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호의 시사보기>일본의 잘못된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적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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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의 시사보기>일본의 잘못된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적 진실
  • 강상호 시사평론가
  • 승인 2015.07.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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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강상호 시사평론가)

지난 7월 21일 일본 정부는 2015년 방위백서를 각의에서 의결했는데, 동 방위백서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어 표기)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당일 가나스기 켄지 주한 일본 대사관 총괄 공사를 외교부로 불러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항의했다.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때인 2005년 방위백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처음 기술한 이래 11년째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크게 3 가지 근거를 든다.   첫째, 17세기부터 일본인들이 독도에서 벌목과 어업을 해왔다는 것이고, 둘째,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오키섬 관할로 편입했다는 것이며, 셋째,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할 도서의 목록에 처음에는 독도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최종 목록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근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 보자.  17세기인 1693년 안용복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시발은 일본의 어민들이 울릉도에서 벌목과 어업을 하다 이에 항의하는 안용복을 일본으로 납치한 사건이다.  납치된 안용복은 굴하지 않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역설하였는데, 일본인들에게 ‘조선지팔도(朝鮮之八道)’를 기술하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팔도 중 강원도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무튼 이 사건이후 일본의 중앙정부인 막부에서는 일본인의 도해 금지를 결정하고, 울릉도와 독도를 갈 경우 도해 면허를 받도록 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일본 어부들이 울릉도와 독도 근해까지 진출해 벌목과 어업을 한 사실은 있으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볼 때 조선과 일본 모두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근거인 1905년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도 일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일본은 독도를 오키섬에 편입하면서 국제법상 주인이 없는 땅은 선점하는 나라의 것이라는 ‘무주지론(無主地論)’을 주장했다.  주인이 없는 독도를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오키섬에 편입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것처럼 시마네현 고시보다 5년 전인 1900년 대한제국은 고종황제 칙령 41호로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관할지역을 울릉 전도, 죽도(현재 남면에 있는 섬)와 석도(독도)로 하였다.   512년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떠나,  고종 황제 칙령 41호는 일본이 주장하는 ‘무주지론(無主之論)’를 무효화시키는데 충분하다.
 
세 번째 근거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어떻게 된 것인가?   1947년에 시작하여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수차례의 협상과정을 거쳤는데, 1차에서 5차 협상안에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반환해야할 섬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 등 독도가 포함되었지만, 최종 안에서 독도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를 근거로 일본은 연합국이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독도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최종안에 명시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일본의 로비설 등 다양한 설이 있으나, 독도뿐만 아니라 많은 섬들이 반환 목록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를 연합국이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근거로 해석할 수는 없다.  더구나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훈령 제677호 (SCAPIN 677)를 통해 울릉도, 리앙쿠르락(독도), 제주도는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고 고시한바 있어서, 연합국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취약한 반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역사적 자료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까지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사기(1145년)와 삼국유사(1285년)는 이사부의 우산국(울릉도와 독도) 정벌(512년)을 기술하고 있고, 세종신록지리지(1454년)도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측 자료를 보면 은주(讔州)지방 변사인 ‘사이토 호센’이 간행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 1667년)에 독도가 송도라는 명칭으로 처음 언급되는데, 이 책에서 일본의 경계지는 이 주(隱州/隱岐島)까지로 삼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일본 해군이 작성한 조선 동해안도(1876년)에도 독도를 울릉도와 함께 조선의 부속도서로 표기하고 있다.
 
이처럼 20세기 이전의 국내외 문헌과 지도에서는 독도가 우리 땅으로 되어있으나 일본의 대한제국 합병을 전후하여 외국 문헌들에서 하나 둘 독도가 일본 땅 다케시마로 왜곡 표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 노무현 대통령은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첫 번째로 희생된 영토라고 말했으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제2의 한반도 침탈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독도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의 땅이 확실하다.   그런데 독도아카데미 소속 대학생들이 국내 대학교 도서관 검색 결과, 수입된 외국문헌의 지도 80% 이상이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잘못된 현실을 이제 바로 잡아야 한다.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행정자치부 중앙 자문위원
- 경희 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 대학교 연구교수
-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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