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재신임', 노무현과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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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재신임', 노무현과 다른 이유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09.15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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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나라당 겨냥한 2003년 盧의 결단…2015년 文의 재신임은?
"누굴 위한 재신임인지 모르겠다"…당력 분산, 나아가 총선 악영향까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사진은 2007년 문 대표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 뉴시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재신임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비주류 진영의 강한 반발에 문 대표는 추석 전에 재신임 투표를 강행하겠다며 맞서는 양상입니다. 추석을 전후로 해서 문 대표에 대한 일반 국민·당원 재신임 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두고, 친노(친노무현)계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시원한 결정을 했다"며 잔뜩 치켜세우는 눈치입니다. 또 일부 언론은 문 대표의 모습에서 2003년 10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섰던 노 전 대통령이 연상된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기자는 문재인의 재신임 결단에서 노무현의 향기를 맡을 수 없었습니다. 2003년 노무현과 2015년 문재인은 전혀 다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신임을 결단한 까닭은 '외부의 적' 소탕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여소야대'의 형국 속에서 수세에 몰려있었습니다. 추진하는 과제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새천년민주당 등 야당이 발목잡기 일수였고,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쪽수 부족으로 힘을 충분히 실어주지 못했죠. 여론 역시 급격히 악화돼 있었습니다. 이듬해 있을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불 보듯 뻔했습니다.

그런 마당에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최 전 비서관을 SK로부터 11억 원의 비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소환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ASEM(동남아국가연합)+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있을 때 이 소식을 접한 그는 귀국하자마자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최도술 전 비서관의 행위에 대해 내가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입이 열개라 할지라도 내가 직접 책임을 져야합니다. 검찰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습니다"

그야말로 폭탄선언이었습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요동을 쳤었죠.

노 전 대통령의 '재신임' 결단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화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며 거들었죠. 하지만 이는 오판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야당의 '국민투표' 요구를 즉각 수용했고, 각종 여론조사는 '노무현 재신임'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어 검찰은 한나라당이 SK 등 대기업으로부터 800억 원이 넘는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게 바로 이때입니다.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여론은 노 전 대통령의 편이 됐고, 화색이었던 한나라당은 '실색'했습니다. 그리고 무리수를 두기에 이릅니다. '대통령 탄핵' 카드를 꺼내든 것이죠. 그렇게 2004년 17대 총선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반면,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결단은 누가 봐도 분명히 '내부의 적'을 겨냥합니다.

문 대표 스스로야 재신임을 통해 당내 분란을 종식시키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합니다. 정부여당에 맞서 민초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제1야당의 대표가 내부권력투쟁에 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양새니까요.

더욱이 재신임 결과가 어찌 나오든 문 대표 본인은 물론, 새정치민주연합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겁니다.

재신임 된다면 차기 총선이 목전에 있는 만큼 비주류 진영이 이를 곱게 받아들일 리 없습니다. 공천권을 둘러싼 내홍은 더욱 격화될 겁니다. 재신임 받지 못한다면 새정치연합은 지난 대선에서 48%의 국민 지지를 얻은 정치인을 스스로 내친 셈이 됩니다. 차기 총선 필패입니다.

당력도 분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핵심 당직자는 당에 대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신임인지 모르겠다. 지금 지역위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아느냐. 총선 준비로 한창이어야 할 때에 문 대표 재신임 문제로 당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더라. 힘을 모아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데 지리멸렬하고 있다. 저쪽 좋으라고 재신임하는 거냐"

새정치연합이 문 대표의 재신임 문제로 시끌벅적한 사이 '외부의 적'은 종횡무진 내달리고 있습니다. 국정감사는 '빈손'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박근혜표 노동개혁'은 노사정 합의로 절반 이상 마무리된 눈치입니다. 20대 총선에서 야당이 80석도 못 건질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옵니다.

문재인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신임 폭탄선언'이 있었던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습니다. 당시 문 수석은 언론을 통해 이 같이 말했습니다.

"대통령 재신임 문제는 정략적 판단을 할 일이 아닙니다. 국민투표가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력 낭비를 막기 위해 내년 총선 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제1야당 대표의 재신임 문제 역시 정략적 판단을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력 낭비를 막고 내년 총선 승리를 도모하려면 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전원이 지금과는 '다른 방향'의 대오각성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요.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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