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예산안]'무소불위' 청와대, '무능력한'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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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예산안]'무소불위' 청와대, '무능력한' 야당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12.0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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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결국 모든 게 대통령의 뜻대로 됐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여야가 2일 새벽 2016년도 예산안에 합의했습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는 지난 1일 밤 9시부터 이튿날 새벽 1시 30분까지 지지부진한 심야협상을 거듭한 끝에 다음과 같은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

1.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과 모자보건법,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안은 12월2일 본회의서 처리한다.

2. 관광진흥법과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은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

3.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안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과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은 정기국회 내 여야 합의 처리한다.

4. 양당이 제출한 노동개혁 관련 법안의 논의를 즉시 시작해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

5.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은 정기국회 내 합의 처리한다.

6. 국회법 제95조제5항 단서에 따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 중 법인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조세특례제한법, 공탁법에 대한 수정안을 각각 상정해 처리한다.

뭔가 이상하지요? 분명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합의문인데 정체모를 법안 이름만 가득합니다. 더욱이 이들 모두 예산부수법안도 아닙니다.

'무소불위' 청와대

당초 여야는 '한·중 FTA 비준동의안'을 합의 처리하면서 예산안과 특정 법안을 연계해 처리하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1일 긴급 예산당정회의 이후 여당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은 시급한 민생관련 법안과 노동개혁법을 예산과 연계 처리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야당은 노동5법과 경제활성화 법안을 아무 조건 없이 협조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여당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달 24일 국무회의 발언을 살펴보면 이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백날 우리 경제를 걱정하면 뭐하느냐.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자기 할 일은 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이는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중략)…경제활성화 관련 4개 법안은 반드시 정기국회 내에 통과돼야 한다"

(2015년 11월 24일 국무회의, 박근혜 대통령)

박 대통령은 '립서비스', '직무유기' 등 날 선 표현을 서슴지 않고 써가면서 '경제활성화 관련 4개 법안' 통과를 국회에 주문했습니다. 경제활성화 관련 4개 법안은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 '관광진흥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을 말합니다.

여야의 2016년도 예산안 합의문을 보면, 경제활성화 관련 4개 법안이 모두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주장이 모두 수용된 겁니다.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에는 향후 논란이 생길 여지가 큰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민영화·영리화로 가는 포석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해당 법들이 시행되면 병원은 영리자회사를 세울 수 있고, 민간보험사와 병원이 '복합기업'으로 뭉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의료법 개정안까지 통과될 경우 대형 병원이 적극 영리 활동에 나설 개연성이 커져 영세 병원이 직간접적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관광진흥법은 학교 주변에 호텔과 모텔 등 숙박업소가 들어설 수 있게끔 합니다. 일각에서는 해당 법이 대한항공에 특혜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시행될 경우, 대한항공이 경복궁 옆에 호텔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같은 법안들은 반드시 적합한 처리 절차를 밟아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련 당사자·전문가들의 조언을 충분히 듣고, 어떠한 제약도 압박도 없는 환경 하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예산안-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연계'는 분명 청와대의 '무소불위'의 횡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입법권은 국회 고유의 권한입니다. 청와대의 개입은 우리 헌법에 명시된 '삼권분립'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법에서 규정하는 절차도 어기게 됐습니다. 우리 국회법에 따르면, 특별한 긴급성, 불가피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최소 5일 전에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최종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행정부의 압박으로 입법부의 민주적 절차가 훼손된 셈입니다.

'무능력한' 야당

그러나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어쩔 도리 없이 예산안-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연계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정부여당이 칼자루를 쥐었으니까요.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1일 긴급 예산당정회의 직후 "정부는 예산안 수정 작업을 전면 중단하겠다"며 야당을 몰아붙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원안이 그대로 통과됩니다. 정부여당은 '밑져야 본전'이지만, 야당은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거지요.

새정치연합은 경제활성화 관련 4개 법안을 수용하는 대신 '대리점거래공정화법', '모자보건법', '전공의수련환경개선법' 등을 받아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옹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리점거래공정화법은 일명 '남양유업방지법'으로, 본사의 물량 밀어내기 등을 금지하는 법안입니다. 모자보건법은 공공산후조리원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겨있고요. 전공의수련환경개선법은 전공의의 근무여건 개선을 골자로 합니다.

이 가운데 모자보건법은 여야의 이견이 큰 법안입니다. 야당은 각 지자체에서 산후조리원을 설립·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여당은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통과되더라도 '누더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공의수련환경개선법은 이미 '누더기'가 됐습니다. 전공의 근무시간은 주당 80시간(원안)에서 88시간(수정안)으로, 연속근무시간은 20시간 초과금지(원안)에서 36시간 초과금지(수정안)로 크게 늘었습니다. 이를 어길시 벌칙조항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원안)에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수정안)로 완화됐습니다.

누리과정(무상보육) 논의는 이뤄지지도 않았습니다. 새정치연합은 누리과정 예산으로 5000억 원을 요구했지만, 정부여당은 600억 원을 제시했습니다. 협상은 처음부터 결렬됐습니다.

이에 대해 이종걸 원내대표는 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했지만 미흡한 결과를 얻었다.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반성했습니다.

여야 합의문이 발표된 직후 국회에서 기자와 만난 새정치연합의 한 핵심 당직자는 다음과 같은 자조적인 말을 하더군요.

"결국 모든 게 대통령의 뜻대로 됐어. 130석(현재 127석) 가지고도 이렇게 무능력한데, 내년이 벌써 걱정이야"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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