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소통' 타령, 책임 회피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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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소통' 타령, 책임 회피는 아닌가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1.12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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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민에게 책임 떠넘기지 말고 책임 다하는 정당 되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이 제20대 국회의원 총선 공약을 공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해 최종 선정된 공약을 더민주당이 구매, 총선 핵심공약으로 내세운다는 것입니다. 앞서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오픈프라이머리를 채택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양당의 이런 행보, 뭔가 이상합니다. 기본적으로 정당은 특정한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입니다. 즉, 정당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공천’과 ‘공약’을 통해 선보여야 하고, 국민은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인물과 정책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의 매커니즘입니다.

가령, 시장주의를 제일 가치로 하는 정당이라면 그에 찬동하는 인사를 공천해 국민의 심판을 받고, 그 반대의 입장을 가진 정당이라면 시장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공약을 만들어 국민의 선택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며 의무입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공천을 포기하고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말하고, 더민주당은 아예 공약을 국민들에게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고 나중에 검사를 받으라고 했더니, 도리어 선생님에게 숙제를 해달라고 조르는 꼴입니다. 정당의 역할과 의무를 국민에게 떠맡기면서 ‘소통’이라는 포장지만 씌워놓은 셈이지요.

물론 양당의 입장도 이해는 됩니다. 스스로 정당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무리수’를 던지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이든 더민주당이든, 가치와 철학이 부재한 가운데 지역을 중심으로 ‘나눠먹기’를 하다 보니 차별성을 둘 수 있는 영역이 거의 남지 않은 것입니다. 똑같은 지역기반의 중도보수 양당이 ‘표 끌어들이기’를 하니 정책 싸움이 되지 않지요. 자연히 공천과 공약 수립 과정이 포퓰리즘적으로 흘러가고, 인기를 모을 수 있는 방법론에 천착하게 됩니다. 오픈프라이머리와 총선공약 공모 역시 이런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결코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정당은 ‘대표’와 ‘책임’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합니다. 선거를 통해 대표성을 획득, 정부를 구성하고, 임기가 끝난 뒤 선거를 통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당이 자신들의 의무를 국민에게 전가시키면 책임성이 제거됩니다. 후보도 정책도 국민이 선택했으니 책임을 질 필요가 없고, 또다시 정체성 없는 거대 양당이 가치와 철학 없이 ‘이상한’ 방식으로 표를 기대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 속에서 정치 개혁은 요원합니다.

저는 우리 정치 개혁은 정당 개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당 개혁은 정당이 기본으로 돌아가 책임을 다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소통’이라는 미명하에 국민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고, 자신들의 가치와 철학을 공개하고 국민을 설득해 선거에 나서는 당당한 정당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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