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과 낙하산③>금융지주 ‘4대천왕’의 득세와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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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압과 낙하산③>금융지주 ‘4대천왕’의 득세와 몰락
  • 박시형 기자
  • 승인 2015.07.26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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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재임 당시 금융권 호령 정권 교체 후 모두 하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

금융권은 정권의 입김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그만큼 실세의 움직임에 따라 금융기관 임원의 부침이 심하다. 정부가 인가권과 감독권을 모두 쥐고 흔드는 데다 위기 상황에서는 공적자금도 투입되니 휘둘릴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정부와 각을 세우기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다.

뚜렷한 지배주주도 없다 보니 정부로서는 보은 인사를 내리기도 좋다.

다만,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때는 이 정권이 끝나는 시기가 자신의 퇴임 시기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 당시 4대천왕으로 불렸던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은 모두 MB 최측근들이었다.

4대천왕은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제왕적 권력을 휘둘렀다.

 MB 친구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뉴시스

이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은 하나금융 회장으로 있던 김승유 전 회장이었다.

김 전 회장은 MB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61학번 동기다. MB의 대선 당선 전부터 금융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김 회장이 MB의 금융마인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데다가 MB와 관계도 있어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MB는 2010년 M&A 시장에 던져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안겨줬다.

'한국투자금융'이라는 제2금융으로 시작해 다른 은행들로부터 괄시를 받던 김승유 전 회장이 4대 금융지주로 올라설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후 자산규모가 316조5000억 원으로 늘면서 신한금융(311조 원)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김 전 회장은 2012년 2월 외환은행 인수를 성사시킨 뒤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외환은행 인수를 마무리하고 떠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음에도 의사를 번복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여러 가지 말들이 많지만 정권 말기, 대선 등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그를 찍어 내리기 위해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 청문회가 준비되는 등의 움직임이 물 밑에서 시작되자 스스로 사퇴하는 모양새로 떠났다는 말이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는 김 전 회장이 김정태 회장을 내세워 하나금융에 대해 '수렴청정'하려 했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금융위 과장 옷 벗긴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4대천왕의 또 한 사람, 고려대 출신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

▲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뉴시스

그는 MB가 서울시장일 당시 금융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서울시 교향악단' 대표이사에 취임하는가 하면 MB 대선특보를 맡으며 친분을 쌓았다.

MB는 이 전 회장을 당초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래소가 당시 이정환 경영지원본부장을 선택하면서 낙마했다.

거래소는 검찰수사는 물론 감사원·금감원 조사까지 받았고, 청와대 의견을 관철하지 못했던 금융위 인사과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이 전 회장은 대신 우리금융지주로 낙하했다. 이 전 회장은 한일은행으로 입사해 우리투자증권 대표를 지내는 등 정통 우리금융 인사라 외부에서 봤을 때는 오히려 모양새가 좋았다.

그는 MB정권에 힘입어 2011년 3월 연임에 성공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전 회장은 민영화 실패 3회 우리금융경제력 상실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했다. 임기가 아직 11개월이나 남은 시기였다.

신제윤 당시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우리금융 민영화가 지연되면서 조직이 지나치게 정치화됐다"고 비판했다.

이 전 회장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자, 정부는 감사원을 앞세워 우리은행에 투입된 12조8000억 원의 공적자금 운영실태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끝내 이팔성 전 회장은 2013년 6월 사퇴했다.

‘무혈입성’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뉴시스

고대 경영대학 직속 후배인 어윤대 전 회장은 MB정부에서 '국가브랜드 위원장'으로 기용돼 MB를 돕다가 황영기, 강정원 전 회장이 잇따라 물러나면서 2010년 7월 KB금융 회장직에 올랐다.

KB금융 1대 회장으로 추대됐던 황영기 전 회장은 우리은행장 재임 시절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힌 문제로 금융위에서 징계를 받고 2009년 9월 자진 사퇴했다.

이후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 금융당국의 반대에도 선임절차를 강행해 최종후보에 올랐으나 금감원의 강도 높은 종합검사에 손들고 물러났다.

어 회장은 11개월 가까이 비어있던 회장직에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

그는 취임 1주년 행사에서 "KB금융 취임 전인 2년 반 전에도 구 차례 회장직을 제안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며 "고려대를 나왔기 때문에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어 회장도 MB정권 아래에서는 젊은층 고객 확보와 글로벌 중견·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등 큰 문제없이굴러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권 말이 되자 이사회와의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ING생명 인수가 이사회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어 회장이 연임하지 않는 조건으로 임기를 보장해 주기로 잠정 합의 했다고 알려졌다.

명실상부 ‘MB의 남자’ 강만수 전 산은금융 회장

4대천왕의 마지막 인물은 ‘MB의 남자’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이다.

▲ 강만수 전 산은지주 회장 ⓒ뉴시스

1980년대 초 MB와 소망교회에서 처음 만난 이후 30년이 넘도록 만남을 이어왔다. MB가 가는 곳에는 늘 강 전 회장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고시 출신인 강 전 회장은 MB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2007년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정책조정 실장', 대통령직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 MB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으며 MB를 보필했다.

강 전 회장이 2011년 3월 산은지주 회장으로 내정되자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나서서 “연봉을 올려드려야 한다”는 등 눈치 보기에 돌입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강 전 회장을 두고 ‘상왕의 귀환’, ‘총리급 회장’ 등의 말들이 오갔다.

그러나 금융권은 처음이라 그런지 불과 1년 만에 역점 사안이었던 산은 민영화를 놓고 갈지(之)자 행보를 보였다. 정치권은 이를 놓치지 않고 시장혼란만 부추겼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업계에서는 “부정적인 여론 이후 경영 행보에 적신호가 켜졌다”며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사안들이 대부분 수포로 돌아가면서 입지가 좁아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MB정부 실세’라는 정치적 명함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며 그를 압박했다.

강 전 회장은 2013년 3월 “더 이상 자리를 지키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부담을 주게 된다”며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금융 4대천왕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모두 사퇴하면서 막을 내렸다.

정권 교체…사퇴해도 금융당국 징계 조치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금융당국은 이들에 대한 조사를 벌여 추가 징계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어윤대 전 회장은 측근이 ING생명 인수 무산 후 KB금융 주총 안건을 유출해 감독 부실을 이유로 주의적 경고를 내렸다. 또 재임 시절 발생한 카드정보 유출, 도쿄지점 부당대출 등 사고로 ‘퇴직자 위법 사실의 통지’도 결정했다.

당국은 강 전 회장 압박용으로 대우건설에 대해 회계처리 기준 위반 혐의로 감리에 착수했다. MB정부 시절 대우건설이 4대강 공사를 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했는데 강 회장이 이를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이팔성 전 회장은 우리은행 ‘파이시티 사업’ 신탁상품을 판매하면서 불완전 판매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 사퇴했던 김승유 회장도 당국의 검사를 피할 수 없었다.

김 전 회장은 하나은행 종합검사에서 재직 시 과도한 미술품을 구매한 의혹으로 집중 점검을 받았다. 퇴임 후 별다른 자문 실적도 없이 막대한 고문료를 받은 점도 검사받았다.

한편, 박근혜 정권 코드는 ‘서금회’다. 서강대 금융인 모임. 금융권 일부에서는 MB 시절보다 더 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담당업무 : 시중은행 및 금융지주, 카드사를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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