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호의 시사보기> 역사 교육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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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의 시사보기> 역사 교육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승인 2015.12.0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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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강상호 시사평론가)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전후하여 팟캐스트, 인터넷 TV, 케이블 TV 그리고 지상파 TV에서 행해진 다양한 찬반 토론과 보수-진보 연구단체의 주장을 담은 동영상 40여 개를 분석해 보았다. 한 동영상당 평균적으로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분량이었으니까 50여 시간의 동영상을 분석해 본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중 교학사 교과서와 미래엔 교과서를 다시 읽어 보았다.

분석하는 과정에서 연세대학교 송복 명예교수가 전국경제인연합회 특강에서 언급한 이튼스쿨(eton school)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송 교수에 따르면,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의 명문 학교인 이튼스쿨 졸업생 5,000여 명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송 교수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전쟁이 발생하면 사회지도층 인사가 앞장서 싸우다 죽어준다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함으로써 전 국민이 통합되고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6.25 전쟁 중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었다. 6.25 전쟁 기간 중 미국 고위급 인사의 자제 35명이 한국전에서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한 것으로 되어있다.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대장의 아들 밴 플리트 2세는 폭격기 조종사로 야간 폭격 후 귀환하다 전사했으며,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의 아들 빌 대위는 금화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사회 최고 지도층 자제가 6.25 전쟁 중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 수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죽었지만 그들 중 우리사회 유력인사의 자제가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교육을 ‘혼’에 비유했는데, 우리의 역사 교육과 영국과 미국의 역사 교육의 차이는 무엇일까? 영국의 이튼스쿨과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는 것일까? 어떤 교육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일깨워주는 것일까?

1910년 한일 합병은 우리에게 부끄러운 역사이다.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전쟁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소위 엘리트 관료들에 의해서 대한제국이 일본에 넘겨졌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운 것이다. 나라를 팔아넘긴 댓가로 일본으로부터 작위와 토지를 받고 영화를 누린 이들 관료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역사교육에서 출세주의와 성과주의를 지향하기 보다는 공동체의 정의와 과정의 정당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나친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잠시 이튼스쿨의 역사 교과서는 교학사 프레임에 가까울까 아니면 미래엔 교과서 프레임에 가까울까 생각해 보았다. 두 교과서를 비교해 보면 교학사 교과서는 타협적 애국 계몽활동과 산업화를 부각시킨 반면, 미래엔 교과서는 무장 항일투쟁과 민주화를 부각시킨 측면이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후자가 전자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 후 여론조사의 추이를 살펴보면, 발표 초기 찬성과 반대가 50:50에 근접한 팽팽한 양상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반대여론이 높아져 지금은 반대여론이 찬성여론을 크게 능가하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반대여론이 찬성여론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진보성향의 전교조와 대치 점에 있는 보수성향의 한국교총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이다. 한국교총의 경우, 10월 11일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62.4%로 나타났는데, 한 달 후인 11월 15일 여론조사에서는 반대가 80.6%로 극적인 반전을 보였다.

이처럼 찬성여론이 줄어들고 반대여론이 급증하게 된 원인은 뭘까? 두 가지 요인으로 분석된다. 첫째, 진실게임에서 국정화 추진세력의 현행 교과서 비판이 상당히 왜곡되고 과장된 것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고, 둘째,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초래할 국내외 문제점들이 크게 부각되고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국정보다는 검인정, 검인정보다는 자유발행제가 바람직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권고, 유엔총회의 보고서 채택 그리고 OECD의 현황을 고려해 볼 때,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현 정권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국가적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또한 이를 강행할 경우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에서 집권 여당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는 점에서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명분으로 철회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행정자치부 중앙 자문위원
- 경희 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 대학교 연구교수
-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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