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2의 IMF'를 자초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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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2의 IMF'를 자초하는가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12.17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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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민 겁주는 청와대, 이해부터 구해야
내홍·분열 거듭하는 한심한 野, 반성·성찰 필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5법, 기업활력제고법 등 쟁점법안에 대한 국회 통과를 연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추진했던 금융개혁을 야당이 발목 잡은 사례를 들어, 정의화 국회의장이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직권상정을 결단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YS 가신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문민정부가 금융개혁과 노동개혁을 밀어붙였지만 야당의 격렬한 반대로 표류돼 IMF 위기를 맞았다"며 "지금 우리도 여러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 나라의 장래와 국민 행복을 위해 야당이 (박근혜 정권의) 4대 개혁에 협력해 줘야 한다"고 내세웠다.

박근혜 대통령도 "내년 우리 경제가 수출과 내수의 동시 침체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국회가 기업활력제고법, 일명 원샷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쟁점법안 처리가 지연되면,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쳐 1997년 IMF 사태 같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제2의 IMF 사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여당이 쟁점법안 처리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건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4대 부문 구조 개혁(공공·금융·노동·교육) 때문이다. 정부는 '4대 부문 개혁에 기반한 경제혁신과 대내외 불확실성 극복을 통한 경제 활력 강화 방침'을 2016년 경제정책방향으로 천명했다.

YS의 사례로 미뤄봤을 때, 이는 '미완의 개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민정부의 세계화·정보화 개혁은 분명 시의 적절했다. 하지만 정권 말기에 국정 동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개혁 동력 역시 잃게 됐다.

세간에서는 그 원인으로 한보사태, 측근비리 등을 꼽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우리 사회 전반에 변화와 개혁에 대한 철학과 이해가 결여돼 있었음에 주목한다.
 
YS와 함께 개혁 작업을 추진했던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YS는 세계화 시대에 맞는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정치권에는 변화와 개혁을 주도할 사상과 철학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 국민 일반의 이해도 많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2010년 '반응형 세계화에서 성찰의 세계화로'에서 "(문민정부의) 세계화는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 엘리트 중심의 일방적 세계화에 갇혀 있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치와 대화를 통한 세계화보다는 정부가 앞장서서 기획하고 집행하는 발전국가의 특성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었다"며 "미완으로 끝난 가장 큰 요인의 하나가 시민사회와의 소통의 결핍"이라고 분석했다.

'사상과 철학의 부재', '국민 이해 과정의 부재'가 YS 개혁이 미완의 성공에 그친 근본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기자는 박근혜 정권이 진정 4대 부문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한다면 YS의 개혁이 왜 '미완의 성공'에 그쳤고, 왜 IMF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와 함께 문민정부가 막을 내리게 됐는지 근원적 고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민 일반은 4대 부문 개혁에 대해 큰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동개혁에 대해서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개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두산인프라코어'가 20대 꽃다운 청춘들을 희망 퇴직시키고는 회사가 잘 돌아가지 않자, 한 달 비정규직으로 퇴직자들을 재채용한 사태를 목도하면 정부의 노동개혁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금융개혁은 서민들이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서금회(서강대 금융인 모임)'가 판을 치고 있다. 관치와 정치금융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금융 감독 쇄신을 외치지만, 현실에는 NH투자증권 간부의 40억대 횡령 사건과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교육개혁에 대한 믿음은 정부여당이 대통령 공약 사항인 누리과정(무상보육) 예산을 전액 편성하지 않으면서 크게 꺾였다. 국정교과서 역시 국민적 반발을 샀다.

공공개혁 부문은 "대한민국이 난리 났네 할 정도로 공공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언처럼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공기업 낙하산 논란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여당은 '제2의 IMF'를 들먹이면서 국회를 압박하고, 국민들에게 겁을 줄 때가 아니다. 믿음을 줘야 한다.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당위성을 설명해야 한다. 이해를 구해야 한다.

물론 '제2의 IMF 사태'를 시사한 게 허언은 아니다. IMF는 지난 11일 "한국의 가계부채가 이자율 상승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미국 금리 인상으로 우리나라가 경제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KDI(한국개발연구원)도 지난 9일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위험성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잠재적 경제위기 요인을 '쟁점법안 처리 지연'이 아닌 '가계부채'로 읽고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여당의 주장과는 차이가 크다.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심전환대출' 정책을 내세웠지만, 되레 서민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역시 국가 정책에 대한 '소통의 결핍'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문민정부의 사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없는 개혁은 한계가 있다. 국민 없이는 개혁동력도 없다.

야당도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내홍과 분열을 거듭하면서 밥그릇 싸움에만 열중하고,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야당이 건강하지 않으면 정치가 건강할 수 없다.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이 같은 작태를 보이다가는 외환위기보다 더 큰 국가적 위기와 직면할 수 있음을. 과연 누가 '제2의 IMF'를 자초하는가.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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