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20 일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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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종, "기수는 내 천직(天職), 힘 닿는 데까지 말 타겠다"
박태종 전설의 기수
'경마계의 살아있는 전설' 박태종 기수
"現 대한민국 경마계 최고의 '리딩자키', 문세영 기수"
"금연·금주·일정한 취침 습관, '30년 롱런'의 비결"
"최고의 말 핵돌풍·대견, 최고의 라이벌 김효섭·김종원"
"전인미답 통산 2000승 기록, 내년 초 반드시 돌파할 것"
2015년 10월 31일 (토)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1200m 1경주 출발합니다. 1번마 리틀엔젤스, 2번마 클린업휘슬, 4번마 화이트선, 7번마 럭키신화 네 마리가 앞서 나갑니다. 4코너 들어서 직선주로 돌입합니다.

아! 바깥에서 올라오는 10번마 과속돌풍! 빠르게 치고 나오고 있습니다. 10번마 과속돌풍, 종반 선두권으로 부상합니다.

과속돌풍의 기수는 박태종. 10번마, 10번마 결승선 선두로 통과합니다. 바깥쪽 직선주로를 그야말로 나는 듯이 달려왔습니다!"

2015년 10월 25일 일요일 오전 11시 제1경주가 열린 서울 과천 렛츠런파크 1200m 경주로, 장내를 가득 메운 경마 팬들의 환호성이 해설가의 목소리를 가렸다.

경마 전문가들이 1위는커녕 순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하리라 예상했던 '10번마 과속돌풍'이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보기 좋게 예측을 깬 과속돌풍의 안장 위에는 '경마의 전설' 박태종 기수가 있었다.

1987년 한국마사회 공채 기수후보생 13기로 경마계에 입문한 박 기수는 이후 1993년부터 2007년까지 15년 연속 다승 1위 자리에 올랐고, 대상경주에서 29회나 우승을 거둬 이 부분 최다승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박 기수는 2015년 10월 기준 통산 13022전 1970승을 기록, 한국 경마계에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대기록인 '2000승'에 단 30승만을 남겨놓고 있다.

더욱이 그는 51세(1965년생)라는 적잖은 나이에도 고삐를 쥔 손을 놓지 않은 채 정상급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경마팬들이 박 기수를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르는 이유다.

<시사오늘>은 10월 29일 박 기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 과천에 위치한 렛츠런파크를 방문했다. 인터뷰는 기수협회 건물 1층에서 진행됐다.

그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동네 아저씨'였다. 체격은 생각보다 더 왜소했고, 옷차림은 후줄근했다. 경기장을 주름잡던 압도적인 위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진도 찍나요? 옷을 좀 갈아입고 올게요."

숙소에 다녀온 박 기수의 손에는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과 빨간색 가로 줄무늬가 새겨진 경마복이 들려 있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가져온 옷을 덧입고 자리에 앉았다.

경마복을 입은 박 기수는 첫인상과 사뭇 달랐다. 갈색 눈동자에서는 질주의 본능이 느껴졌다. 목까지 여며진 경마복 사이로 엿보이는 목빗근은 야생마처럼 꿈틀거렸다. '경마의 전설' 박태종의 카리스마가 온몸에서 발현했다.

   
▲ 박태종 기수 ⓒ 시사오늘

기수는 천직(天職), 더 뛰고 싶다

-경마장 밖에서는 처음 뵙는다. 반갑다.

"내가 더 반갑다. 말수가 적은 편이라는 게 소문이 나버렸는지 기자들이 잘 안 찾더라(웃음). 연락해 줘서 고맙다."

-평소에는 보호구 때문에 몰랐는데 머리 사이로 새치가 제법 보인다.

"(머리를 긁적이며) 우리 나이로 올해 52살이다. 사실 원래는 1964년생인데 호적에 1965년생으로 기록돼 있다."

-52세면 기수로 뛰기엔 힘든 나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야 50살이 넘으면 나이가 많다고 하지만, 외국에는 60살 넘은 기수도 많다. 아직 체력적인 부담은 느끼지 않고 있다. 젊은 기수들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경마 팬들 사이에서는 이름값을 못 한다는 평가가 종종 나온다.

