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과 아르센 벵거]마지막 벽 넘지 못한 2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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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과 아르센 벵거]마지막 벽 넘지 못한 2인자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2.01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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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로 풀어본 정치인(7)>‘3회 낙선’ 이회창과 ‘9년 무관’ 벵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는 축구와 비슷하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겨뤄야 하고, 승자와 패자도 생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비슷한 점은, ‘사람’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축구 팬들은 잔디 위에서 뛰는 ‘사람’에게 멋진 플레이를 기대하고, 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희망을 투영하고 미래를 건다. 다른 듯 닮은 정치계와 축구계의 ‘사람’을 비교해 본다.

‘3회 낙선’ 이회창과 ‘9년 무관’ 아르센 벵거

이회창 전 국무총리와 아르센 벵거 아스널 FC 감독은 많이 닮았다. 고집 센 원칙주의자로, 거의 모든 것을 다 이뤘지만 3회 낙선과 9년 무관이라는 아픈 실패의 기억을 지녔다. 

▲ 이회창 전 국무총리 ⓒ 뉴시스

원칙주의자의 승승장구

이 전 총리의 완고한 성격은 정평이 나있다. ‘대쪽’이라는 별명처럼, 판사 재직 시절부터 군사정권의 청탁과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판결을 내리기로 유명했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정권의 요구에 배치되는 소수의견을 고집한 까닭에 요시찰 인물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군사정권이 그를 해임할 수 없었던 것은 사사로운 청탁이나 뇌물을 거절하고 유흥업소에 한 차례도 출입하지 않을 정도로 청렴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의 기피 인물로 지목돼 1986년 대법관직에서 물러났다가 1988년 복직,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된 후에는 민정당·평민당·민주당·공화당의 입후보자 전원을 불법 선거혐의로 고발하고,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민정당 총재를 비롯한 각 당 총재들에게 불법선거 운동을 자제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고 편지를 보내는 등 ‘강단’을 보였다.

문민정부 출범 후 감사원장이 된 이 전 총리는 ‘전성시대’를 맞았다. 감사원장 공관입주를 거부했고, ‘성역’으로 여겨지던 율곡 사업과 평화의 댐에 대한 감사를 강행해 전직 국방부장관 두 명을 포함, 전직 해·공군참모총장, 전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6명을 수뢰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전 총리는 이처럼 엄정하고 양보 없는 강직한 직무 수행으로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993년 12월에는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대통령제하에서 총리는 ‘방탄 총리’로 불릴 만큼 권한이 약하지만, 이 전 총리는 법적 권한을 십분 활용해 강한 총리로 직무를 수행하려 했다.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려는 모습은 눈길을 끌었고 이후 총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대쪽’이라는 평가가 유지됐다.

아르센 벵거 감독의 아스널 생활 초기도 화려했다. 이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벵거 감독 또한 프리미어리그에 새바람을 불러 왔다. 일본에서 감독 생활을 했고, 영국과 앙숙인 프랑스 국적이었던 그를 영국 언론은 ‘Arsene, Who?'라며 조롱했다. 그러나 벵거 감독은 명확한 철학을 바탕으로 구습에 젖은 잉글랜드 축구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생활 보호’라는 명목으로 허용됐던 담배·음주 등에 제재를 가했고, 육류와 튀김 위주였던 경기 전 식단도 어류와 데친 채소 등 과학적인 식단으로 바꿨다. 중구난방이었던 훈련 시스템도 목적 지향적인 과학적 시스템으로 변화시켰고, 힘과 높이 위주였던 전술도 짧은 원터치 패스 중심의 대륙식 '패스 앤 무브' 방식으로 개혁했다. 이런 과감한 혁신에 힘입어, 벵거 감독은 아스널의 황금기를 열어젖혔다.

데뷔 시즌부터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며 3위로 리그를 끝낸 벵거 감독은 부임 이듬해인 97-98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며 우승 트로피를 되찾아왔다. 리그와 FA컵 동시 석권은 아스널 역사상 두 번째의 기록이었다.

98-99시즌, 역사적인 트레블(한 시즌에 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FA컵을 모두 석권하는 것)을 기록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밀려 2위에 그치고, 99-00시즌과 00-01 시즌에도 연속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줬지만 벵거 감독에게 쏟아지는 칭송은 줄어들지 않았다. 티에리 앙리와 로베르 피레스, 프레드릭 융베리 등을 영입해 젊고 다이내믹한 팀으로 완전히 변모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결국 01-02 시즌, 벵거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다시 한 번 리그와 FA컵을 거머쥐었고, 14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며 리그 최다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02-03 시즌에는 눈앞에서 리그 우승 트로피를 놓쳤으나 FA컵에서 우승, 커리어에 우승 트로피를 하나 추가했다.

