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금수저 논란, 사람들이 신분 고착화 알아차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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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금수저 논란, 사람들이 신분 고착화 알아차린 것”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1.11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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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희생 보여야 할 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 시사오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탄식이 터져 나온다. 또, 신분제 사회가 아님에도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한 대기업은 20대 신입사원에게조차 명예퇴직 신청서를 내밀었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그들만의 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른다. 이러다 보니 절망이 분노로 바뀌어가는 분위기다.

<뉴스바로>와 <시사오늘>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통하는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으로부터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과학기술처 장관과 서울시립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가전략포럼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진현 이사장은 현 상황을 ‘혁명 전야’로 진단했다. 인터뷰는 6일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김 이사장은 양극화 문제부터 얘기했다.

“지금 양극화와 관련한 여러 수치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통계적 양극화  문제를 이미 넘어섰다고 봅니다. 진짜 문제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봉쇄됐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가족주의에 근대화가 맞물리면서 ‘가족 이기주의’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회 전체에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하니까 기업체는 2세, 3세, 나아가 며느리에게까지 재산을 물려주고, 공익법인인 학교에서도 가족들끼리 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나 언론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양극화가 고착화될 것으로 봅니까.

“근대화 과정에서 성공한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면서 신흥 귀족이 형성돼버렸습니다. 재계는 물론, 법조계·언론계·문화예술계·관료 등 상위층이 뭉쳐서 고착화를 이루게 됐습니다. 지금처럼 가면 점점 그 벽은 더 공고화될 것입니다. 금수저 논란이 일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런 고착화를 알아차린 것입니다. 민주주의니까 평등하게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 시스템 사회다원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걸 인식한 것이죠. 혁명적인 마그마가 끓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혁명 전야입니다.”

-혁명이라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요. 혁명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한가요.

“폭력혁명이라는 불행하고 파멸적인 현상을 예방하려면 각계의 의식 있고 통찰력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 문제를 정확히 봐야합니다. 그리고 기득권자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참신하고 개혁 의지를 갖춘 사람들을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폭력혁명을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안 되면 들끓고 있는 혁명적 마그마를 현재의 우리 사회 시스템이 수용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면 예전에 이한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표현한 것처럼 ‘고약한 일’(신동아 2015년 12월호 인터뷰)이 생기는 거지요.”

-아무리 그래도 혁명이라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큰 변화는 전부 혁명으로 촉발됐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1950년 6·25, 1960년 4·19, 1961년 5·16, 1997년 IMF까지 사회 구조변화 체제개혁을 이끈 건 전부 외부의 힘이었습니다. 내부에서 자력, 자발적으로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간의 발전을 기반으로 정치가 제대로 해야 합니다. 정치가 현재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변화의 에너지를 잘 승화시키지 못하면 ‘고약한 일’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혁명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폭력혁명’ 즉 물리적 파괴의 혁명이고 또 하나는 ‘선거혁명’입니다. 군사혁명, 노동혁명, 시민혁명 같은 물리적 봉기가 아니라 성숙한 시민, NGO, 각계 지도자, 정치리더십이 손잡고 폭력혁명을 예방하고 평화적 선거혁명을 해야 한다는데 결론이 있습니다.”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변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북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핵심은 복지인데, 복지란 곧 재정입니다. 재정을 확보하려면 세율을 높여야 하고요. 그런데 북유럽 국가에서는 최고 세율이 60%를 넘어가는데도 국민들의 저항이 없고 경제 성장을 합니다. 북유럽에서 이게 가능한 이유는 우선 정치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월급이 없어요. 의회 회기 중에는 시골에서 올라오는 국회의원들에게 왕복 여비와 호텔비, 일당만 지급하고 스톡홀름에 사는 국회의원들에게는 아예 교통비를 지급 안 합니다. 회기도 딱 정해져 있고, 일자별로 세밀하게 계획이 다 세워져 있습니다. 또 국회 대리의원이라는 게 있어서 의원 부재 시에는 100% 권한을 행사케 하니까 의원정족수가 부족해서 상임위원회건 본회의건 회의를 못 여는 일도 없습니다. 선거구 조정 매뉴얼도 있어서 특정 지역에서 인구가 늘거나 줄면 자동적으로 선거구가 조정되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요. 이러니까 정치에 대한 신뢰가 높고, 높은 세율에도 저항이 적은 겁니다. 스웨덴 신뢰도에서 국세청이 3등입니다. 군대나 의회보다 높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은 나라가 단순히 제도만 바꾼다고, 돈 더 푼다고 북유럽 국가처럼 되는 게 아닙니다." 

▲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 시사오늘

김 이사장은 스웨덴 사회에 스며있는 종교에 대해서도 말했다.

“스웨덴과 북유럽은 ‘루터교’가 퍼져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감을 굉장히 강조하는 교파입니다. 그러니까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복지국가 토대가 닦여 있는 거지요. 스웨덴 복지는 단순히 경제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문화·정치 등의 종합적 산물입니다.”

-김 이사장은 최근 여러 강연에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의 상당 부분은 ‘도착적 근대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도착적 근대화’라는 건 무엇인가요.