"성적이 예전보다 안 좋으니까 당연하다. (웃으면서) 요즘에는 예시장(우승마를 예상하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경기 전에 말들을 선보이는 장소)에 가면 이제 그만 은퇴하라는 팬들이 많다.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팬들이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주시는구나 하고 웃어 넘기려 한다."

-같은 13기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편으로 알고 있다.

"아니다. 정평수 기수가 내 동기인데 나이도 같고,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다. 김옥성 기수, 신형철 기수는 두 살 어리다. 5기 김귀배 선배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나보다 나이가 많다(1962년생)."

-나이 때문에 힘들지는 않나.

"첫 경주는 언제나 힘들다. 첫 경주만 잘 뛰면 그 다음 경주부터는 괜찮다. 경마 팬들은 잘 모르실 텐데 경주 한 번 뛰면 마치 100m를 전력질주한 것처럼 숨 가쁘다. 사실 예전보다 몸이 약간 둔해졌다는 느낌은 있다."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해본 적 없나.

"음…. 나중에 조교사(경주마를 훈련시키고 길들이는 일을 하는 사람)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있다. 글쎄, 나도 언제까지 기수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조교사하고 싶은 생각보다 말 오래 타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하다. 스스로 느끼기에 체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질 때 그만둘 생각이다. 지금은 말 위에 앉고 싶다. 자신 있다."

-2000승 달성하면 은퇴할 거라는 말이 돈다.

"(엄지와 검지를 모으며) 그런 생각도 조금 있는 게 사실이다."

-'박수칠 때 떠난다'는 말이 있다. 사실 후배 문세영 기수에게 밀려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말을 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후보생 시험 합격했을 때부터 기수가 천직(天職)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탔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체격도 일반 사람들보다 왜소하지 않느냐. 말 타는 게 적성이다 싶어서 도전했다. 나는 말 타는 게 좋다. 조교사로 전향하면 신경 쓸 일이 엄청 많다. (웃으면서) 그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말을 타겠다."

'문태종'이라 불렸던 문세영

최근 과천벌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수는 문세영 기수다. 2001년 7월 샛별처럼 경마계에 등장한 문 기수는 2015년 10월 기준 통산 5989전 1205승을 거뒀으며 승률은 20%에 달한다.

한때 경마 팬들은 승승장구하는 문 기수를 '문태종'이라 불렀다. 거침없이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 전성기 시절 박태종 기수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박 기수는 문 기수를 자신이 본 기수 중에 최고의 리딩자키라고 평가했다.

   
▲ 박태종 기수 ⓒ 시사오늘

-까마득한 후배들과 같이 경주한다는 게 부담되진 않나.

"그렇지 않다. 선배 입장이 돼 보니까 후배들에게 모범이 돼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기더라. 경주할 때도 웬만하면 후배들 진로방해 안 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진로방해로 인한 기승 정지도 별로 받지 않았다."

-문세영 기수, 서승운 기수 같은 젊은 사람들에게 밀리는 경향이 있다.

"나이를 먹다 보니까 성적이 잘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고 기복이 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보다는 말을 고를 수 있는 선택 폭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내게 능력 있는 말보다는 조금 떨어진 말을 탈 기회밖에 안 온다. 옛날에는 좋은 말들 많이 탔었는데, 허허허."

박 기수는 2010년을 기점으로 하향세를 탔다. 내리막길을 걷는 기수에게 좋은 말을 내어주는 마주나 조교사는 드물다. 좋은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박 기수는 2014년 40승밖에 얻지 못하는 최악의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박 기수는 이를 이겨내고 올해 들어 561전 69승을 거두며 부활의 날개를 크게 펼쳤다.

-대한민국 경마 '리딩자키'의 계보는 '김명국-박태종-문세영'으로 이어진다. 세 사람 모두 전성기라고 가정했을 때 누가 가장 낫다고 보나.

