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영화 <로봇, 소리>, 잊음을 일깨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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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영화 <로봇, 소리>, 잊음을 일깨우는 소리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1.28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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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울림이 있는 로봇 동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로봇, 소리> 포스터

멀고 먼 은하계, 선과 악의 선명한 대결구도 속 영웅담을 그려낸 <스타워즈> 는 현란한 시각의 우주 대서사시를 모태로 인간 내면의 본성과 보편적 가치관을 투영해 냄으로써 전 세계인의 찬탄과 환호라는 역사적 보상을 받은 바 있다. 

비록 그 영화의 주인공들은 정의 대 불의의 이분법적 가치 체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 혼란의 지배를 겪지만, 결국 가족 간의 애증과 갈등이라는 기본 플롯을 사랑과 화해라는 만민 공통의 주제어로 귀결지으며 SF 영화의 신기원을 구현해 낸다.

그러한 <스타워즈> 시리즈는 마치 윤회사상을 접목시키듯 새로운 세대로 이어져 무한한 경계를 지닌 우주의 속성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전설을 팽창시키고 있지만, 이 중심에는 온갖 생명체들과 함께 피조물인 로봇들과의 공존 또한 포괄시킴으로써 우주 만물의 조화로움을 명징하게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그 중의 R2D2 라는 드로이드는 선악의 경계에서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주인공들의 길잡이로 이야기의 중심축을 조용히 이끌던, 이 SF 신화의 현저한 막후 주역이었다.

새삼스럽지만 그 헐리우드의 SF 영상에서 주인공의 조력자인 로봇이란 존재에 대해 환상과 부러움을 품으며, 우린 그렇게 한국형 로봇 실사 영화의 출현을 염원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본격 SF 로봇 영화라 하기엔 분명 어폐가 있지만, 이제 ‘휴먼 로봇 감동 드라마’ 라는 이색 장르를 표방하는 영화 <로봇, 소리> 가 신년을 맞아 국내 관객들에게 또 다른 한국형의 서전을 넌지시 알리는가 싶다.

 <스타워즈> 의 R2D2 가 선악의 아노미 선상에서 번민하는 인간 주인공의 이성을 일깨우는 인도자였다면, 한국영화 <로봇, 소리> 의 매개는 우리들이 그간 잊고 애써 놓고자 하였던 마음의 소리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성으로 호소한다.

성년이 훨씬 넘은 딸을 찾아다니는 긴 여정을 통해, 일상화된 나머지 그간 모든 개념과 존재가 당연시 되었던 가족을 확인하려는 한 가장의 애잔한 부성애는 로봇이라는 금속성 소재와 어우러져 작금의 한국영화에 만연되어 있는 신파 코드의 정형성을 다소 상쇄시키는 신선함을 선보인다.

여기에 맡는 어느 배역이던 신뢰감 표출의 반열에 오른 배우 이성민은 녹슬어 가는 로봇과의 짧은 케미스트리를 통해 우리 테두리 안의 또 다른 모든 이면과 부정(否定) 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는 화두를 던진다.

수십억 인구의 모든 통화 내역을 도청하고 학습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며 점점 인간의 감성으로 진화한다는 휴머노이드는 차라리 허구에 가깝지만, 이를 굳이 논리로 따지려 한다면 영화의 묘미와 의미를 접하는 자세에 있어선 차라리 피로해질 따름이다.

물론 영화의 중간마다 나타나는 플래시백의 교차 편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스토리에 대한 이해와 몰입을 순간적으로 방해할 수 있는 연출의 한계를 드러내고, 동시에 기존 헐리우드 SF 장르와의 단순 비교는 거대 국가 기관과 맞선 한 필부만큼이나 이 영화를 훨씬 작고 미약하게 만들 수 있다.

솔직히 그 만큼의 로봇만 보여주기에 영화가 일찌감치 ‘휴먼 로봇 감동 드라마’ 라는 특이한 장르명을 선점한 만큼, 애당초 한국형 SF 로봇 영화라는 수사는 과유불급이 될 뿐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퇴색되고 쇠잔해져 가는 한 로봇의 우직한 감성을 통해 저마다 살아가면서 평소 잊고 살았던 작은 기억의 순간들을 일깨운다면, 한편의 소박한 로봇 동화를 만들고자 했던 감독의 노림수는 분명 일정 정도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의 미명 하에 국가주의와 관료주의의 폐단에 희생당하는, 이 세상의 작지만 소중한 모습과 제 가치들까지 잠시 돌이켜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무엇보다 감독의 제작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영화는 2014년 봄, 그 야만의 세월에 일어났던 이 땅의 참화에 대해 잠시 놓았던 파장을 관객과 특정 가족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게 될 것 같다.

물론 영화 중반 자신이 방기했던 로봇과 재회한 아버지, 이성민의 절규어린 다음의 대사가 요즘의 모진 삭풍 속에 얼어붙은 우리의 코끝에 순간적 찡함을 얹을 수 있기 때문만은 절대 아니다. 

“늦게 와서 미안해...”

 

 

영화 평점 : ★★★☆☆

·영화 저널리스트
·트리즈 뉴스 전문기자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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