에 불과했던 유 원내대표를 줄곧 중용한다. 2007년 대선 경선 캠프에서는 공약 자문을 위한 브레인들을 섭외하는 중책과 연설문 준비를 그에게 맡겼다. 2008년에는 유 원내대표와 공부모임을 함께 하기도 했다. '경제민주화' 등 박근혜 정권의 주요 국정철학이 이 공부모임에서 나왔다는 후문이다.
지난 2011년 전당대회에서 유 원내대표가 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배경에도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유 원내대표는 4~5위권 득표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던 후보였으나, 친박계의 지지를 받아 2위로 선출됐다.
그러나 그는 이후 짤박(짤린 친박)의 길을 자발적으로 걷게 된다.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변경을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에는 청와대 비서진을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질타했다.
당시 유 원내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와 대화하면 한계가 느껴진다. 의사결정에 있어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친박의 폐쇄성도 꼬집었다.
박 대통령을 향한 쓴 소리로 당내 친박계 인사들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던 유 원내대표는, 지난 2월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내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른바 'K·Y체제'의 공식 출범이었다. 순식간에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고, 'TK의 아들'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실세가 된 것이다.
'유승민 천하'는 5개월에 그쳤다. 유 원내대표는 지금 벼랑 끝에 섰다. 박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배신의 정치" 한마디에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똘똘 뭉쳐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물러나면 "최소 5년은 정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계 반응이다. 허세가 될 위험에 처했다.
경제민주화 바른말 이혜훈, 차기 총선 불투명
이혜훈 전 최고위원 역시 원조친박이었다. 친박 중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경제통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전 최고위원을 높이 사고 항상 자신의 지근거리에 뒀다. 박 대통령은 17대 국회 당시 초선에 불과했던 그에게 정책조정위원장이라는 요직을 맡겼다. 2007년 대선 경선 캠프에서는 대변인 업무를 수행했다.
2012년에는 박 대통령과 손잡고 총선과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19대 총선 중앙선거대책위 실장과 18대 대선 중앙선거대책위 부위원장 직을 역임했다. 이 같은 공로에 힘입어, 이 전 최고위원은 같은 해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원외인사임에도 불구하고 2위를 기록해 최고위원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부분이 이 전 최고위원에겐 큰 상처였다. 박 대통령은 이 전 최고위원을 유승민 원내대표의 직계로 분류하면서 공천을 주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관계가 소원해진 이 전 최고위원은 이후 박근혜 정권의 '경제민주화' 공약 미이행을 이유로 청와대를 향해 날 선 발언을 이어갔다. 사실 경제민주화 공약을 박 대통령과 함께 준비했던 이 전 최고위원 입장에서는 '날 선 발언'이 아닌 '바른말'이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비극을 겪는다. 2014년 4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에 출마했지만, 정몽준 전 의원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 사이에서 밀려 고배를 마셨다. 친박계는 김 전 총리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총선도 불투명하다. 이 전 최고위원은 7·30 재보선에서 울산을 선택한 바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친박계로 분류되는 박맹우 의원에게 유리한 경선 룰을 제시했다. 결국 이 전 최고위원은 "100% 인지도 여론조사 경선을 하라는 것은 '이혜훈만은 안 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공천을 자진 철회했다. 원래 지역구였던 서울로의 컴백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각 실세였던 진영, '짤박'된 이후 존재감이 없다
진영 의원은 지난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대표 업무를 수행했을 당시, 그를 최측근에서 보필했던 비서실장이었다. 한때 원조친박이었다.
박 대통령은 진 의원을 내각 중심에 세우려고 했다. 대통령 인수위 부위원장에 임명해 공약 실무 총괄을 맡기고, 새 국정의 밑그림을 그리게 했다. 후에 진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 내각 실세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도 '6개월 천하'였다. 진 의원은 단 6개월 만에 기초연금 문제로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 2013년 9월 장관직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청와대는 기초연금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공약 수정을 요구했고, 진 의원은 이를 거부했다.
당시 진 의원은 일방적으로 사표를 던지면서 "양심의 문제"라고 박 대통령을 향해 일갈한 바 있다.
이후 진 의원은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짤박'이 된 이후 전혀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신임 사무총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한선교 또는 홍문표 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기 총선 구도에도 악재가 꼈다. 진 의원의 지역인 용산구 옆 동네 중구가 헌재의 결정으로 선거구 개편 대상이 됐기 때문. 국회 핵심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중구가 용산구와 합쳐지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개편이 될지는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중구는 야권 지지 성향 유권자들이 많은 지역구인 만큼 진 의원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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