"김명국 선배, 문세영 기수 모두 같이 말을 타봤는데, 객관적으로 세영이가 좀 더 나은 것 같다. (웃으면서) 사실 나는 그 계보에 끼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세영이가 말을 좀 더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아는 것 같다. 김명국 선배가 정말 자유자재로 말을 타는 스타일이라면, 세영이는 굉장히 전투적이고 공격적이다. 경마에 더 적합한 기수라고 생각한다."

-문세영 기수가 돋보이는 이유는 라이벌이 없어서라는 말이 있다.

"그런 게 아니라 워낙 잘 타니까 라이벌이 없는 거다. 지금 우리 경마장에서는 세영이가 제일 잘 탄다."

-김명국 기수와 문세영 기수의 장점을 모두 갖춘 게 박태종 아닌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난 거기에 끼지도 못한다니까. 지금이라도 경마교육원에 가서 후배들과 다시 기초부터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나는 말 타는 실력이 완전 엉망이다(일동 웃음).
보통 운동은 자기 육체로만 하는 거지만, 경마는 다르다. 기수는 말과 함께 호흡을 해야 한다. 내 마음대로 말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경마 팬들께서 그렇게 봐 주신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솔직히 가끔은 '내가 말 제일 잘 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 같다.

"세영이가 진짜 잘 탄다. 서승운 기수도 참 잘 타고. 세영이나 승운이가 말 타는 거 보면 나도 쟤네들처럼 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요즘 성적이 안 좋아서 그런가, 젊은 기수들처럼 멋있는 자세로 멋지게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교육원에 들어가서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도 그런 연유다."

-어떤 부분을 다시 배우고 싶나.

"딱히 그런 게 있다기보다는, 지금은 교육과정이 참 체계적으로 잘 돼 있다. 우리 때에는 교육이라는 게 마땅히 없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말 모양 동상에다가 안장 묶어놓고 그냥 위에서 허우적허우적거렸는데, 요즘에는 말과 거의 비슷하게 자동으로 움직이는 운동기구가 있어서 그걸로 교육시킨다. 갈수록 후배들 발전 속도가 빨라지더라.

본경주 전에 하는 모의경주도 우리는 30명이 말 10마리 가지고 돌았다. 1마리가 세 번을 돈 셈이다. 몇 번 하지도 못하고 본경주에 나가기 일쑤였다. 지금은 아마 1인당 한마리 이상 배정돼 모의경주를 많이 한다. 현재 신인기수들은 데뷔하기 전부터 기성기수들과 실력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웃으면서) 나는 신인기수 때 어떻게 하면 똑바로 직진할 수 있을까 그거 생각하기에 바빴는데."

-교육 분위기도 예전과 많이 다른가.

"옛날에는 선후배 관계가 굉장히 엄격했다. 교관들한테 기합을 받는 건 기본이고, 나보다 나이 어린 선배들한테 '빠따'를 맞기도 했다. 요새는 그런 거 없다. 교육 프로그램이 굉장히 과학적이고 실무 위주로 편성돼 있다."

   
박태종 기수 ⓒ 시사오늘

'살아있는 전설'이 된 비결

-1987년 데뷔 이후 30년 가까이 기수 생활을 했다. 꾸준한 성적을 낸 비결이 무엇인가.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기수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천직이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 가지고 했기 때문에 꾸준하게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다."

-술이나 담배를 전혀 안 한다고 들었다.

"맞다. 그런 게 비결일 수도 있겠다. 체력관리 측면에서 분명 도움이 될 거다."

-특별한 습관이나 보양식이 있다면.

"나는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 항상 저녁 9시 전에 잔다. 일할 때는 새벽에 일어나니까 리듬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해서 쉬는 날에도 반드시 9시 전에 잔다. 그래서 기수들은 저녁 드라마를 못 본다. 그나마 8시뉴스가 생겨서 참 다행이다. 기수협회는 SBS한테 상줘야 된다(웃음).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반 시간 이상 운동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보양식이라…. 특별하게 주문해서 챙겨 먹는 음식은 없다. 그냥 주변에 몸에 좋은 거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만다. 결혼 전에는 보신탕을 가끔 먹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인가) 노코멘트하겠다(웃음)."

