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의 세상만사>'역린의 시대', 국민분열만 남긴 교과서 국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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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의 세상만사>'역린의 시대', 국민분열만 남긴 교과서 국정화
  • 박동규 한반도미래전략연구소 대표
  • 승인 2015.11.13 09: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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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다수가 반대한 정책, 이미 생명력·정당성 상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동규 한반도미래전략연구소 대표)

봉건주의 시대 군주의 노여움을 사게 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 있다. '역린(逆鱗)'이란 본래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인데 임금의 뜻을 거슬러 노여움을 사는 것을 비유한 말이 됐다. 서양에서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도 있었듯이 왕조체제에서는 왕의 뜻은 곧 국가의 정책이었고 법이고 진리였던 시대가 있었다. 임금이 신하들에게 공치사를 하면 '황공하옵나이다'를 복창하며 허리를 굽혀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을 지금도 사극에서는 종종 보곤 한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역사교과서를 국가에서 만들겠다고 하여 온 나라가 찬반으로 갈라서서 싸움판을 벌이고 죽기 살기로 싸우다 잠시 휴전을 한 상태다. 국회에서 야당이 아무리 반대를 해도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정책이라며 박 대통령과 여당이 밀어붙여 결국 국정화는 예정대로 진행될 모양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싸움판의 한복판에 서슬 퍼런 칼날을 들고 진두지휘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정부 여당이 국민 여론과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주춤대고 있을 때 박대통령은 과감하게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전선의 최전방에서 앞장섰다. 국민들은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필요성을 강조하던 초창기에만 해도 정부가 역사 교과서 하나 만들겠다는데 '뭐가 대수인가'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에 좌편향이라는 화두를 내던졌다. 좌편향 역사학자들이 만든 역사교과서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열등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부터 '돌격 앞으로'를 외치자 총리, 교육부 장관, 여당 대표와 여당 국회의원들은 좌고우면 없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깃발을 높이 들고 종횡무진 했다. 대통령이 '고(Go)'를 외치자 신하들이 이에 충실하게 따르는, 마치 신(新)봉건주의를 보는듯했다.

처음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던 국민들은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들이 확산됐고, 초기에 국정화 여론이 반대 여론에 앞서던 것이 최근에는 완전히 뒤집혔다.

국민 여론이 반대로 확실하게 돌아선 이유는 단순하다. 그동안 멀쩡하게 아이들이 잘 배워왔는데 정부가 나서서 좌편향 공부를 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학교와 교사들의 교과서 선택 자유를 짓밟고, 민주시민으로서 다양한 이론과 사실과 주장들을 접하며 성장해야 할 아이들에게 '정권이 선택한 교과서'만 가지고 배우라니 이게 무슨 왕조체제의 말인가 하는 의문과 반발이 확산된 것이다.

민주국가의 정치는 여론 정치라고도 한다. 그만큼 국민 여론과 대중들의 생각은 정부 정책과 정권 선택의 결정권을 지닌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의 무기이자 국민들의 권리인 것이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조차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찬성은 36%인 반면 반대는 53%로 나왔다. 지난달만 해도 찬성 42% 대 반대 42.5%였다. 불과 한 달 만에 역전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전주 대비 3% 하락한 41%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이유로 국정화 추진을 꼽았다.

입법사항이 아닌 정부 정책을 추진하는 게 아무리 정부의 고유 권한이라 할지라도, 특정 이슈에 이렇게 과반 국민들이 반대한다면 이미 정책으로서의 생명력과 정당성은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역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역사학자들조차 대다수가 반대하고 집필에 불참 선언을 했다. 특히 전국 66개 대학교수 580여 명이 교과서 집필을 거부한 데다 28개 역사학회들이 역사학자들의 국정교과서 제작 불참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집필진 공모 상황이나 명단조차 비밀의 문을 굳게 닫고 있다.

"'바르게 역사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는 대통령의 말에 필자도 혼이 비정상이 됐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교과서를 만든다는 선언은 이미 공허한 말장난에 그친 셈이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 참여하는 집필진의 면모를 밝히지도 못하고 있는 것일까. 설령 교과서 국정화 집필에 참여한들, 이미 정부여당이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살아남지 못할까봐 충성 선언을 한 마당에 집필진들인들 '역린의 시대'를 무사히 소신대로 넘나들 수 있을지 의문일 뿐이다.

아니 불문가지다. 밀실에서 내려진 지침과 좌편향을 피해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니 그 교과서의 내용이 어느 방향에 맞춰져 있는지는 정답을 들고 쓰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여야가 나뉘어 싸움판에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국정화는 추진되게 되었고 외형상 정부여당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들의 뜻, 반대의 뜻을 거스른 역린'은 이제 잠시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을 뿐, 봄날이 오면 거대한 화산 분출처럼 '국민의 뜻을 역린한 시대'를 '심판'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들을 좌우로 나누어 갈기갈기 찢어지게 만든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결국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정신적 피해를 남겼다.

이렇게 지친 국민들에게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마지막으로 '국민들을 혼절시킬만한 큰 뜻'을 한 말씀으로 정리하여 내던지셨다.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아! 슬퍼진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온 필자도 그동안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한 죄'로 이젠 '혼이 비정상인 놈'이 되고야 말았다.

▲ 박동규 한반도미래전략연구소 대표

.前 독립기념관 사무처장
.청와대 행정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대변인
.중국연변대/절강대 객원연구원
.국회 정책연구위원(2급)
.現 한반도미래전략연구소 대표
•(사)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지도위원
.한반도희망포럼 사무총장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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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윤 2015-11-13 11:49:56
그들은 나라의 미래에 진정 관심도 애정도 없으나
오직 선거에만 관심을 갖는 부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