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7①] 길 위의 청춘, 사회적 분기점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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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7①] 길 위의 청춘, 사회적 분기점 될까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5.11.14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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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거리로 나선 청년세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오지혜 기자)

▲ ▲ <시사오늘> 172호 커버스토리 '응답하라 1987' ⓒ 시사오늘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번엔 1980년대로 돌아갔다. 1997년, 1994년까지 과거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응답하라> 시리즈는 당대를 풍미한 음악과 패션까지도 다시 주목받게 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잊고 지내던 90년대 가수들의 복귀가 잦아진 것도 그 영향이었다. 한마디로 <응답하라> 시리즈는 복고 열풍의 주역이 된 셈이다. 그러나 2년 전 <응답하라 1994>가 종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보다 오래 전으로 돌아가는 건 '무리수'라고 단정했다. 80년대를 다루기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난 6일, 세 번째 시리즈 <응답하라 1988>이 공개됐다. 복고패션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머리모양과 옷, 유머라고 하기에도 생경한 유행어가 브라운관에 가득 찼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동안의 걱정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여주인공 '성덕선'과 그녀의 동네 친구들은 단 1회 만에 시청자들을 사랑에 빠뜨렸다.

<응답하라>의 지속적인 인기비결은 바로 매 시리즈의 중심에 '청춘'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시대라고는 하지만 <응답하라> 주인공들은 지금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다. 쑥스러워 부모님께 애정표현도 못하는 무뚝뚝한 아들, 매년 생일 때마다 언니한테 가려 축하받지 못하는 둘째의 서러움, 짝사랑하는 친구와 가벼운 약속에도 예뻐 보이고 싶어 어설프게 화장하는 소녀. 실제 80년대를 보냈던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통해 '생기 넘치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청춘의 적당할 줄 모르는, 뜨겁고 복잡한 감정 선은 지금 세대를 비롯, 어느 세대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요소다. 

‘복고’현상은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나타났다. 지난달, 청년세대가 거리로 나선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외치는 대학생 행진은 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거리 위의 청춘을 떠올리게 했다. 말하자면 현실판 <응답하라 1987>이다. 

‘헬조선 탈출전략’ 세우던 2015 청년세대

"결혼도, 출산도 안 한다. 돈만 모으면 이민 간다." 올해 여름만 해도 젊은 세대는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며 '헬조선 탈출전략'을 세우는 데 열중했다. ‘이민도 능력’이라고 판단한 일부는 '수저계급론'에 기반한 '사다리 없는' 사회에서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했다. 온라인상에는 자조적 신조어가 난무했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하며 '청년일자리 양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작 당사자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젊은이의 정치혐오, 사회적 무관심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지난 9월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민노총의 시위가 광화문에서 진행되던 날, 거리 반대편 ‘스터디 카페’에는 수백 명의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하반기 공채에 대비하기 위한 ‘인적성’ 교재가 눈에 띄었다. 경제지를 가운데 두고 논술준비에 몰두한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바깥에서 시위구호가 들려오자, 연필을 만지작거리던 한 학생이 창문을 쾅 닫았다. 내 몸 하나 지키기 어려운 시대, 청년시위는 과거의 '유물'에 불과했다.

‘잊혀진 시절’ 1987년 6월

1987년, 거리에는 민주화운동이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6월 항쟁은 대대적인 경찰병력 투입에도 불구하고 20여 일간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연세대 이한열(20)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직격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사건을 계기로 민심은 한 방향으로 결집됐다. 대학생 시위 현장에 소위 ‘넥타이 부대’가 합류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항쟁은 감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6·29 선언, 대통령 직선제 통과가 이루어졌다. 그해 12월에는 국민의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거가 처음으로 치러졌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1987년이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일대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80년대를 마감하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적 이슈보다 경제적 이슈가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시위에 나서는 학생들에게 미안해 숨어 공부하던 사법고시생의 이야기, 경찰들의 최루탄 공격에 대비해 치약을 눈 밑에 발라주던 선후배의 모습은 기억의 저 편으로 넘어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접속 '1987'
 
2015년 가을 대학가, 문득 그 시절을 마주친 느낌이다. 변화의 바람이 감지된 것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지난 10월 19일, 고려대·연세대 교내 게시판에 '기발한' 대자보가 붙었다. '력사교과서 국정화는 우리공화국 인민의 시종일관한 립장' 등 북한식 말투를 사용한 이들 대자보는 정부를 북한에 빗대 '역사 획일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다른 대학가에도 수학전공 학생이 '평균값의 정리'를 이용해 역사의 흐름을 꼬집거나, 미술학도가 '인쇄용 색채의 원리'로 객관적인 역사, 즉 시각의 다양성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젊은 세대가 모처럼 사회적 현안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그 외침이 '텍스트'에 그칠 것이라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간고사 기간이라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대학생들이 뜻을 모아가는 과정이지, 소극적인 자세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대로 청년세대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5년 10월 청계광장, 휘날리는 총학 깃발