-주목을 덜 받는 말을 타고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로 유명하다. 그것도 비결이 있나.

"조교를 통해서 말을 훈련시키고, 내가 직접 호흡을 미리 맞추기도 한다. 신마(新馬)들 같은 경우는 아직 어린 말들이고, 성장기다 보니 조교하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힘이 차져지고, 근육이 발달하는 애들이 많다. 그런 말들을 운이 좋아서 자주 만나서 그런 것 같다."

-그런 말을 타고 우승할 때가 더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인기 있는 말을 타고 우승하는 게 훨씬 좋다. 인기 없는 말이 1등으로 들어오면 돈을 잃은 팬들이 욕한다."

-4코너를 돈 직후 직선구간에서 절묘하게 치고 나가는 전략을 자주 쓰는 것으로 아는데, 요즘에는 약간 힘에 부쳐 보인다.

"그런가. 나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 80~90%는 말의 영향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몸이 약간 둔해진 영향도 조금 있을 거다.

-'마칠기삼(馬七騎三)'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단언컨대 말이 80% 정도 된다. '마팔기이(馬八騎二)'로 보는 게 맞다.

나는 4코너를 돌고 나올 때쯤 '이번 경주는 무조건 3착 안에 들겠구나' 하는 판단이 선다. 4코너 전까지 말이 힘을 덜 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싶으면, 4코너를 돈 이후 말몰이에 나선다. 그러면 10마리 중 7~8마리는 정말 잘 뛴다. 근데 2~3마리는 4코너에서 아무리 밀고 때려도 속도를 내지 않더라. 그럴 때는 진짜 말한테 배신감을 느낀다."

-말을 타고 나올 때 배당판을 볼 때도 있나.

"내가 탄 말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 말일까 하고 궁금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럼 본다."

-예전에는 박태종이 탔다 하면 배당이 막 떨어졌는데, 요즘은 잘 안 떨어지더라.

"(웃으면서) 인기가 좀 떨어진 모양이다. 더 열심히 해야 겠다."

부상의 아픔, 그리고 세 번의 유혹

   
▲ 박태종 기수 ⓒ 시사오늘

기수들에게 부상은 숙명과도 같다. 경주중에 말에서 굴러 떨어져 말들에게 차이거나 말발굽에 밟히기라도 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사망한 기수들도 여럿 있었다. 말에게 장비를 씌우거나 벗길 때도 항상 주의해야 한다. 뒷발에 차이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박태종 기수도 1999년 낙마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쳤다. 박 기수는 그때 더 이상 기수로 활동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증이 심각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수차례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기수들은 항상 부상을 우려해야 한다. 나도 크게 다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제일 큰 부상을 입었던 때가 1999년이다. 경주 중에 말에서 떨어졌다. 내 앞에 있던 말이 진로방해를 해서 말과 같이 굴렀다. 척추가 둘로 분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병원에 가보니 '척추압박골절'이라더라.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서 기수 생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장면을 보고 병원을 찾은 팬들이 내가 죽은 줄 알고 영안실에 들렀다가 안 보여서 올라왔다고 할 정도로 큰 사고였다."

-지난해 슬럼프의 원인도 부상 아니었나.

"맞다. 1997년에 끊어졌던 무릎인대가 작년에 또 끊어졌다.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때 많이 부진했다. 너무 속상해서 기수 괜히 했다 싶기도 했다."

-다행히 부상을 금방 극복했고, 올해에는 '제2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뭐, 그런 평가는 연초에 조금 나오다 말더라(일동 웃음)."

-우리나라 경주로가 모래주로여서 부상이 잦다는 지적이 있다.

"모래가 평평하고 고르면 괜찮다. 그런데 앞에 말들 가면 푹푹 파이는 곳이 생기니까, 뒤에서 따라가다가 파인 곳을 밟으면 약간 꾸뻑거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기량이 좋은 기수들도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더라.

"다치는 건 기수의 능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능력이 있든 없든 똑같다. 언제 어디서 진로방해가 들어올지 모르고, 말들의 행동도 예측하기 어렵다."

