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이해 못 하는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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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이해 못 하는 나라, 대한민국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1.05 09: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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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피해자는 안중에 없는' 한일간 위안부 타결 합의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오지혜 기자)

새해가 밝자 정치권에서는 신년사가 쏟아졌다. 한해를 여는 다짐에는 '화합'과 '혁신' 등 희망찬 단어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시작이 '리셋'은 아니다. 모든 현재는 과거와 이어져 있다. 기자에게 올해의 시작보다 지난해의 마무리가 눈에 밟히는 이유다.

▲ 지난 29일 정기 수요집회 ⓒ 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지난 달 29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는 당시 집회에서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게 맞는지 묻는 전화가 오는데 어처구니가 없다"면서 "위안부를 만든 일본은 아직도 그 죄를 모르고 있는데 그냥 둬서 되겠느냐"고 울분을 표했다. 천여 명(경찰 측 추산 700명)의 시민들도 함께 눈물을 훔쳤다.

일부 학생들은 지난 31일 일본대사관이 있는 건물에 진입, '한일 협상을 폐기하라'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 뒤 석방됐다.

국민 여론 역시 이번 합의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30일 전국 19세 이상 50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한일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잘못했다'는 의견이 50.7%로 집계됐다. 반면, '이번 합의가 잘됐다'는 응답은 43.2%에 그쳤다.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서 ±4.4%포인트) 

▲ 지난 29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을 찾은 조태열 외교부1차관 ⓒ 뉴시스

위안부 협상 타결에 분노하는 건 우리 정부가 국민의 한 사람인 피해자들의 입장을 진정으로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회담 진행 절차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대화 없이 협상에 임한 것이다.

외교부 차관 두 명이 회담 다음 날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았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할머니들은 "당신 어느 나라 소속이냐, 일본과 이런 협상을 한다고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며 합의 내용에 분개했다.

외교부 차관이 '연휴 기간'을 이유로 변명을 늘어놨지만, 이용수 할머니는 "연휴 찾고 노는 날 찾고 쉬는 날 찾고 일하는 날 찾고"라며 기 막혀 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이에 대해 "한일 외교회담은 피해 당사자의 요구를 확인한 뒤 협상 대상자의 양보 수준을 정하는 사전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국민 다수의 기본권리와 관련된 협상을 정부 혼자서 한 것은 월권이며, 결과적으로 법적 효력이 없는 잘못된 협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절차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합의 내용에서도 이제까지 피해 할머니들이 요구해온 것을 제대로 충족시킬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일본 측은 사죄 마음을 표명하기로 했지만,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아베 신조 총리의 사과를 대독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피해 할머니들은 요구해온 것은 아베 총리의 공식 사과였다.  

양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재단설립을 약속했지만 출자금 10억 엔(한화 97억5500만 원 상당)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최초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만 200명이 넘고 상속인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출연 규모가 1000억 원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협상에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이라는 전제도 달렸다. 사실상 더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는 일본 측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다.

해방 이후 70년 동안 악몽 속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다려온 피해자들은 정작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위안부 문제는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나게 생겼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외교적 성과보다 국민을 지키는 게 먼저였어야 하는 우리 정부에 있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청와대도 이를 의식한 듯 지난 31일 대국민 메시지를 내놨다.

청와대는 "정부가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 '무효'와 '수용 불가'만 주장한다면, 앞으로 어떤 정부도 이런 까다로운 문제에는 손을 놓게 될 것"이라며 "민간단체나 일부 반대하시는 분들이 주장하는 대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잘못 협상한 것 같이 여론을 조성해나가는 것은 결코 얼마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언급한 '정부가 잘못 협상한 것 같이 여론을 조성해나가는 것'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식 입장임을 고려하면 정부는 여전히 피해자의 입장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치발전연구소 강상호 대표는 이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한미일 3각동맹이 중요한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를 언제까지고 끌 수는 없지만 이렇게 풀어서는  안된다"면서 "정부가 최소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보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특히 "합의문의 워딩이 얼마나 중요한데 '최종의' '불가역적인'이라는 단어를 국민의 동의도 없이 쓴 것은 졸속처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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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입장 2016-01-08 12:32:59
누구의 입장에서 현상을 바라볼 것인가? 그게 빠지면 뼈밖에 남지 않는 거죠.
피해자와 가해자, 국외자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피해자 의견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