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막말 정쟁(政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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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막말 정쟁(政爭)' 시대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5.12.25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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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016년, 유쾌한 '촌철살인' 정치를 기다리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오지혜 기자)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 뉴시스

정치부 기자들이 가장 바쁜 시간대는 언제일까. 평일 오전이다. 국회에서 정치인들의 '말뭉치'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정치권 판도를 흔드는 말뭉치의 '진짜'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런데 요새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막말'과 '돌직구'가 유행하다보니 딱히 분석할 거리가 없다.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계산'된 게 없는 탓이다.

여의도는 매일 이른 아침부터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막말로 '분노 진원지'가 된다. 그리고 그 파장은 저녁 뉴스가 끝날 때까지 대한민국 곳곳에 스며든다. 그야말로 '막말 정쟁(政爭)' 시대다.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 2015년 정치권에 꼭 어울리는 속담이다.

여야간 갈등은 서로 다른 신념에 따라 정치행보를 걷다 보면 당연히 수반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독설이 넘쳤다.

노동5법을 포함한 쟁점법안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특정 사안이 여론의 큰 관심을 끌면서 처리 주체인 정치인들간 말싸움이 격렬해진 탓이다. 여기에는 여야가 다를 바 없다. (관련 기사: 말 바꾸는 정치인, 막말하는 정치권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155)

"노조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불법 파업만 하지 않았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었을 것."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11월 27일 노동시장 개편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결혼을 안 해 봤고, 출산을 안 해 봤고, 또 애 안 키워봤고, 이력서 한 번 안 써봤고…."
(새정치민주연합 이용득 최고위원, 2015년 12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의 저출산 해결책을 비판하면서)

"야당이 '화적떼'는 아니지 않느냐."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10월 26일 국정화 TF 노출시킨 야당을 비판하면서)

"그냥 친박이 아니라 '친박 실성파'라고 부르고 싶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10월 29일 화적떼 발언을 한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판하면서)

정치권의 언쟁이 이렇게 저급하게 된 탓은 그 목표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자극'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대방과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생전 다시 볼 일은 생각도 않는다는 듯 살벌한 말만 주고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일부러 '센' 표현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단기적인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방향성 없는 자극적인 말싸움에 사회적 피로감만 쌓이고 있는 모양새다. 

해외에서는 유쾌한 촌철살인과 재치있는 응수가 정치인의 큰 경쟁력이다.

미국은 현재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다. 공화당에서는 '막말'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가 선두주자에 섰다.

트럼프는 지난 7월 아이오와 지역 당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선두로 나서자 비난을 쏟아냈다.

트럼프가 그를 '약간 미친 사람(a little bit of a maniac)'이라고 매도하자, 쿠루즈는 1980년대 영화 <플래시댄스> OST '마니아(maniac)'을 자기 트위터에 올려 재치있게 대응했다.

크루즈의 이같은 여유있는 태도는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지지도로 이어졌다.

반면, 트럼프에 대한 젊은 유권자, 소수계·이민자·무당파 등의 혐오감은 커지고 있다

칼럼니스트 제프리 골드버그는 "도널드 트럼프는 이제 국가 안보의 실제적 위협"이라면서 "그는 미국을 악마로 묘사하려는 지하디스트들의 캠페인에 총알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유례없는 독설로 여론의 주목은 끌었을지 몰라도, 단기적인 계산으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인물은 대통령감으로는 '자격미달'이라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트럼프의 공격에 맞선 적이 있었다.

지난 2011년, 트럼프가 자신의 출생 의혹을 제기하며 증명서 공개를 집요하게 요구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는 이슈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미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줬다"고 비꼬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불편한 공격에 막말이 아닌, 재치있는 촌철살인으로 맞수를 놓은 것이다.

국내 정치권의 저급한 말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며 "국민이 병신인가"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새누리당은 즉시 "이 원내대표의 막말은 배냇병이냐"며 맞불을 놨다. 김진태 의원은 SNS를 통해 "이 원내대표의 '막말조절장애'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며 "입원가료를 권한다"고 비난했다.

정치의 목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잡아먹을 듯한 강압적인 언어와 태도는 순간에는 '승리'할지 몰라도 최종 목표인 설득에는 실패한다.

내년 여의도 정치권에는 막말이 아닌 재치있는 촌철살인 말뭉치가 쏟아지길 기대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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