-마사회에서 잔디주로나 인조주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기수와 말들의 안전을 위해서 계속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니까 적합한 주로를 찾기 쉽지 않다더라. 잔디는 관리나 유지가 어렵고, 모래는 장마철에 죄다 쓸려 내려가기 십상이다.

주로 문제라기보다는 동물과 함께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돌발상황이 자주 발생하니까 언제 어떻게 사고 날지 아무도 모른다. 부상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말 훈련을 제대로 시키고, 기수들끼리 서로 진로방해를 최대한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

박 기수에게 병원은 '부상의 아픔'과 동시에 '승부 조작의 유혹'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그가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팬을 사칭한 정체 모를 한 남자가 돈 봉투를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최고의 리딩자키였는데 승부 조작에 연루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유혹은 몇 번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날 찾아온 사람이다. 어떤 남자가 팬이라면서 두툼한 돈 봉투를 떡하니 꺼내 보여주더니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는데, 나와 같이합시다'라고 말하더라.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돈 봉투였을 거다. '이러지 마시라. 괜히 헛수고하지 말고 그냥 가시라. 난 그런 사람 아니다'하고 돌려보냈었는데, 그렇게 세 번을 병원에 찾아왔다."

-유혹을 참기 힘들었을 것 같다.

"받는 순간 그냥 바로 코가 꿰이는 거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다."

-그렇게 해서 퇴출된 기수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

"꽤 있다. 술 한잔하면서 어울리고, 용돈 받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승부 조작에 연루되는 거다. 항상 조심하고, 자기 주변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경마장의 실체 없는 '루머'

-경마장에는 기수와 말에 대한 온갖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돈다.

"거의 다 헛소문이라고 보면 된다. 열에 하나 정도 믿을까 말까다. 지나가다 한번 본 사람도 나랑 친하다고 막 떠들고 다니더라. 경마장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

-'서승운-김혜선 기수 열애설'은 사실인가.

"그건 진짜다. 두 사람 분위기가 완전 핑크빛이다. 곧 좋은 소식이 들릴 수도 있다."

-'박태종은 꼭 여성 기수를 데리고 결승선을 통과한다'는 말도 있다.

"(웃으면서) 통계로 보면 그렇다고는 하더라."

-'박태종이 점찍은 후계자는 문정균이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실 동서지간이라는 소문까지 났었다. 재작년인가 정균이하고 마지막 경주를 같이 뛰고, 샤워하고 늦은 시간에 같이 퇴근하는데, 이를 본 한 마사회 직원이 우리한테 '너희 둘! 밖에서 붙어다니지 말라고!'한 적도 있었다. 정균이는 내가 예전에 계약기수로 있을 때 같은 조에서 활동한 적이 있어서 그때 많이 친해졌다."

-일본에서 온 이쿠야스 기수가 너무 실력이 좋아서 부산 경마장으로 내려 보냈다던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 외국 기수들을 데려오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외국 스타일을 보고 신선한 자극을 느끼고, 배울 점을 보고 배운다는 목적이 가장 크다. 이쿠야스 기수는 서울에서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부산으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성 기수들을 봐주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다.

"전혀 아니다. 여성 기수들이 아주 수준이 높다. 말을 아주 잘 탄다. 다만, 안쓰럽고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데, 타고난 힘이 약하다 보니 말이 자기 멋대로 힘을 쓸 때 제어를 잘 못할 때가 종종 있더라. 봐준다는 건 얼토당토않다."

-계약기수와 프리기수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계약기수는 말 그대로 특정 조에 소속된 기수고, 프리기수는 소속이 안 된 기수다. 프리는 하루에 9두씩 이틀 동안 18마리 탈 수 있고, 계약은 일주일 동안 7두씩 이틀동안 7마리밖에 못 탄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통산 500승 이상을 거두면 '영예기수'로 분류된다고 들었다. 특별한 혜택이 있나.