“모든 나라의 근대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시화·개인주의화·소가족화·교육 확대 등입니다.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면 중산층이 늘어나고 시민사회로 발전하면서 민주주의가 달성됩니다. 이 과정은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다 똑같아요. 그런데 한국은 그 속도가 유례없이 빨랐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이렇게 빠르게 도시화가 된 나라가 없습니다. 이렇게 기초를 무시하고 빠르게 근대화를 추진하다 보니까 부작용이 생겼어요. 공자가 부러워했다는 유교 국가 대한민국이 이혼율 1위 낙태율 1위 국가가 됐고, 부모님이 주신 털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던 나라가 성형수술 1위 국가가 됐습니다. 급격히 개인주의화가 되면서 자살률도 급등했고, 송사도 크게 늘었습니다. 위증죄·사기죄, 고소·고발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100배 이상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습니다. 판사들이 그 많은 사건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요. 이건 정상적인 근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악성변종인 거지요.”

-그러면 도착적 근대화를 종식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말로는 안 됩니다. 희생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주영이나 이병철 같은 성공의 모범이 아니라 희생의 모범이 나와야 해요. 냉정하게 말하면 김구와 장준하는 실패한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성공한 정치인인 이승만이나 박정희보다 실패한 정치인인 김구와 장준하를 더 존경할까요. 여기에 해법이 있는 겁니다. 김구와 장준하는 희생의 모범을 보여줬습니다. 이제는 성공한 사람들이 희생을 해줘야 합니다. 도착적 근대화 종식은 그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희생을 보여야 합니다.”

-도착적 근대화의 결과로 우리 사회가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요.

“도착적 근대화의 주류 세력이 과거 행적을 절실히 참회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를 정리하고 극복하는 길이 열립니다. 세월호 사건, 성완종 사건, 메르스 사태 등을 겪고도 변화의 동력이 붙지 않은 것은 주류의 참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회와 반성, 사면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씻김굿을 하고 나면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가 생깁니다. 정치가 부활하는 겁니다. 그러면 가족이기주의를 넘어 공동선에 충실하자, 사회공동체, 국가공동체를 위해 희생하자는 호소가 진정성을 갖게 되고, 대통합이 가능해집니다. 국론만 통일할 수 있으면 우리 국민들은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 힘이 있습니다. 지구촌의 새 질서 새 문명 새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날 오전 북한은 제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2000년 8월 남한 언론사 사장단 방북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기도 했던 김 이사장에게 북한 문제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오전에 북한의 핵실험이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요.

“대한민국과 미국, 중국 등 소위 문명세계의 끊임없는 실패라고 봅니다. 특히 대한민국 정치권이 현실정치에 매몰돼 통일이라는 명제를 사유화하고 작은 정치에 소모한 결과입니다. 또, 북한 3대 세습정권이라고 하는 문명사적인 특수한 체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북한은 나라가 아닙니다. 백성도 없고 국가도 없습니다. 김일성 왕조의 가족 부족체 신정체재에 불과합니다.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는 백성도 죽이고 국제협약도 위반하는데 그게 지금까지 성공했어요.”

-우리가 북한을 관리하는 데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일제 식민통치를 겪었고 미국과 소련 같은 소위 서양 패권 국가들의 냉전 싸움에 희생됐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갈증이 더 심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끼리 뭉치자 하는 민족주의를 강조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은 민족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가문권력 유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확실히 인식하지 못한 것이 북한 관리를 제대로 못한 주요 이유입니다. 북한은 우리가 민족주의 갈증이 심하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해 왔습니다. 남한에게 돈만을 요구해온 게 대표적 예입니다.” 

▲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 시사오늘

-그렇다면 앞으로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북한은 생명 존중과 같은 최소한의 기준조차 없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대하는 방식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정도의 자비를 갖고 기다리거나, 단호하게 응징하는 것입니다. 이런 각오를 보여야 문제가 풀리지 지금처럼 뜨뜻미지근하게 가면 안 풀립니다.  우리가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북한의 불쌍한 동포들을 구제해야겠다는 휴머니즘 때문이든 자유주의·시장주의 같은 이념 때문이든 북한을 제압해야겠다는 확고한 각오가 있으면 국제 사회에서도 우리를 지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입장이 통일돼 있지 않습니다. 당장 미국 학자들도 ‘젊은이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나 재벌 등 기득권층에는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도대체 미국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느냐. 진짜 통일 의지가 있으면 명확한 계획과 안을 갖고 와라’라고 말합니다.”

김 이사장은 이 대목에서 통일을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일은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독일이 단순히 동방 정책이나 교육을 통해 통일이 된 게 아닙니다. 독일 통일 당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독일 통일은 절대 안 된다’고 했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급히 동독을 방문해 군사원조 줄테니 ‘주권을 계속 유지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서독은 미국 대통령 아버지 부시(조지 부시)를 설득해서 영국과 프랑스의 반대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끌어 냈습니다. 외교의 승리인 겁니다. 우리도 그런 외교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실력을 갖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사분오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분열된 상태에서는 국제 사회의 지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데, 북한 문제와 통일 문제를 국내 정치 수단으로 활용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겁니다.”

-북한 동포들 지원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지요.

“그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북한의 체제나 이념과 관계없는 순수한 자연 생명들의 인권과 생명, 평화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민간 차원이건 종교 차원이건 그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평소 궁금했던 장준하 선생에 대해 물어봤다.

-앞에서 장준하 선생 얘기를 했는데, 사망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의학적인 건 모르겠지만 당시 정황으로 봤을 때는 타살로 보입니다. 제가 동아방송 보도국장을 할 때 그 사건이 났고 그 전부터 저는 장준하 선생을 잘 알았습니다. 장준하 선생이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서 정보를 요구하면 제가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장 선생 사고가 나고 한 일선 사건기자에게 아무도 모르게 보름 정도 취재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열흘 정도 지나니까 중앙정보부에서 ‘왜 취재를 하느냐’고 압력이 들어왔지요. 그 취재 결과가 6·29민주화 이후 많이 활용됐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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