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YS②]'巨山'의 숨겨진 인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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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YS②]'巨山'의 숨겨진 인간미
  • 박근홍·오지혜·정진호 기자
  • 승인 2015.11.29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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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참 희한한 곳이더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오지혜·정진호 기자) 

▲ 젊은 시절의 故 김영삼 전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손주항 전 의원(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 손주항 전 의원 제공

민주화 투사, 최연소·최다선 국회의원,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수식하는 단어는 거산(巨山)이라는 아호만큼이나 거대하다. 하지만 YS와 가까이에서 호흡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를 ‘가장 인간적이었던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정치적인 카리스마 뒤에 가려진 YS의 인간적인 모습을 되돌아본다.

김덕룡 전 의원, “고기가 익기도 전에 혼자 다 먹어서 옆 사람은 구경만 했다”

YS의 최측근이자 상도동계 핵심이었던 김덕룡 전 의원은 돼지고기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YS는 원래 돼지고기를 안 먹었어요. 어릴 때 돼지고기를 먹고 급체해서 고생한 적이 있거든. 그런데 제가 집에서 시골식으로 양념 고추장 바른 돼지고기를 가져와서 구워먹은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다 맛있게 먹으니까 YS도 망설이다가 조금 맛을 본 거예요. 그러더니 ‘돼지고기가 이렇게 맛있는데 이제까지 안 먹었다’ 하면서 저보고 매일 돼지고기를 가져오라는 거야. 그 다음부터는 고기가 다 익기도 전에 혼자서 다 먹어서 옆 사람은 먹지도 못하고 구경만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처음에는 YS와 같이 먹다가 나중에는 다른 데로 가서 먹고 그랬지.”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 회장, “산상기도 전통 만든 YS"

민주산악회 연수원장과 민주동지회 회장을 역임하며 YS와 민주화 투쟁을 함께한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 회장은 YS를 신앙심 깊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과거 민주산악회 활동을 할 때의 일이에요. 산을 오르고 있는데, YS가 갑자기 사람들에게 ‘기도하자’고 하는 거예요. 소위 말하는 ‘산상기도’였던 겁니다. 인상 깊었던 YS의 기도 제목을 떠올려 보면, '감옥에 있는 민주화 인사들이 건강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 주소서', '이 땅에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부정부패가 사라지도록 해 주소서' 같은 게 있었어요. 이후에 YS의 산상기도가 민주산악회 전통이 됐어요. 비(非)기독교인이었던 이민우 총재도 산상기도를 할 정도였으니까.”

손주항 전 의원, "YS가 날 국회의원 만들었다"

민주화 투사이자 정치 역사상 유일하게 옥중에서 당선된 손주항 전 의원은 YS의 격려 한마디에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고 말했다.

"벌써 50여년이 지난 일입니다. 당시 전북도의원이었던 나는 매 주말마다 민주주의와 호남 정치 복원을 국민들에게 설파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호남 지역 유세를 위해 전북으로 내려왔던 YS가 내가 연설하는 광경을 보고는 나를 찾더라고. 그러더니 "목청이 아주 좋은데 국회의원 한번 하지 그래"라고 하는 거예요. 솔직히 YS의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벅찼어요. YS 정도 되는 정치인이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했으니 어깨가 우쭐해진 거지. 그 기세를 몰아서 1973년 제9대 총선에 무소속 출마했고, 전직 도지사이자 현역 국회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던 겁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YS가 날 국회의원으로 만든 거지. 요즘은 YS처럼 대쪽 같은 정치인이 없어요. 지금이야말로 YS 같은 사람이 정치권에 필요할 때인데."

유성환 전 의원, "포용력 좋은 YS? 포옹력도 좋았다"

정치생활 내내 상도동계에 몸담으며 YS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유성환 전 의원은 YS와의 ‘포옹’이 참 따뜻했다고 추억했다.

“YS는 포용력이 좋기로 유명한 정치인이잖아요. 때문에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았고, 다들 하나같이 YS를 잘 따랐어요. 그런데 YS는 포용력만 좋은 게 아니라 '포옹력'도 좋았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든 사적인 자리에서든 사람들을 만날 때면 악수를 건네면서 꼭 껴안아 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내가 기억하는 '인간 김영삼'은 포옹력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진심이 느껴졌고, 참 따뜻했지.”

김봉조 민주동지회장, “봉투에 담지도 않고 주머니에서 바로 빼서 나눠줘”

YS와 함께 민주화를 이끌었고, 삼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서도 활동했던 김봉조 민주동지회장은 YS가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는 유일무이한 정치인이었다고 말했다.

“YS는 돈을 자기를 위해 쓰는 법이 없었어요. 어려운 국회의원들이 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주머니에서 빼서 바로 줬어요. 봉투 같은 것도 없고 주머니에서 바로 빼주고 했지. 그 험한 야당 시절에 그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게 인간으로서 쉬운 일이 아니에요. 사심 없이 정말 공적으로 선공후사로 정치를 하셨어요. 민주화도 하고 개혁을 이룩한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정치인이에요.”

원영일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 부인, “퇴임 후 ‘청와대가 참 희한한 곳이다’ 하시더라”

YS의 ‘오른팔’로 불렸던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의 부인 원영일 여사는 YS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 최 전 장관 집으로 찾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상도동 어른(YS)이 퇴임 후 집으로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최 전 장관이랑 둘이서 서로 붙들어 안고 울었어요. 그 때 제가 싫은 소리를 좀 했는데, 어른이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할 말이 없다. 청와대가 참 희한한 곳이다. 나는 국수 먹으면서 정말 잘하려고 했는데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어두워지고 판단도 어두워지더라’ 그러시더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된다고 하던데 최형우만 청와대에 들어와서 소리를 지르면서 안 된다고 하니까 내가 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최형우 말이 다 맞더라’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참 고마웠습니다.”

김상현 전 의원, “‘씰데없는’ 권위주의가 전혀 없던 분”

YS의 ‘필생의 라이벌’ 故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정치 인생을 함께하며 동교동계 핵심으로 불린 김상현 전 의원은 YS를 ‘탈권위적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YS는 정말 포용력 크고 결단력 있는 아주 위대한 정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어요.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영원토록 민중의 뇌리에 남을 분이지. 특히 YS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포용했어요. 1984년 5월 당시 DJ가 미국에 있는 바람에 제가 민추협 공동의장을 YS와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상도동계에서는 ‘어떻게 김상현이 총재님과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있느냐’고 항의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YS는 ‘그런 건 불필요한 생각’이라면서 동지들을 설득하고 그랬어요.”

이윤수 전 의원, “국정연설 마치고 퇴장하며 귓속말로 ‘뱃살 빼’”

동교동계인 이윤수 전 의원도 YS의 빈소를 찾았다. 그는 YS가 참 유머러스한 분이셨다며 인간적인 면모를 소개했다.

“YS는 참 유머가 있는 분이었어요. 또 굉장히 솔직하고 인간적이었고. 대범하기도 했고요. 나는 동교동 사람이지만 거산(巨山)을 좋아했습니다. 거산 선생님도 나를 사랑해줬고요. 언제나 따뜻함을 느끼게 했어요. 한번은 YS가 14대 대통령이 되고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했는데,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다가 내가 앉아 있는 걸 보고는 돌아서 나한테 오더라고. 그 때 내가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있었는데, 다가오더니 내 귀에 대고 ‘배에 살 좀 빼라’ 그러시는 거야.”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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