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영화이야기>영화 〈히말라야〉, 한국형 산악영화의 효시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기범의 영화이야기>영화 〈히말라야〉, 한국형 산악영화의 효시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5.12.11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에서 인간을 찾다. 다만, 너무 처절하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히말라야> 포스터.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는 이들이 있다.

돈이나 권력 같은 현실적 댓가가 보장되지 않음에도, 동상과 화이트 아웃 그리고 설맹과 싸우며 산에 오르는 그들은 산보다 더 가까운 사회에서의 생존이 최우선일 뿐인 이 시대의 장삼이사들에게 무한한 경외심보단 차라리 무수한 의구심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평지의 범인들은 그들에게 산이란 허겁지겁 올라가 다만 잠시 머무르기 위해 운 좋게 허락받아야 하는 공경의 대상임을 알지 못한다. 산에 대한 ‘정복’ 이라는 말은 늘 불손한 금기어라는 사실조차 물론이다.

목숨을 담보로 그 극한의 산에 도대체 왜 오르는 지에 대한 해명은 성에 차진 않아도, 이 삭막한 세상살이에 지쳐 나약한 주제에 오만하기까지 한 인간 군상들에게 잠시나마 대자연속 한 점 존재의 인간애와 겸허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픈 영화가 있는 듯하다.   

엄홍길이란 ‘산쟁이’ 의 실화에 기초한 <히말라야>를 진한 휴머니즘을 내포한 본격 산악영화로 본다면 적어도 그렇다.

3년 전 <댄싱 퀸> 과 지난해의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으로 한국영화계엔 흔치 않은 백투백 홈런을 날린 이석훈 감독은 지난 1년간 자신의 주특기인 코미디 멜로를 잠시 내려놓은 채, 자연 속 인간과 사랑에 대한 남다른 고찰을 작정해 왔음이 분명하다.

작년 여름 고전 코미디물의 새 지평을 열었던 바다 산적들의 태풍 같은 용솟음 직후, 그는 진짜 산사나이가 되려 각성한 듯 바로 도착한 히말라야 속에서 결국 기존의 장르를 떠난 순정 드라마 한편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영화는 일정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영원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만남과 성취, 그리고 잠시의 헤어짐과 특별한 어떤 재회를 그려낸다. 그 여정 속에서 영화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한 남자를 떠나 한 인간과 동료로서, 그리고 자연의 지극히 작은 일부로서의 실체를 인간애의 토대 위에서 각인시키고자 하며, 그러한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웰 메이드 영역에서 눈부신 성장을 보였음에도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재난영화에선 늘 사각으로 남아있던 한국영화의 현실 속에서 <히말라야>는 분명 괄목할 만한 성취를 내어 놓는다.

어언 10여년 전 <남극일기> 의 그 안타깝던 실패의 기억을 어느 정도 희석시키고도 남을 만큼 영화는 거대한 히말라야 설원과 빙벽을 배경으로 CG 가 극소화된 생생한 카메라 워크와 현장감을 자랑하며, 이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영화 전편 내내 팀을 이룬 배우와 감독, 스탭 간의 각고의 희생과 케미스트리에 기반했음을 인증해 낸다.


더구나 특정 배우만이 아닌 주조연을 초월한 다수의 출연진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딱 10년 전 범죄영화 <사생결단> 에서 이미 형사 조직 내 짝패로 합을 맞추었던 주연 황정민과 신예 정우와의 콤비네이션은 왠지 모를 익숙한 친근감마저 연상시킨다.
(물론 10년 전과 작금의 정우의 위상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간 만년 감초 역할에 충실했던 감독의 또 다른 페르소나, 김원해의 재발견이다. 호소력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사람이 없으면, 산이 무슨 의미가 있냐 !’ 는 절실하면서도 진한 일갈은 영화의 선연한 주제를 담아낸다. 시간이 문제였을 뿐, 언젠가는 꼭 빛을 발했을 이 배우의 두각은 확실히 이 영화의 소기의 소득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장단점의 명과 암을 분명히 한다.

우선 장점으로서, 실화에 기초한 드라마가 아주 강렬하다. 감독은 앞서 말했던 그의 기존 부문을 뛰어 넘어 드라마의 뜨거운 구현에 있어서도 남다른 자신감이 있음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동료 간의 끈끈한 동지애와 인간이라는 주제는 별다른 인물 간 갈등구조 없이 너무나 자연스레 초반의 유머와 버무러져 눈보라 속 절벽 위를 차라리 훈훈한 정서의 무대로 탈바꿈 시킨다.

동시에 영화가 보이는 현격한 단점으로서, 실화에 기초한 드라마가 아주 강렬하다. 정도를 벗어난 듯한 지나친 드라마는 늘어지는 신파조의 눈물을 강요하고 있어, 관객들로부터 늘 지적되어 왔던 제작자의 일관성 있는 생태적 한계를 이번에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단초를 제공한다. 

실화에 근거하였으되 드라마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연평해전> 류의 상투적이고 억지스런 눈물샘 자극 효과가 외려 부메랑으로 돌아오리라는 감지는 무척 아쉽다.

전래되는 말 중에 소위 ‘한국형’ 이라는 단어가 있다.

독자적인 자부심을 은연중에 부여하고픈 그 전가의 보도를 떠올릴 때마다 그럼에도 뭔가 (체구가 그새 커진 우리에게) 전형적으로 투미하고 양에 덜 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음을 동감하는 이들이라면, 이 산악영화에서는 그 한국형의 의미를 적어도 한 차원 이상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점만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20년도 훨씬 더 된 〈K2〉나 <얼라이브> 와 같은 최고봉보다 더 위압적인 봉우리의 비주얼과 훨씬 깎아지른 절벽의 드라마를 갖추진 못했을지언정.

그래도 지난 여름 <베테랑> 에 이어 현재 흥행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내부자들> 처럼, 현실에 기초한 사회고발성을 내세우나 결코 현실적이라고는 할 순 없는 ‘판타지’ 를 통한 정신승리에 지친 이 겨울의 관객들에게 순간적 감정의 정화는 다소 기대해 봄직하다.

단, 지나친 클리셰의 향연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철저히 보는 이의 몫이다.

확실히 1년 전 최강자, 황정민은 이 연말에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 여름 베테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혼자가 아닌, 정우와 김인권 그리고 김원해와의 동반 등정이라는 것이다.

·한양대학교 정치학 박사
·트리즈 뉴스 전문기자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