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총궐기' 진짜 피해자는 선량한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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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진짜 피해자는 선량한 시위대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5.11.16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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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광화문 현장에서…폭력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차벽 붕괴를 시도하는 일부 시위자들 ⓒ 시사오늘

‘민중총궐기’가 열렸던 지난 14일, 기자는 차벽 앞쪽에서 청와대를 바라보고 서있는 10만여 명(주최측 추산 13만 명, 경찰 추산 6만4천 명) 중 하나였습니다. 취재 목적의 참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역사의식 획일화’ 시도에 반대하는 기자는 이번 시위가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대통령이 어떤 역사의식을 갖고 있어도 상관없지만, 그것을 강요하지는 말라”는 목소리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자부하는 여당이 ‘뜨끔’하기를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면서 기자의 희망에도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한쪽에서는 밧줄로 경찰 버스를 잡아끌고, 다른 한쪽에서는 깃대로 경찰을 찔러대고, 공중에는 물병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위 참가자들과 경찰 양쪽에서 모두 부상자가 나왔고, 심정적 공감을 보내던 국민들의 인상은 찌푸려졌습니다.

다음 날, 언론에서는 경찰이 부상을 입었다, 농민이 위독하다, 쇠 파이프가 등장했다, 경찰이 과잉 진압을 했다 등의 뉴스가 나왔습니다. 민중총궐기가 왜 열렸는지, 정부여당의 잘못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평화적으로 노동개혁 반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을 목이 터져라 외쳤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폭력시위’라는 프레임에 묻혔습니다.

만약 이번 시위가 어떤 폭력도 없이 평화적으로 끝났다면 상황은 어땠을까요? 어떤 이유로 광화문 광장에 무려 10만여 명의 국민들이 모였는지를 따져볼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요? 노동개혁은 뭐가 문제인지, 사람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왜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설사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국민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는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시위에 ‘폭력’ 프레임이 덧씌워지면서, 모든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노동개혁이,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옳으냐 그르냐의 기본적인 논의를 할 기회조차 없어졌습니다. 이제 그 누구도 노동개혁과 국정교과서를 말하지 않습니다. 경찰의 진압이 과잉진압이었는지 아닌지로 싸우고, 민중총궐기가 폭력 시위였는지 아닌지만 따지고 있습니다. 일부 시위자들이 폭력으로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폭력을 휘두른 시위자는 일부였습니다. 뒤쪽에서는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며 마치 축제를 즐기듯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교복 위에 비닐 우비를 입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피켓을 들고 서있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와 흩날리는 빗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자리를 지키는 그들의 모습은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미꾸라지’로 인해 그들의 평화로운 시위는 빛을 잃었습니다. 이날의 진짜 피해자들은 앞에서 싸우다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아니라, 뒤쪽에서 조용히 목소리를 낸 대다수의 시위 참여자들이었습니다.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폭력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듭니다. 이번 시위에서 10만여 명의 절규어린 목소리를 앗아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지난 집회가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 계기가 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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