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응답④]"새로운 역사는 당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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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응답④]"새로운 역사는 당신에게 있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11.16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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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끈 '학출', 심상정·우상호·이인영·김용태 인터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응답하라 1987>을 외치고 있는 청년세대들에 '1987'이 응답했다.

<시사오늘>은 여의도 국회에 입성해 정치권을 이끌고 있는 '학출(학생운동출신)' 선배들을 찾았다. 그들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후배들이 마냥 '기특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자에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같이 힘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청춘들에게 꼭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인터뷰에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이인영 의원이 참여했다. 서울대 출신 심 대표는 1980년대 민주화·노동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걸'이다. 우 의원과 이 의원은 각각 연세대 총학생회장,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1987년 6월항쟁 한 가운데 있었던 인사들이다. 인터뷰는 11월 둘째 주 국회 의원회관 등지에서 진행됐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등 여권 내 '학출' 선배들에게도 '응답'을 요청했지만, 국회와 지역구 일정 등으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만,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서면을 통해 1980년대 운동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짧게 피력했다. 독자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심상정, "청년세대 좌절·분노의 깊이, 가늠하지 못해 반성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 뉴시스

- 대학생들이 다시 거리에 나섰다.

"학생운동이 퇴조하면서 침묵을 지켰던 대학생들이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시작으로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다가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유에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 폭발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참을 수 없을 만큼 '후졌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결국 국가가 정한 단 하나의 해석만 배우라는 건데, 고등학교를 떠난 지 얼마 안 된 대학생들에게 어른들이 시키는 것만 외우라는 억지스런 폭력에 크게 분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대학가 분위기가 1980년대에 비해 달라진 건 분명해 보이는데.

"대학생들이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다들 너무 바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취업하기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보다 어려운 현실이다. 정치적인 견해를 피력할 여유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세상이 청년들에게 무관심을 강요한 거다.

하지만 요즘 변화가 느껴진다. 청년들이 조금씩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높아지는 등록금, 늘어나는 생활비, 스펙은 쫓아도 쫓아도 끝이 없고, 취업은 보장되지 않는다. 노력이나 성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집합적인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 게 아닐까."

- 심 대표가 운동권에 있던 때와 비교하자면.

"내가 운동했던 시기는 '암흑시대'였다. 유신, 10·26 사태, 12·12 사태, 그리고 5·18 광주항쟁까지…. 나는 바로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고, 이후 줄곧 민주화·노동운동에 몸담았다. 무자비한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서 위험이 컸다. 요즘은 유인물을 돌린다고 목숨을 내걸지는 않지 않나. 그렇게 싸워서 쟁취한 민주주의였는데 발전 속도가 너무 더디다. 성에 차지 않는다. 공권력은 여전히 시민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신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서 민주주의가 전방위적으로 퇴행하고 있다. 정말 분노가 치민다."

- 민주주의란 원래 느리게 발전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민주주의는 원래 더딘 것 같다. 민주적인 제도와 문화, 그리고 가치에 적응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정교과서는 민주주의 적응에 실패해 이를 거부하는, 소수의 '민주주의 부적응자'들이 벌이는 반동이라고 보고 있다."

- 마지막으로 거리에 나선 청년들에게 조언해 달라.

"얼마 전 내가 노동부 국정감사 때 했던 발언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노동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가하는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혁을 세게 쏘아붙였는데, 흥미로운 건 청년들의 반향이 컸다는 점이다. 여러 통로로 청년세대의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청년의 좌절과 분노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내가 그동안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정치에 대한 그들의 불신과 냉소만 생각했지, 좋은 정치에 대한 갈망을 꺼내려는 내 노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거리로 나섰든 아니든 내가 청년들에게 특별히 건넬 조언은 없다. 그럴 자격이 없다. 다만, 정치인으로서 보다 대담하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과 기획으로 그들에게 다가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청년들은 지금처럼 각자 위치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저 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서 저희들에게 좋은 자극을 줬으면 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같이 힘내자."

우상호, "스스로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주길"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 ⓒ 시사오늘

- 침묵하던 청년세대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침묵했다'는 전제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중대한 사회 현안이나 정세에 대해 비판해 왔다고 생각한다. 등록금 인하 투쟁,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국정원 불법해킹 의혹에 맞서 진실을 규명해 달라고 거리에 나온 학생들을 보라."

- 그래도 1980년대와 다른 건 사실 아닌가.

