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 창당]끊이지 않는 당명 논란…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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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창당]끊이지 않는 당명 논란…왜?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09.15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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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신민당 ,통합행보vs박준영 신민당, 야권분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 (위)'1967년 신민당' 소속 유진오 총재(맨오른쪽), 윤보선 전 대통령(맨왼쪽). (아래)'2015년 신민당' 15일 신민당(가칭) 창당 선언한 박준영 전 전남지사 ⓒ 뉴시스, 시사오늘

박준영 전 전남지사의 '신민당(가칭)' 창당 선언을 두고 야권 일각에서 당명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전 지사가 보이는 행보와 신민당의 역사가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신민당이라는 정당은 민주당 내 '구파'가 분당해 창당한 '1960년 신민당', 유진오·유진산 등이 민중당-신한당 세력을 한데 모아 일으킨 '1967년 신민당', 그리고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주축이 돼 창당한 '1985년 신민당(신한민주당)' 등 총 세 차례 등장했다.

이중 박 전 지사가 계승 의지를 밝힌 신민당은 '1967년 신민당'이다. 그는 15일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윤보선, 정일형, DJ의 애민 애족 민주정신을 이어받겠다"며 '1967년 신민당' 주요 인사들의 이름을 거론했다.

1967년 신민당은 유진오, 유진산, 윤보선, 이재형, 조한백, 정일형 등 주도로 구파와 신파 세력으로 분열된 옛 민주당계 인사를 끌어 모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창당한 정당이다.

당시 신민당은 1970년 자유당, 한국독립당을 흡수 합당하는 등 통합야당의 행보를 보였고,  구파·신파의 대표적인 젊은 정치인이었던 YS와 DJ의 '40대기수론'을 내세워 정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이들은 1971년 총선에서 전체 204석 중 89석을, 1973년 총선에서는 유신체제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52석을 확보하는 등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이에 박정희는 신민당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조직폭력배 김태촌을 시켜 신민당 당사를 공격하는 등 정치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꾸준히 통합의 야당, 선명한 야당의 길을 걷던 신민당은 이후 'YH사건-부마사태-10·26사태' 등을 주도하면서 1979년 마침내 유신체제 함락을 이끌어내는 쾌거를 거뒀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짧았다. 신군부세력(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다시 잡았고, 신민당은 1980년 강제 해산됐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1967년 신민당의 역사를 들어 박준영 전 지사가 신민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신당을 창당하는 게 옳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 전 지사의 '2015년 신민당'은 통합야당을 표방했던 '1967년 신민당'과는 달리 야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의 한 원로인사는 15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박 전 지사가 신민당이라는 당명을 사용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옛 민주당을 계승한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을 박차고 나선 정치인과 신민당은 어울리지 않다"며 "박 전 지사는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똘똘 뭉쳤던 신민당의 정신을 모욕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신민당 간판을 포기하라"고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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