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의 단장지애(斷腸之哀)…수입차 딜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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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표의 단장지애(斷腸之哀)…수입차 딜러의 죽음
  • 정세운 기자 김병묵 기자
  • 승인 2016.01.29 09: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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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故 홍승수 씨 빈소 조문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기자 김병묵 기자)

▲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의 아들 故 홍승수 씨의 빈소 ⓒ시사오늘

2016년 1월 28일 충남 홍성의료원 장례식장.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의 외동아들인 승수 씨의 빈소가 마련된 곳이다.

홍 의원은 한국정치의 부침(浮沈)을 말해주는 정치인이다. 그는 단 한 번도 당적을 옮긴 적이 없지만 각종 포털 등에선 여러 번 당적을 바꾼 것으로 나온다. 이는 본인이 풍랑에 흔들림 없이 한 길을 걸어왔음에도, 그를 둘러싼 한국 정치의 지형이 바뀌며 생긴 아이러니다. 한국 정치의 안타까운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홍 의원은 비록 재선이지만 정치구력은 만만치 않다. 지난 1969년 유진오 박사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이래 40여년 동안 야당 정치인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특히 그는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편안한 여당 정치인으로 커올 수 있었지만, 소신을 선택해 가시밭 같은 야당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그가 통일민주당 조직부장으로 있을 때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합당이 이뤄지자, 홍 의원은 여당의 길을 포기하고 이기택이 이끄는 ‘꼬마민주당’에 몸을 실었다.

1995년 지방선거 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통합야당이던 민주당을 둘로 쪼개 국민회의를 만들자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다음 당선을 위해 DJ를 따라갔다. 하지만 홍 의원은 끝까지 민주당을 지켰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을 선언해 한나라당이 되자, 그는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이합집산에 휩쓸리지 않고 지역구를 지켜온 그는 2000년 17대 총선에서야 국회에 입성한다. 한나라당으로선 탄핵 역풍이 불던 시기에 일궈낸 의미있는 승리였다. 2008년 자신의 정치적 사부인 이회창이 자유선진당을 만들어 홍 의원 영입을 꾀했으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때문에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렇게 어렵게 단 배지를 잃었지만 그는 19대 총선에서 다시 화려하게 돌아온다. 이 모든 정치역정에서 그는 단 한번도 몸담은 곳을 바꾸지 않았다.

▲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 ⓒ시사오늘

그렇게 치열한 정치역정을 헤쳐온 정객(政客)인 홍 의원이지만 아들의 죽음 앞 단장지애(斷腸之哀) 속에서는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장례식장에선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던 홍 의원이 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지난 27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승수씨는 사망당시 BMW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수저’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 언론과 SNS가 이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승수 씨는 BMW 차 딜러와 수영강사로 생계를 이어온 인물이다. BMW는 자신이 판매하는 차종이었다. '금배지' 아버지의 후광은 찾아볼래야 볼 수 없었다.

그랬기에 빈소는 더욱 무거웠다. 조의를 표하는 화환의 행렬과 애도의 목소리가 자식 잃은 어버이의 마음을 어찌 달랠 수 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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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2022-03-06 14:24:21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