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영화이야기>영화 〈내부자들〉, 욕망이 깃든 우리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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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영화이야기>영화 〈내부자들〉, 욕망이 깃든 우리의 자화상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5.12.02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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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깃든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이제는 한 해 두 편 이상의 천만 관객 영화를 배출해 내며 명징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한국영화지만, 그 수많은 소재와 주제 속에서도 대중이 현실적으로 목도할 수 있는 한국 언론의 뿌리 깊은 부조리와 모순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인상적인 드라마를 찾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얼마 전 개봉한 <특종 : 량첸살인기> 가 있었으나 언론과 기득권 계층 간에 만연된 한국적 먹이사슬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냈다기보다는, 실적에 집착하는 한 기자의 실수담을 아이러니와 유머 속에 버무리며 관객과 미진하게 만났다는 점에서 차라리 빌리 와일더와 월터 매튜 콤비가 만든 1974년 작 <프론트 페이지> 의 블랙 코미디가 그리워질 따름이다.

동시에 그러한 현실은 언론이 가질 수 있는 비리와 여론호도의 횡포에 대한 성토의 대리만족을 느껴 보고자, 이미 오래 전 영화임에도 아직도 <브로드캐스트 뉴스> 나 <왝 더 독> 과 같은 미국 영화를 찾아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구조적 병폐를 다룬 사회고발 영화의 시즌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이 스산한 가을의 끝에 개봉한 <내부자들> 은 현 자본주의 체제의 돈과 권력을 뛰어넘는 한국 기성 언론의 권위적 역기능이 초래할 수 있는 극단적 단면성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볼 화두를 던져줄 수 있을 듯하다.

솔직히 이병헌-조승우 라인에 포커스를 맞춘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수준 높은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깊은 드라마의 한계를 노정하여, 원작자가 이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미생> 과 같은 사회적 충격파의 여지에 대한 아쉬움을 완전히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관객과의 진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엔 무거움보단 차라리 순진에 가까운 능청스런 캐릭터가 늘 특화된 이병헌과 항상 맨주먹의 소위 ‘깡다구’ 와 결기에 찬 배역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승우의 연기력에 의존한 감독의 전략은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는, 양날의 검과 같은 인생의 진리를 다시 한 번 주지시켜 준다.

특히, 반사회적 인물로 온갖 악행을 일삼다 배신을 당해 복수의 칼날을 가는 정치깡패와 나름의 소신은 있으나 조직 내에서의 출세와 인정에 대한 욕구를 뿌리치지 못하는 세칭 ‘흙수저’ 검사와의 정의의 결의에 찬, 버디무비 류의 케미스트리는 뭔가를 생략한 듯한 숭숭 뚫린 허술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시나리오의 클리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것은 역시 영화임을 자각케 하는 현실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영화가 두 젊은 배우에게 힘을 싣고는 있으나,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상에서도 스토리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중심인물은 이병헌이나 조승우가 아닌 엄연히 백윤식이 분한 신문사 주간이며, 애시당초 또 그렇게 봐야 한다.

솔직히 이 영화가 두 주연배우의 이름에 기대어 정치깡패와 검사가 아닌, “…라고 볼 수도 있다” 와 “…로 보여진다”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말과 글의 향연을 교묘히 이용할 줄 아는 언론인의 행보를 원작대로 기본적으로 따라가며, 정치권력 및 재벌들과 야합하는 천민자본주의 의 치부를 그리는 데에 더욱 집중하였더라면 또 다른 이정표의 드라마가 완성되었으리라는 집착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세 남자의 합 속에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늘 관객과 선문답으로 소통하는 듯한, 백윤식만이 뿜어낼 수 있는 그 특유의 시퍼렇게 날 선 독사같은 캐릭터는 일부문의 경지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한국영화계의 두 젊은 대세들에게 조용한 압도와 동시에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만일, 주연 배우의 불미스러운 일로 늦춰졌던 이 영화의 개봉이 크랭크 업에 맞춰 예정대로 앞당겨졌더라면 지난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베테랑> 에게도 어느 정도의 여파가 미쳐졌을 지도 모를 만큼 두 영화는 적잖은 교차점을 이룬다.

다만, 무겁고도 현실적이며 시니컬한 미완의 원작을 해피엔딩으로 훈훈하게 매조지한 감독의 수는 사회의 희망을 보고자 하면서도, 흥행과 비평에서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던 자신의 전작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구현된 안전장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서막이 아닌 엔딩 크레딧에 배치된 “본 영화는 허구이며, 만일 현실과 일치한다면 그것은 우연일 것이다” 라는 내용의 문구는 감독의 그 작성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국 사회의 현실에 기초하여 기득권을 비판하며 계속해서 쏟아지는 이 계절의 사회 고발극들을 통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 카타르시스와 보상심리를 느끼고 환호하는 (백윤식이 분한 이강희가 개 돼지와 같다고 한) 이 땅의 대중들에게 의미심장한 함의를 주기에 충분하다.

결국 출세와 욕망을 꿈꾸며 오늘을 사는 평범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그 모든 자아를 좌절시키고 갉아먹는, 칼 포퍼가 말한 것과 같은 열린 사회의 그 적들은 바로 우리 모두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리니.
다만, 스스로 그 내부부터 서서히 와해시킬 지도 모르는 채…

몰디브와 모히또에 대한 검색어 순위가 순간적으로 오를 듯하다. 
 

▲ 김기범 영화평론가. ⓒ시사오늘

·한양대학교 정치학 박사

·트리즈 뉴스 전문기자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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