"무조건 영예기수가 되는 게 아니라 일정한 심사 기준이 있다. 일단 심사를 거쳐서 합격을 해야 한다. 승률이나 통산성적 등을 토대로 심사한다. 그리고 팬 투표도 실시한다. 혜택으로는 조교사 필기시험이 면제되는데, 면접은 봐야 한다."

-조교사와 기수가 한 가족인 경우도 종종 있던데, 말 선택할 때 유리할 것 같다.

"소속 조에 있는 좋은 말들이야 태워줄 수도 있겠지만, 성적 내는 건 본인 몫 아닌가. 성적 잘 안 나오면 가차 없이 다른 기수로 바꿔버린다. 가족관계여도 경마판은 냉정하다."

   
박태종 기수 ⓒ 시사오늘

'따이 종', 그리고 가족

'경마 대통령', '경마장의 슈퍼맨', '경마의 전설'…. 박태종 기수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경주로 바깥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같은 기수들은 그를 뭐라고 부를까.

-'경마의 전설'을 비롯해 별명이 무척 많다. 뭐가 가장 마음에 드나.

"(웃으면서) 별명이 아니라 그냥 나 듣기 좋으라고 경마 팬들께서 그렇게 불러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짜 별명은 따로 있나.

"내 눈이 제법 큰 편이다. 동기들이 나를 '왕눈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중간에 별명이 한번 바뀌었다.

-그게 무엇인가.

"'따이 종'이다."

1995년 인도에서 제24회 아시아경마회의(ARC, Asia Racing Conference)가 개최됐다. 이때 경마대회도 함께 열렸는데 박 기수는 여기에 출전해 세계 각국 기수들과 자웅을 겨뤘다. 그는 두 차례 경주에서 1위를 기록했다.

-'따이 종'이 무슨 뜻인가.

"옛날에 인도에서 아시아경마대회가 있었는데 내가 1등을 두 번 했다. 현지인들이 나를 응원하기 위해 이름을 연호하는데 발음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태종'을 '따이 종'이라고 하더라. 그 이후, 같이 갔던 조교사들과 기수들이 나를 '따이 종'이라고 부르면서 놀렸다."

-요즘 젊은 기수들이 붙여준 별명은 없나.

"나이가 워낙 많이 차이 나서 그런가. 없는 걸로 안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고) "저 잠시만요.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네요. 얼른 받아야 돼요."

박 기수는 1998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늦은 결혼을 했다. 그를 좋아하는 한 경마 팬의 주선으로 만난 두 사람은 연애 6개월 만에 살림을 차렸다. 박 기수는 부인을 '인생의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박태종 부부는 슬하에 18살 딸 하나를 뒀다.

-결혼을 늦은 나이에 했다.

"한창 잘나갈 때 돈 쓰는 맛을 알아버려서 정신없이 지내다가 결혼을 늦게 했다. 와이프는 내 '인생의 은인'이다. 난 결혼하기 전에 돈을 한 푼도 모아놓지 않았다. 마누라 만나고 나서야 돈도 모으고 집도 사고 그런 거지, 결혼 안 했으면 아마 난 지금 노숙자처럼 다녔을 거다."

-기수를 직업으로 삼은 만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미안한 부분이 없지 않다. 게다가 난 취미생활도 운동인데 부인과 딸은 운동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가끔 부인이랑 골프 치러 필드에 나가긴 한다."

-골프를 제법 치는 모양이다.

"기수들이 허리 힘이 좋아서 그런가 다들 조금씩 친다. 신형철 기수는 프로급이다. 싱글 스코어를 치더라. 자전거도 좋아한다. 심심하면 운동 삼아 인천까지 뚫린 아라뱃길 자전거 도로 끝까지 갔다 온다. 9시간 정도 걸리더라."

-취미까지 운동이면 가족들 불만이 상당할 거 같은데, 혹시 가족들이 경마 그만두고 다른 일 하라고 한 적은 없었나.

"다른 일이라 봐야 조교사밖에 없지 않느냐. 와이프는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끔 도와준다. 기수도 그렇고, 다른 운동도 그렇고 늘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스타일이다. 내가 말 타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절대 반대 안 한다."