그리고 03-04 시즌, 벵거는 아스널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를 맞았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무패 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아스널은 38경기에서 26승 12무 무패라는 성적으로 리그에서 우승했는데, 이는 1888-89시즌 프레스턴 노스 엔드 이후 115년 만의 일이었다. 프레스턴 노스 엔드가 무패 우승을 기록했던 당시에는 ‘전술’이라는 개념조차 잡혀있지 않던 시기인 만큼, 사실상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음 시즌인 04-05 시즌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FA컵에서 우승, 10번째 FA컵을 손에 넣었으며, 49경기 연속 무패 기록으로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 아르센 벵거 아스널 FC 감독 ⓒ 아스널 FC 한국어 공식 홈페이지

실패의 시작

감사원장과 총리로 승승장구하던 이 전 총리는 YS의 부름을 받아 신한국당에 입당, 정치권에 발을 내딛었다. 국민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그는 신한국당내 경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됐고,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성공의 길만 달려왔던 이 전 총재의 인생은 이때부터 실패로 점철되기 시작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회의가 폭로한 아들의 병역 의혹, IMF 책임론과 국내 경제 상황의 악화, 이인제 후보의 경선 불복, DJP연합(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의 연대) 등 악재가 겹친 끝에 이 전 총리는 1997년 12월 18일 사상 첫 정권 교체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대선 패배 후, 이 전 총리는 한나라당 총재가 됐다.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흔들리던 한나라당을 다잡으며 사실상 2002년 대통령 선거 후보 레이스에서 독주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독으로 작용했다. 한나라당 경선이 ‘시시하게’ 끝난 반면, 새천년민주당의 당내 경선에서 돌풍을 몰고 온 노무현 후보는 바람을 본선까지 지속시키며 이 전 총리를 집어삼켰다. 충격적인 두 번째 ‘역전패’였다.

2002년 대선이 끝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한 그는 2007년 세 번째 대선 출마에 나섰다. 정계를 떠난 후 정치에 관한 발언을 일체 삼가고 있던 이 전 총리는 이명박 후보가 2007년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출마도 하지 않았던 이 전 총리의 지지율이 범여권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를 앞서고 있었고, 이 전 대통령과 치열한 경선을 벌이는 과정에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박근혜 후보의 합류 가능성도 있었던 까닭이다, 여기에 이명박 후보의 비리 혐의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 등 이 전 총리가 ‘역전’을 기대할 만한 요소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이 전 총리가 나선 이후 50% 이상을 유지하던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한때 30% 중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돌풍을 일으키지 못하고 정동영 후보에게도 뒤진 15.1%의 지지율로 세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도 실패했다. 성공의 길만을 걸어왔던 ‘엘리트 정치인’의 초라한 마무리였다.

화려했던 시절 이후 벵거 감독도 계속된 실패를 맛봤다. 주장이자 팀의 핵심 선수였던 패트릭 비에이라가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르는 등 선전했으나, 그것이 ‘마지막 불꽃’이었다. 데니스 베르캄프가 은퇴하고, 티에리 앙리와 로베르 피레스 등 핵심 선수들이 팀을 떠났음에도 적절한 보강을 이뤄내지 못한 아스널은 ‘무관의 터널’로 진입했다.

04-05 시즌 2위를 시작으로, 아스널은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4위-3위-4위-3위-4위-3위-4위-4위-3위에 그치며 11년 연속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최소한의 이적료만 소모하며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구성, 계속해서 4위 안에 드는 벵거 감독의 능력을 칭찬하기도 했으나, 우승을 원하는 팬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한 성적이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적도 좋지 못했다. 05-06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마지막으로 16강-8강-4강-8강-16강-16강-16강-16강-16강에 그치며 ‘축구계에는 아스널의 4/16 법칙(리그 4위, 챔피언스리그 16강)이 있다’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벵거 감독은 라이벌 첼시의 감독이었던 주제 무리뉴에게 ‘실패 전문가’라는 독설을 들어야 했다.

다만 어느덧 팔순을 넘긴 이 전 총리와 달리 벵거 감독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 올 시즌 아스널은 1위 레스터 시티에 불과 승점 3점 뒤진 3위를 달리고 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6강에 올라 있는 상태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막판까지 맨체스터 시티와 경쟁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이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에서부터 ‘디펜딩 챔피언’ 바르셀로나와 맞닥뜨렸지만, 여전히 우승에 도전할 기회가 살아있다는 것은 큰 차이점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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