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③]노후 새로운 대안, 동남아 은퇴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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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③]노후 새로운 대안, 동남아 은퇴이민
  • 박시형 기자
  • 승인 2015.12.21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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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영어권 국가 인기
고립감, 치안 등 단점 있어 최소 3개월 경험 필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

‘이민’이란 단어는 새로운 삶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196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이역만리 새로운 땅을 찾은 교포 1세대부터 최근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이민자까지 모두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리나라를 떠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삶의 질이 화두로 떠오르며 새로운 형태의 이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팍팍한 월급쟁이라도 동남아에서는 왕처럼 지낼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은퇴이민’이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다. 당장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있지만 은퇴만 하면 여유로운 삶을 찾을 수 있다는 환상을 머릿속 깊숙하게 각인시켰다.

은퇴자들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연금이나 보험 등 과거 벌어놓은 재산을 헐어서 살아야 한다. 자산은 제한되는데 얼마나 더 살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보수적인 지출을 하게 된다.

미국이나 캐나다 은퇴이민이 없는 것도 진입장벽이 워낙 높기도 하지만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지내는 것보다 지출이 더 많아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다.

반면 동남아시아 은퇴이민은 인건비 등 물가가 저렴해 자산에 여유가 생긴다. 월 250만 원의 연금을 받는다면 한국에서는 평범한 생활 수준이지만 필리핀 등에서는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고용할 수 있다.

필리핀 이민 알선업체 관계자는 “한 달에 250만 원 정도의 생활비면 가정부와 운전기사 등을 고요하고 골프 등 여가생활을 누리며 살 수 있어 은퇴이민 등을 문의하는 수요도 꾸준하다”고 말했다.

▲ 많은 직장인들이 은퇴이민을 고려하고 있다. ⓒ뉴시스

동남아, 간단한 이민조건과 저렴한 물가에 인기 높아

동남아 ‘은퇴이민’ 중에도 특히 필리핀이 인기가 많다. 영어 문화권이라 의사소통에 큰 불편함이 없고, 교민들이 많아 한국산 제품을 구하기 쉽다. 그렇다 보니 은퇴이민자 중에는 손주들을 맡아 기르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필리핀은 정부 차원에서 1987년부터 은퇴청(PRA)을 설립하고 은퇴이민자를 적극 유치 중이다. 조건도 까다롭지 않아 만 50세 이상 외국인 중 연금을 받는 사람은 미화 1만 달러(1180만 원), 연금이 없으면 2만 달러(2360만 원)를 필리핀 개발은행에 예치하면 특별영주 은퇴 비자(SRRV)가 발급된다. 3인 가족 기준이라 배우자와 미성년자 자녀 한 명이 함께 갈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미국인이 가고 싶어하는 은퇴이민국 4위에 꼽혔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2001년부터 은퇴비자 프로그램(MM2H, Malaysia My 2nd Home)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예치금이 만50세 이상일 경우 부부 합산 15만 링깃(약 4100만 원), 50세 미만은 30만 링깃(약 8200만 원)으로 높은 편이다. 또 한 달에 1만 링깃(약 270만 원) 이상의 정기 수입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주거비가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합리적이고 주변 국가를 쉽게 여행할 수 있는 다는 장점이 있어 은퇴이민 희망자들의 관심을 받는다.

태국은 만 50세 이상일 경우 80만 바트(2600만 원)나 미화 2만5000달러(약 2900만 원)을 태국 은행에 예치하면 ‘롱스테이 프로젝트’라는 1년짜리 장기비자를 발급해준다. 피지는 만 45세 이상 외국인이 3년 이내 10만 피지달러(약 5500만 원)을 피지은행에 예치하면 ‘거주 허가’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 필리핀은 국가차원에서 은퇴이민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뉴시스

은퇴이민은 여행 아닌 생활
사전경험도 선택 아닌 필수

은퇴이민이 삶의 질은 높일 수 있지만 주의할 점도 분명히 있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돈’이다. 취업이나 사업 등으로 돈을 벌 수 없어 반드시 연금 같은 주 수입원이 확보 돼야한다.

또 현지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해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실제로 이민을 알선한 브로커로부터 부풀린 비용을 청구받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받는 등 사기를 당해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혼자 떨어져 있다는 고립감도 싸워야 할 문제다. 교포사회가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커뮤니티가 한정돼있고 우리나라에서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여행하거나 가족과 친구를 만나러 다니지 못한다. 이를 이겨내지 못하면 여유를 찾아 떠났던 은퇴이민이 무인도에 갇혀버린 셈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치안 문제도 지적된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한국 은퇴이민자들이 현금을 많이 소유했다는 게 아려져 범죄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는 13명, 2014년 10명 등 매년 10여 명의 한국인이 피살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동남아 현지 교민들은 은퇴이민을 결정하기 이전에 동반자와 함께 적어도 3개월은 살아보라고 권한다. 최소한 현지 물가나 상황에 대해서는 파악한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은퇴이민은 여행이 아니라 생활인데 현지 조사를 목적으로 1~2주 잠깐 다녀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가족까지 동반한다면 현지인들과 부딪치면서 살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박헌화 씨는 “이민을 떠나 얼마나 지낼지 모르는데 1~2주 사는 것으로 파악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3개월 체제비로 1000만 원을 들여 전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면 훨씬 이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퇴이민이라 하더라도 한국과 다름없이 지낸다면 오히려 비싼 물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 제품을 최소화하고 현지 상품들을 이용해 생활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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