최고의 말, 최고의 라이벌

   
2015년 2월 8일 세계일보배 대상경주에서 '광교비상'을 타고 우승한 박태종 기수 ⓒ 한국마사회

-말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할 것 같다.

"말을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는 기수들도 많은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경주 끝나면 수고했다는 의미로 말목을 많이 만져 주고 두드려 주고 그런다."

-순한 말이 좋은가, 사나운 말이 좋은가.

"당연히 순한 말이다. 사나운 말은 힘이 좋긴 하지만 힘을 허투루 쓸 때가 많다. 순하고 잘 뛰는 말을 선호한다."

-30년 기수 생활 동안 만나 온 말들 중에 최고의 말을 꼽자면.

"2000년 코리안더비에서 우승한 '핵돌풍'이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추입이 기가 막혔다. 호흡이 잘 맞았다.

'대견'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1995년 그랑프리 때 만난 말인데, 원래 내가 아니라 신형철 기수가 탈 말이었다. 그런데 그때 신 기수가 기승 정지를 먹어서 나한테 왔다. 운이 좋았다."

-전성기 당시 최고의 라이벌 기수는 누구인가.

"언론에서는 주로 김효섭 기수와 나를 묶어 라이벌 구도로 끌고 갔다. 효섭이가 나랑 동기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효섭이는 지금 조교사를 하고 있다.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기수로는 김종원 선배가 생각난다. 김 선배는 말을 타다 심하게 다치셔서 기수를 그만뒀다."

'경마의 전설'에게 경마의 의미

박태종 기수는 원래 기수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다. 충북 진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모부가 운영하는 야채가게 일을 돕기 위해 상경한 박 기수는 택시기사가 되려는 생각에 용달차를 끌고 배달을 할 때마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지리를 익혔다고 한다.

-기수가 된 사연을 듣고 싶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택시기사나 포클레인 기사를 하고 싶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이모부 야채가게에서 오토바이나 용달차를 끌고 배달을 도왔다. 나중에 택시기사를 하려고 일부러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지리를 익히기 위해서였다. 포클레인 조수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이모부가 마포 마사회 지점 근처 식당에 배달을 갔다가 12기 기수후보생을 모집한다는 벽보를 보고는 내게 얘기를 하더라. 응시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면접관이 경마란 무엇이냐고 내게 물었다. 당황하던 찰나에 예전에 뚝섬 경마장 구경 갔을 때 '경마는 레저스포츠입니다'라는 홍보물을 봤던 기억이 나서 그렇게 대답했다. 면접관들이 비웃더라. 거기서 잘못됐다고 느꼈다."

-설마 그런 걸로 떨어졌겠느냐.

"1980년대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그 면접관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다(웃음). 그렇게 불합격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 13기 때 다시 지원해서 당당히 합격했다."

-지금은 경마란 무엇인지 대답할 수 있겠는가.

"(박 기수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뗐다) 아이고, 이거 참 아직도 어려운 질문이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경마는 진짜 레저스포츠다.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도박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조금만 더 경마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변화가 분명히 느껴지긴 한다. 요 몇 년 사이에 경주로 주변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늘었더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2019년에 영천 경마장이 문을 연다. 체력이 떨어지면 그곳에서 조교사로 일을 시작할까 생각하고 있다. 물론 힘이 남아있는 한 계속 기수 활동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0승은 언제쯤 가능하리라고 보나.

"올해 안에는 일단 어렵다. 2015년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아서 수치상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 내년 초에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교사를 하더라도 2000승은 돌파하고 가고 싶다. 문세영 기수가 얼마 전에 1200승을 했다. 아마 내가 2000승을 돌파해도 문 기수가 금방 기록을 깨리라고 본다."

'전설'과의 인터뷰를 마친 후 기수협회를 빠져나오다가 우연히 한 젊은 기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박태종 기수에 대해 물었다.

"박 선배랑 함께 경주하면 뭐랄까…. 프로야구에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선수 있잖아요. 내가 마치 이승엽이랑 같이 뛰는 고졸 신인선수가 된 느낌이 들어요. 햇병아리가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엔트리에 있는 거죠."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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