"결집하는 모습을 자주 보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취업난 등 경제적·현실적 문제들을 감안하면 아쉽게 여길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우리세대가 어린 세대에게 부채 의식과 책임감을 느껴야 옳다."

-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서는 대학생들이 결집하고 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잠시 뒤로 하고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중대한 시국 사안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 시위 문화도 많이 바뀐 것 같다.

"맞다. 요즘은 의사 표현 방식이 다양해 졌다. 참신한 아이디어의 대자보부터 음악과 공연이 함께 하는 문화제, 그리고 SNS까지, 1980년대와 비슷한 모양의 집회와 거리 행진 또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우 의원은 회상에 잠겼다가 입을 뗐다.

"나는 아직도 1987년 6월 故 이한열 열사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최루탄에 맞고 한 달 동안 중환자실에서 가쁜 숨을 내쉬던 이 열사 곁을 지키며 느꼈던 그 비통한 심정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열사의 민주 국민장이 열린 그해 7월 9일 신촌 로터리, 시청, 광주까지 가득 찬 인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그 광경, 함께 민주화를 외치던 모두가 더욱 굳건해지는 걸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그때처럼 피를 흘리며 대항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한열 열사 국민장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연대'의 의미와 힘을 오늘날 대학생들 역시 가치 있게 여기고 뜻을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다."

- 마지막으로 거리에 나선 청년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 달라.

"올해 청년실업과 구직난이 역대 최악이라더라. 힘든 시간을 보내도록 만든 것에 윗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미안하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거리에 나와서 패기 있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대학생들이 기특하고 참 고맙다. 모두 좌절하지 말고 청년 본연의 정신력과 판단력을 잃지 않길 바란다.

- 너무 상투적이다.

"그런가. (웃으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거리로 나설 때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맞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늘 염두에 두길 선배로서 조언하고 싶다. 1987년 민주주의라는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피를 흘리며 투쟁했던 과거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됐다. 지금 거리에 나온 대학생들도 스스로가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매순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인영, "역사 앞에 정의로운 외침이라면 포기하지 말라"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 ⓒ 시사오늘

-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생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유신시절의 복종, 침묵의 강요, 다양성이 아닌 획일화의 길을 가겠다고 '역사와의 전쟁'을 선포해 온 나라를 분열로 내몰고 있으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취업난 등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섰다.

"학생운동 선배로서 그리고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에게 송구스러울 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특히 더 그렇다. 박근혜 정권의 시대착오적 행태를 막아내지 못해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게 만든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 동시에, 민생을 외면한 채 대한민국을 유신시절로 돌이키려는 대통령의 비정상, 비상식을 바로잡기 위해 나선 학생들에게 고마움 또한 느낀다."

- 취재하면서 느꼈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청년세대의 반감이 상당한 것 같다.

"당연하다. 대선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를 폐지하지 않았는가. 비정규직은 역대 최대치고, 가계 소득은 사상 최저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한민국은 20·30대 청춘에게 암울한 현재다. 그들에게 미래를 약속하기 어려워 보인다."

- 1980년대 학생운동과 비교했을 때, 아쉬운 점은 없나.

"딱히 없다. 앞서 말했듯이 그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다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이라는 구호를 기억해 줬으면 한다. 1987년 6월 항쟁에서 시민들이 승리한 이유도 이 구호를 앞세웠기 때문이었다. 느리게 가더라도, 그리고 때로는 돌아가더라도 국민과 함께 가는 동행만이 국민적인 신뢰를 쌓을 수 있고, 역사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런 정신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 다시 불붙고 있는 학생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세우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역사다. 책속의 진리를 넘어 사회와 역사의 현장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대학생들의 외침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정의를 지키려는 힘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청년세대에게 조언을 해 달라.

"후배들에게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의 외침이 역사 앞에 정의로운 외침이라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외쳐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일시적인 어려움이나 환경에 굴하지 말고, 묵묵히 국민과 함께 조금씩 전진하면 된다. 그러면 대학생들의 주장이 현실이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나도 선배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그 길에 함께하겠다."


여권 내 '학출'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에 응하지는 않았지만, 서면을 통해 1980년대 운동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서울대 91학번 김 의원은 "나는 1980년대 학번 선배들이 중심이 됐던 운동권을 비판한다"며 "때문에 주체사상 계열 NL과 민중민주 계열 PD 양 운동권 사조를 모두 비판하고 민중당에 입당한 것이다. 민중당은 당시 기준으로 운동권으로 보기 어려운 정당"이라고 밝혔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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