▲ 지난 10월 31일, 청계광장 청년시위 ⓒ 시사오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앞둔 지난 10월 31일, '국정화 저지를 위한 범국민 대회'가 열렸다. 그 중심에는 청년세대가 있었다.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성신여대 등 17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국정화저지대학생대표자 연석회의(대학생 연석회의)'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과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 용산구 전쟁기념관 3곳에 집결, 거리행진을 했다. 행진에는 총 30여개 대학의 학생 천여명(경찰 추산 70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오후 4시 30분쯤 청계광장에 집결했다. 주말 데이트코스인 청계광장은 커플 대신 학교명이 새겨진 '야구잠바'와 교표가 그려진 '깃발'로 가득 찼다.

송준석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국정교과서에 대한 교육부 발표 이후 학내 학우들의 문의가 상당히 늘었다"며 "이에 총학생회가 목소리를 모은 것"이라고 밝혔다. 손솔 이화여대 총학생회장도 "함께 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기에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대학생 단체 등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대의 뜻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국정교과서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국정화 반대 발언을 이어갔다.

청년시위 새로운 풍경…야잠에 햄버거·삼각김밥

이날 오후 5시쯤 1차 행사가 마무리됐다. 주변에서 저녁을 챙겨먹기 위해 같은 교포가 박힌 야잠(야구잠바)끼리 짝을 지어 흩어졌다. 이들이 모인 곳은 광장에서 멀지 않은 패스트푸드점과 분식집. 야잠 차림의 대학생들이 햄버거를 받아 서둘러 자리를 잡은 그 뒤로 앳된 얼굴의 의경들이 줄을 섰다. 조금 전까지 서로 대치했던 청년세대가 다시 한 곳에 모인 셈이었다.

오후 6시, 2차 행사인 범국민 대회가 시작됐다. 이번엔 흩어진 야잠 물결뿐 아니라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시민들이 모였다. 그러나 그 중심은 여전히 대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주최측에서 나눠준 '역사쿠데타를 멈춰라' 피켓과 촛불을 들었다. 결연한 표정도 보였지만 웃음도 잃지 않았다. 한 학생이 구호와 함께 촛불을 너무 열심히 흔든 나머지 종이컵에 불이 붙었다. 이 '작은 사고'에 옆 대열의 청년들까지 모여 정신없이 입바람을 불었다. 다행히 불을 금방 거졌고 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뒤늦게 자리를 찾은 학생은 삼각김밥과 감자튀김을 들고 와 옆 친구들과 나눠먹기도 했다.

치열했던 청년들의 밤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는 말로 국정화 강행을 천명했다. 그 다음날인 지난 3일, 황교안 총리가 나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했다. 오랜만에 거리로 나섰던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찻잔 속 회오리’로 끝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패배경험 중요…싸우는 과정에서 성숙”

2030정치공동체 '청년하다' 정태호 고려대 지부장은 "정부가 지난 3일 확정고시를 발령하면서 청년세대에게 한편으론 무력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국정화 문제는 장기적으로 보고 싸워가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학생 연석회의에 참여한 서울대 주무열 총학생회장은 "패배경험을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속해서 싸워나가려는 시도 속에서 청년세대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에 대한 기본적 교육 보강해야”

청년의 정치·사회 참여를 높이기 위한 본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었다. 홍익대 심민우 총학생회장은 정치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법률 개정 과정 등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관심도 간다"면서 "교육면에서 보강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은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책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서 "지금의 청년층은 '부모 세대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런 상황을 운동으로도 반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까지 이해하고 있다"면서 "미계몽되었다기보다는 과계몽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서로 아픔에 공감하고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광화문 농성장에서 만난 대학생 이승헌 씨(21)는 "세월호 당시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많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었다"면서 "이제 청년세대가 행동에 나설 차례"라고 강조했다.

<응답하라 1987>로 돌아간 청년세대, 아련한 회상에 그칠지, 새로운 사회적 분기점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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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아 응답하라! 2015-11-14 19:21:26
청년들이 제앞가림에만 몰두하는 사이 기성세대들이 제멋대로 청년들의 삶을 재단해버렸습니다. 청년들이 나서야 세상이 바뀝니다. 87년 의로운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던 그 함성과 대동세상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