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문국현과 함께 할 수 없어 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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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문국현과 함께 할 수 없어 탈당”
  • 정세운 기자
  • 승인 2009.04.19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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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실험자 김영춘 전 의원

김영춘 전 의원은 원외 인사다.
김 전 의원이 원내 인사로 있을 때 보여줬던 8년간의 정치행보는 ‘정치실험’에 가까웠다. 정치입문 과정부터 그의 이력을 더듬어 보면 왜 ‘정치실험’이라고 하지는 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그래서인지 김 전 의원은 아직까지도 세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김 전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386 운동권 출신 의원들과는 좀 다른 길을 걸었다.
 

▲김영춘 의원은 원내 인사로 있을 때 보여줬던 정치행보는 거의 '정치실험'에 가까웠다 ⓒ시사오늘 권희정

끝없는 정치실험자 ‘김영춘’
 
87년 김덕룡(DR) 의원의 추천을 받아 YS가 이끄는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실 비서로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정치사에 첫 대통령을 만든 ‘상도동 사단’의 주역이 돼 ,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런 정치 입문과정으로 인해, 그는 확실한 자신의 보스가 있었다. 그의 보스는 DR이었다.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과 함께 DR의 ‘오른팔’ 혹은 ‘왼팔’로 불렸다.

김 전 의원은 2003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보스를 버렸다.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의 탈당시점은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받기 이전 일이다.
그의 지역구는 서울 광진 갑구다. ‘한나라당’ 간판 없이는 총선에서 승리가 힘들어 보였다. 때문에 그의 탈당을 놓고 ‘왜’라는 의문부호가 따랐다. 그는 탈당을 선택함으로써 당선을 가능케 할 거대야당의 꼬리표를 떼버린 것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한 그의 첫 번째 ‘정치실험’이었다.
 
이부영 이우재 김부겸 안영근 등과 함께 동반 탈당해 한때 이들은 ‘독수리 5형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의 선택은 이들이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김 전 의원을 제외한 이들은 한나라당 내 계파나 계보가 없어 탈당에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그렇지 못하다. 확실한 자신의 ‘보스’와 ‘계파’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사에서 확실한 계보를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 그에 대한 기득권을 버리고 탈당한 예는 거의 없다.

아무튼 그의 첫 번째 정치실험은 성공리에 끝냈다.
그가 선택하고 만든 열린우리당 구성원의 주류는 호남인맥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당내에서 ‘홀로서기’가 불가능하다는 평가였다. 때문에 그가 열린우리당 최대주주였던 정동영 의장 당시,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이력 때문에 ‘정동영 사람’으로 분류됐다.
2006년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김 전 의원은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당 의장에 도전했다.

정동영 전 장관은 전대를 앞두고 김 전 의원에게 ‘SOS'를 보냈다. 정 전 장관은 “도와 달라”며 김 전 의원에게 부탁했다.
김 전 의원은 거절했다. ‘떨어지려고 작정했냐’는 물음에 “힘센 사람잡고 지도부에 입성한 들 무슨 소리를 낼 수 있겠냐. 이건 내가 말하는 40대 기수론이 아니다”고 역설했다.
그는 전당대회에서도 홀로서기를 실행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다른 40대 주자들이 합종연횡의 틀을 짜 표를 늘리려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는 결국 8명 중 7위로 낙선했다. 그의 두 번째 정치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김 전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 캠프’로 갔다. 세 번째 정치실험을 감행했다. ‘김민석 학습효과'로 인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문국현과 함께 새로운 정치마당을 열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실패였다.
필자가 인터뷰 당사자로 김 전 의원을 섭외한 이유도 ‘과연 그의 정치실험은 계속되고 있느냐’를 묻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김 전 의원과의 인터뷰는 4월10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한국문화재단 빌딩에서 이뤄졌다.
 
▲김 전 의원은 창조한국당에 입당한 것과 관련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열린우리당은 실패한 정당”

-최근 근황이 궁금합니다.

“요즘 자신을 수양하는 공부, 우리사회를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 것인지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공부, 다시 말해 정책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없습니다.”
18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김 전 의원은 구체적인 정치일정을 잡아놓고 있지 않은 듯했다.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 캠프로 간 이유가 뭡니까.

“내가 한나라당에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고 하던 그런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도 스스로에게 ‘과연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가?’라고 자문자답을 했습니다.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기 위해서 계속 정치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정치인으로 몸담은 이상 우리나라 정치를 한 단계 선진화 시키고 업그레이드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한나라당을 좋은 보수정당으로 만드는 작업이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 내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내부에서는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해 탈당을 한 것입니다.”

-김 전 의원이 생각하는 정치선진화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극좌적인 정당이나, 극우적인 정당이 주류를 차지하는 것은 후진적인 정치입니다. 극우나 극좌들은 양극단의 끝에서 소수정당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모르겠으나, 그 이상의 과반역할을 한다면 좋은 나라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믿음입니다.
중도 보수정당과 중도 진보정당, 이 중도세력들이 보수와 진보로 정책경쟁을 하는 게 건강한 정치이고, 그 양대 세력이 주도권 경쟁을 해야 선진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이유가 김 전 의원이 생각하는 정치에 부합되지 않아서이겠습니다.

