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쟁점법안 협상 의지 있나
스크롤 이동 상태바
정부·여당, 쟁점법안 협상 의지 있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5.12.28 15: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점점 커지는 의구심…'진정성 있는 절실함‘ 보여주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 원유철 원내대표 ⓒ 뉴시스

어렸을 적, 동생과 심하게 다툰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친구께서 휴대용 CD플레이어를 선물로 주셨는데, 그걸 서로 가지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토론하는 연습’이라며 둘이 잘 이야기해서 주인을 결정하라고 말씀하셨고, 이런저런 제안을 던진 끝에 저는 동생이 탐내던 장난감과 ‘심부름 5회권’을 주고 CD플레이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일 “이런 법안(쟁점법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서, 내년의 각종 악재들을 이겨내기 위한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요즘은 걱정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쟁점법안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쟁점법안이 그토록 절실한 법안이라면, 정부여당은 어떻게든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CD플레이어를 갖기 위해 동생에게 이것도 제시하고 저것도 제안했던 것처럼, ‘아쉬운 쪽’이 상대를 좀 더 존중하면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어낼 것은 얻어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정부여당 입장에서 쟁점법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과시켜야 하는 법안이니까요.

하지만 정부여당의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여당이 진정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제일 먼저 협상 파트너인 야당을 존중해야 했습니다. 야당과의 협상 외에는 합법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야당을 어르고 달래기보다 맹비난하는 데 집중했고, 야당이 반발하자 ‘현재 경제 상황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며 정의화 국회의장을 압박했습니다. 마치 무작정 CD플레이어를 내놓으라며 동생을 윽박지르고, 마음대로 안 되자 부모님께 뺏어달라고 억지를 쓰는 모양새입니다.

쟁점법안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야당이 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야당에서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중 의료 부문을 제외하면 합의가 가능하다는 입장까지 후퇴했습니다.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도 철강·조선·석유화학 등 현재 어려운 분야에 한해 법 적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절충안을 내놓았습니다. 노동5법도 파견법과 기간제법을 제외하고 분리 처리하다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여당은 이 모든 절충안을 거부했습니다. 도대체 어느 쪽이 더 법안 처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러다 보니 ‘정부여당이 쟁점법안을 통과시키고픈 의지가 있느냐’는 말이 나옵니다. 현재 경제 상황은 법안 몇 개를 통과시킨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외부적으로는 전 세계적인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내부적으로는 단기간에 풀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겹쳐있습니다. 즉, 현실적으로 경제 위기가 우리나라만 비껴갈 가능성이 낮은 만큼, 야당에 ‘발목 잡는 야당’의 프레임을 씌워 내년 총선을 치르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쟁점법안 협상에서 나타나는 여당의 무성의한 태도는 “야당이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아서 경제가 이 모양이다”라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의미지요.

실제로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28일 오전 KBS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가 야당 때문에 경제활성화를 못했다고 말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쟁점법안 협상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쟁점법안을 실제로 통과시키려는 의지 없이, 경제 정책 실패를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전략이 아닌지 의심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쟁점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정부여당의 의지 가득한 목소리가 진실인지, ‘발목 잡는 야당’의 프레임을 만들려 하는 전략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20대 신입사원 책상 위에 명예퇴직 신청서가 놓이고, ‘헬조선’이라는 탄식이 거리를 메우는 이때 쟁점법안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 정부여당에게 필요한 것은 CD플레이어를 갖기 위해 모든 설득 방법을 동원했던 열 살 꼬마의 ‘진정성 있는 절실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