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박Wars②]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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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박Wars②]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1.21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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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이어진 친박계 공천학살...'친이의 습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권력은 나누기 어렵다. 권력이 클수록 더욱 그렇다. 거대 여당의 패권, 한국 정치의 주도권을 두고 새누리당의 내전은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등장인물들도 화려하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 스타워즈(StarWars)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탄생부터, 최근 일어나는 ‘진박’논란까지, <시사오늘>이 살펴봤다.

에피소드 Ⅱ : 친이의 습격

치열한 경선 끝에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는 파죽지세로 내달렸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탈당 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BBK 논란이 터지면서 주춤하는 듯했지만, BBK 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된 직후 <조선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3.9%를 획득하며 일찌감치 승부가 결정됐다.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후보는 49%의 득표율로 각각 26%와 15%의 지지를 받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 대통령 당선 후 환하게 웃은 이명박 당선인 ⓒ 뉴시스

정치에서 ‘승자의 아량’을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을까. 경선에 승복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배려’는 없었다. 친이계는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의 ‘대권과 당권 분리 원칙을 당·정 일체화로 수정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친박계를 겨냥했다. 박 전 부의장의 논리는 새 정부가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 당이 청와대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였지만, 청와대에 권력이 집중되면 친박계의 권력 약화는 불가피했다. 친박계가 강력 반발하자 이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지만, 불씨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당·정 일체화’ 발언 이후 친이계는 총선 공천을 대통령 취임식 후로 미루자면서 계속 친박계를 압박했다. 2008년 2월 25일로 예정된 대통령 취임 후 공천이 진행된다면 공천 탈락자들이 ‘플랜B'를 세우고 실행에 옮길 시간이 부족할 터였다. 공천 일정 연기는 탈락자들이 신당 창당이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 성격이 짙었다.

공천 연기 주장을 받아든 박 전 대표 역시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라며 친이계의 의도를 의심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몇 차례 면담을 가진 후 박 전 대표는 다시 한 번 친이계를 믿기로 한다. 이로 인해 이 대통령과 박 후보 간에 ‘모종의 약속’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식 후 공천’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한 친이계는 ‘영남 40% 물갈이론’으로 연일 드라이브를 걸었다. 당시 이방호 사무총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9 총선의 공천은 공급자(정당)가 아니라 수요자(국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며, 그런 차원에서 현역 의원 중 최소 35~40% 이상은 바뀔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다.

또 “지역구 의원 공천 교체율을 지난 2004년 17대 총선(36.4%), 2002년 16대 총선(31%)보다 높여야 할 것”이라며 “영남권의 물갈이 비율을 수도권보다 더 높이고 경선 때 박 전 대표를 밀었던 의원보다 이명박 당선자를 도왔던 의원들을 더 많이 교체하겠다”는 기준까지 제시한다.

이방호 사무총장이 구체적인 ‘물갈이 기준’을 내세우며 친박계를 몰아세우자, 박 전 대표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박 전 대표는 총선불출마 및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용갑 의원의 위로연에 참석해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친이계를 비판했다.

“지금 총선을 앞두고 당이 시끄럽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정당정치, 정치개혁 발전에 누구보다 앞장서왔다고 자부한다. 그 동안 많은 선거가 있었지만, 사심 없이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경선을 해왔다. 정당개혁과 정치발전의 핵심은 투명한 공천이다. 그렇게 노력해온 결과, 당의 사당화도 없었고 밀실 정치도 없이 깨끗한 정치를 해옴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었고 정권교체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 당에서 자꾸 이상한 이야기가 들린다. 나와야 할 얘기는 나오지 않고 안 나와야 할 얘기가 나온다. 전략적으로 공천을 최대한 늦춘다느니, 물갈이를 한다느니… 누가 누구를 향해 물갈이를 한단 얘기인가?“

▲ '공천 학살'에 분노한 박근혜 전 대표 ⓒ 뉴시스

양자의 갈등은 공천심사위원회 구성 문제로 절정에 이렀다. ‘영남 40% 물갈이론’을 주장한 이방호 사무총장의 공심위 참여에 대해 친박계가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친박계에서는 친이계의 핵심인사인 이방호 사무총장이 공심위에 참여한다면 유승민·이혜훈 의원이나 이성헌 의원 가운데 한 명은 공심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 과정에서 공천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탈당까지 검토하고 있다며 친이계에 경고장을 날렸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집단 탈당’ 가능성을 내비쳤다.