“10년정도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좋은 보수정당으로 스스로 자기정화 해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나라당 대 민주당, 영남 대 호남 등 대립구도가 깔려있는 이상한 구도였습니다. 이것을 깨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열린우리당 같은 형태의 정당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나서서 지역정치를 깬다면 한나라당도 비로소 영남 대 호남, 이 구도를 벗어나서 스스로 온건하고 중도적인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스스로는 변하지 못하되 다른 외부적인 자극과 도전이 생기면 스스로 탈바꿈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높아질 때는 그런 변화의 조짐이 생겼습니다. 한나라당을 나와서 나름대로 도전을 해보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도 지내보고 했는데, ‘전단(내가 생각하는 정치구도를 깨고 새로운 정치구조를 짜보자는 의미에서의 단서)’을 만들어 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그 구조를 더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은 실패한 정당입니까.

“나는 실패했다고 봅니다.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원인은 두 가지 입니다. 열린우리당 스스로가 정체성이 결여돼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다 알다시피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땔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5년도 철저히 실패한 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하는 선상에서 특히, 집권당이고 집권세력이라면 지역주의를 극복한다는 것은 한 단계에 불과한 것이지 나라전체를 경영하고 ‘발전시킨다’,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라는 목적에서 보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지역주의 극복했다는 것에 다른 모든 것을 정당화 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평가는 국민들이 더 냉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이나 열린우리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평가는 재대로 됐다고 보십니까.

“왜 실패했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무엇을 위해서 라는 상위적인 강령이 없었습니다. 지역주의 극복한다는 것은 아주 하위적인 강령에 불과합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한 바탕 위에서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 ‘어떤 경제를 건설하겠다’, ‘국민들의 삶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는 합의된 상위 강령이 없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대선대선을 앞두고 문국현 캠프로 간 겁니까.

“문국현 후보의 약속이나 공개적인 슬로건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많은 부분 일치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구호도 내 생각 자체였습니다.
대선에서 문국현 후보가 당선된다는 것은 만무하지만, 대선과정에서 대선후보의 입이라는 것은 어떤 TV광고보다 위력적인 것이니까, 그 후보의 입을 통해서 인본주의적인 정치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국민들 가슴속에 그런 메시지를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문국현 후보를 지지했던 이유입니다. 열린우리당에 있으면서 지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른 정당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김 전 의원은 자신이 행한 정치실험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전했다

“노무현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하지만 결국 창조한국당도 탈당하지 않았습니까.

“창조한국당을 생각 하지 않고 문국현 후보만 보고 입당한 것입니다.
당초 문국현 후보지지 선언 후에도 창조한국당은 물론, 캠프에도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당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슬로건과 메시지에 때문에 지지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메시지를 국민들 속에 뿌리내리는 작업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당시 문국현 후보도 내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창조한국당이나 캠프는 선거를 치러보지 못한 사람들이고, 일하는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 하는 식이었습니다.
나중에 문국현 후보 뿐 아니라 선거캠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선거운동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우선 선거를 치르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할 수 없이 입당한 것입니다. 다소 아쉬운 것은 창조한국당을 잘 만들어 갈 수 있었는데 문제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조한국당이 문국현 이라는 사람으로 대표되는 정당으로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성공적이었지만, 문제는 문국현과 주위 사람들 간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문국현 후보가 기업사장을 오래 했기 때문인지 사장처럼 당을 운영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희망인 정치’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기업사장이 부하들을 통솔해서 이끌고 가는 정당을 원치 않습니다. 선거 후, 과연 더불어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에서 회의를 느껴 탈당을 결심했습니다.”

-창조한국당에 입당을 후회 하십니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당시 정치적으로 거의 자살행위였죠. 그래서 불출마라는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많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나는 정치적으로 잘되자는 생각으로 그런 일은 한 것은 아니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향후 계획이 있을 듯싶습니다. 새로운 정치지도는 그리고 있습니까.

“당장은 일선의 정치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몇 년간 고민한 것이 인본주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를 만들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 양심이 앞장서는 사회가 아니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윤리와 양심을 위배하는 것도 정당화 되는 전도된 가치관 지배하는 사회가 아직까지 우리의 모습이다. 인본주위 세상을 만드는 그런 노력을 사회에서 좀 해보고 싶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 혐의 사건에 대한 평가를 해주십시오. 표적 수사논란이 있습니다.

“정치 보복 같은 것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죠. 죽은 권력을 향해서는 표적수사하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적당히 넘어가고 하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더라고요.
그런 면이 있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 면책될 수는 없죠.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지만, 적어도 대통령을 지낸 사람, 특히 도덕성과 깨끗함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내세우고 주장하는 사람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런 이유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을 믿고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겨준 것이 서글픈 일인데, 가슴을 활짝 열어서 진솔하게 사죄를 하고, 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 감수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필자는 김 전 의원에게 ‘결국 정치실험이 실패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왜 실패냐, 길게 보면 현재 진행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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