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거제 분향소③]“김영삼은 그때 이미 대통령감이었지”
스크롤 이동 상태바
[YS 거제 분향소③]“김영삼은 그때 이미 대통령감이었지”
  • 경남 거제=오지혜 기자
  • 승인 2015.11.22 22: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포>전국각지서 조문객 행렬 줄이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경남 거제/오지혜 기자)

▲ 경남 거제도 YS 기념전시관 분향소. ⓒ시사오늘

22일 새벽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를 접한 기자는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경상남도 거제도로 향했다. 김 전 대통령이 태어나 가족들과 열세 살까지 머물렀던 거제도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 이곳에는 김 전 대통령 생가와 기록전시관이 있다. 거제시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전시관에 분향소를 마련, 조문객을 받았다.

기자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30분. 추모행렬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기록전시관 분향소는 거제시 중심가에서 1시간가량 떨어져있지만, YS 서거 소식을 접한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찾아 온 외지인이 많았다.

생가 조문을 위해 이날 오전 5시에 부산 해운대구에서 거제도로 내려왔다는 이상윤(남, 45세) 씨는 "김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동안 IMF 등 문제도 있었지만 민주화에 이바지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면서 "최연소, 그리고 최다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고 금융실명제라는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 22일 거제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한목소리로  'YS는 민주화의 상징이었다'고 말했다.ⓒ시사오늘

서울에서 찾아 온 60대의 한 부부는 거제도 여행 중 서거 소식을 듣고 대계마을을 찾았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하면 대쪽 같은 곧은 이미지가 있다"면서 "YS처럼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사회가 바로 서는데 돌아가셨다니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어린 자녀와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도 있었다. 부산에서 온 김태성(남,42세)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도 그랬고 아이들에게 역사의 순간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왔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당시 부산은 김 전 대통령에 열광적이었다. 수 십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그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기억된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IMF는 시대흐름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문민정부는 과보다 공이 훨씬 컸다"고 덧붙였다.

▲ 김영삼 기념전시관에 걸려있는 김 전 대통령의 유년시절. '김영삼은 고난과 역경의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의 거센 파도와 당당히 맞서 이 땅에 민주주의 새벽을 열었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시사오늘

발길을 분향소 옆 기념관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거제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 옆에는 '바다에서 나고 자란 김영삼, 고난과 역경의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의 거센 파도와 당당히 맞서 이 땅에 민주주의 새벽을 열었다'는 어구가 인상 깊었다.

분향소 바깥에는 동네 주민들이 대계경로당에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82세라고 밝힌 고령의 한 여성 주민은 김 전 대통령의 유년시절을 묻는 취재진에 "김영삼도 어렸을 때는 바다에 수영하러 가려고 옷도 훌렁훌렁 벗는 평범한 소년이었다"고 말문을 뗐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지자 그의 얼굴이 금세 진지해졌다. 그러면서 말문을 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마을 앞바다에 군함이 들어왔는데 폭발했어. 그때 김영삼 혼자 마을에서 내려와 바다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다 대피시켰어. 어른들도 안 왔는데 말야."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영삼은 그때 이미 대통령감이었지."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