극한으로 치닫던 양자의 갈등은 박 전 대표가 한 발 물러섬으로써 일단 봉합됐다. 이 대통령과 단독 회동을 가진 박 전 대표는 공심위원 추천안을 원안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가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에 대한 당선인의 약속과 신뢰를 걸고, 또 공정 공천을 약속한 강재섭 대표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기자고 해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측은 당헌·당규 해석 문제로 다시 한 번 충돌했다. 한나라당이 당 쇄신 차원에서 마련한 당규 개정안 중 ‘각급 공천심사위원회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으로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 공직후보자 추천신청의 자격을 불허한다’고 한 제3조2항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재판을 계속 벌이고 있는 자, 파렴치한 범죄 전력자, 부정·비리에 연루된 자’ 등을 공천 부적격 기준으로 제시한 제9조 해석을 놓고 격돌한 것이다.

친이계에서는 이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에서는 이것이 1996년 알선수재 혐의로 10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김무성 최고위원과 2002년 대선 때 불법 정치자금 12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2004년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서청원 전 대표가 타겟이라며 반발했다. 또 친박계는 △선거법 위반자, 파렴치범, 윤리위 징계자 공천 신청 자격 박탈 △이방호 사무총장 사퇴 △이명박 당선인의 수습을 요구하면서 “이 세 가지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70명이 모두 단결해 행동을 통일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선거법 위반자, 파렴치범, 윤리위 징계자 공천 신청 자격 박탈은 친이계 중진을 겨냥한 조항으로 풀이됐다.

이러자 친이계에서는 부정부패 전력자에 대한 공천 배제 기준을 ‘금고 이상’으로 완화키로 하고, ‘친박계 달래기’에 나선다. 친박계는 ‘이미 신뢰가 깨졌다’며 미심쩍어하면서도 일단 수용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친박계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대변인을 지낸 한선교 의원과 경선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이규택 의원이 공천 심사에서 탈락하더니, 영남에서 김무성 의원과 김재원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 의원 10명이 대거 탈락하는 ‘공천 대학살’이 벌어졌다. 친이계에서는 탈락자 수로 보면 친이계가 14명, 친박계가 10명이라는 논리를 내세웠으나, 비율로는 친박계가 절반가량을 잃은 데다 김무성 최고위원과 서청원 전 대표, 김재원 의원 등 박 전 대표의 ‘수족’이 잘려나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천학살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언론용어로 봐야 한다. 선거 때마다 탈락자가 생기는 것인데 계파갈등과 연계되면서 극한 용어가 동원된 것이다.“ (2010년 한 인터뷰에서 이방호 전 사무총장)

“2007년도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는 이유로 2008년 공천학살을 당했다. 당내 경선에서의 차별화는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 그래서 ‘친박연대’를 보름 만에 만들었다.” (2014년 한 인터뷰에서 서청원 전 대표)

침묵하던 박 전 대표는 2008년 3월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심경을 토로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제가 속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쩌면 속을 줄 알면서도 믿고 싶었습니다. 약속과 신뢰가 지켜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속았습니다. 국민도 속았습니다. 저는 작금의 한나라당에서 일어나는 공천 과정과 당 개혁 후퇴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임은 당을 더 개혁하지는 못할망정 이미 개혁되어 있는 것조차 지키지 못하고 당대표와 지도부가 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친박계는 탈당 후 ‘친박연대’를 결성, 지도부를 정조준했다. <계속>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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